그리스도인 30여 명이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 공간 앞을 찾았다. 강단에는 '우리가 여기 있다'를 의미하는 빨간 등이 놓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그리스도인 30여 명이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 공간 앞을 찾았다. 강단에는 '우리가 여기 있다'를 의미하는 빨간 등이 놓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연약한 사람들을 편드시는 내 주님
연약한 우리들도 그 편에 서겠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서울 시내 한복판, 찬양 '그 편에 서겠네'가 나지막이 울려퍼졌다. 6월 16일,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 공간에 모인 그리스도인 30여 명은 천천히 찬양을 부르며 예배를 시작했다. 주최 측이 마련한 의자가 가득 차자 뒤편 서울시의회 계단에 걸터앉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가방·모자·소지품 등에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었다.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저녁,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 공간 앞에서 기도회가 열린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도회는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나눔의집협의회가 준비했다. 자캐오 사제(용산나눔의집 길찾는교회), 김돈회 사제(서울주교좌성당), 박순진 사제(춘천나눔의집 원장), 찬양 사역자 이지음 씨가 예배와 반주를 이끌었다.

김돈회 사제는 '두 렙톤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수난받는 욥의 부르짖음을 담은 욥기 19장 23절, 가난한 여인이 두 렙톤을 바친 이야기인 마르코복음 12장 35~44절이 본문이었다. 김 사제는 기독교는 온갖 모욕을 당하며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예수를 믿는 '구차한 종교'라며, 예수만큼은 세월호 가족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아픔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만이 아파 울고 있는 이의 가슴과 만난다며, '두 렙톤'밖에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이 아픔의 자리에서 진실을 공유할 때, 서로의 가슴에 사라지지 않는 진실을 새겨 나올 때, 배부른 이들이 아니라 우리가 내일을 바꿀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아픔이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전부를 쏟아 넣었기 때문입니다."

김돈회 사제는 전 재산을 바친 여인처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할 때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김돈회 사제는 전 재산을 바친 여인처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할 때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가족 증언에 나섰다. 그는 "사람과 같은 존재가 광활한 우주에 있을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넓고도 넓은 우주 한가운데 작고도 작은 생명체가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기적같이 이 지구에 찾아온 생명들을 잃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전도사는 아이들 대신 누군가를 만나고, 먹고, 웃고 있다는 생각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의 외침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억해야만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만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역사 한가운데 '경계선'을 명확히 남기기 전까지, 가족들은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긴 가뭄 끝에 드디어 비가 왔어요. 강원도나 남부 지방, 경기 북부 지방은 계속 비가 왔는데요. 안산은 해안가라 비가 잘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염전이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요.

 

오랜만에 비가 내려서인가요. 교회 마당을 보니 죽은 줄 알았던 화초와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꽃이 피고 잎이 나왔더라고요. '난 죽지 않았어', '나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고 있어', '너도 잊지 마'라고 격렬하게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픈 기억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희 가족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비현실적이에요. 내가 살고 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그런데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도 언젠가 잎을 내고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아픈 기억을 생각하면서 이 힘든 시기를 또 견딜 수 있지 않을까요."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만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만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밀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만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만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밀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예은 엄마의 증언을 듣고 잠시 침묵하며 기도했다. 이어서 포도주에 적신 빵을 나눠 먹으며 서로가 이어져 있음을, 모두가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마음이 되어 싸울 것을 고백했다. 이들은 이지음 씨가 2017년 부활절 당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만든 곡 '우리는 기억하리라'를 부르며 기도회를 마무리했다.

다음 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그리스도인 기도회'는 7월 21일 저녁 7시 30분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 공간 앞에서 열린다. 7월 기도회는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온 촛불교회가 주관한다. 아울러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5시에는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세월호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3000일을 맞는 7월 3일에는 '7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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