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974일째. 어느덧 8년 하고도 2개월이 다 되어 간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제대로 된 진상 규명도, 아이들의 유해가 집과 학교가 있던 안산으로 돌아오는 일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8년째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는 마음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친구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6월 5일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열렸다. 무성한 나무 너머로 단원고가 보였다. 이날 공원에는 세월호 진상 규명, 생명 안전 공원 무사 건립을 염원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그리스도인 36명이 모였다. 이들은 한 명씩 차례로 나와, 별이 된 6반 아이들 25명의 이름을 불렀다.

예배 참가자들은 단원고 6반 25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예배 참가자들은 단원고 6반 25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책임감이 강하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 주던 구.태.민.

엄마와 누나를 위해 빨래와 청소를 하고, 엄마한테 김치볶음밥도 맛있게 만들어 주는 권.순.범.

학원을 안 다녀도 성적이 좋았고, 아버지의 시험 준비를 돕던 착하고 성실한 아들 김.동.영.

연극부 활동을 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김.동.협.

엄마가 사과나 감을 입에 쏙 넣어 주는 것을 받아먹는 게 제일 좋은 김.민.규.

낙천적인 성격이고 축구와 가수 등을 좋아하는 김.승.태.

다정하고 애교 많은 아들, 실내 건축디자이너가 꿈인 김.승.혁.

유명 디자이너가 되어 이름을 떨치고 싶은 김.승.환.

아버지의 휴대폰에 '내 심장'이라고 저장돼 있는 귀한 4대 독자. 작사·작곡을 잘하는 남.현.철.

가족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 엄마, 아빠 마음을 한 번도 아프게 한 적 없는 박.새.도.

축구를 좋아하는 박.영.인.

학교와 운동, 우유 세 가지를 가장 좋아하고 재외 교포를 돕는 외교관을 꿈꾸는 서.재.능.

동생을 잘 돌보고 늘 엄마를 위로하는 아이. 축구 해설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우.진.

글을 잘 쓰고 말도 마음씨도 따뜻해 어머니가 많이 의지하는 아들 신.호.성.

그래픽디자이너가 꿈이고 언제나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서 별명이 '미소 천사'인 이.건.계.

집안의 에너지 발전소라고 불리고 가수가 되고 싶은 이.다.운.

회계사가 되어 아버지의 작고 오래된 차를 바꿔 드리고 싶은 이.세.현.

미국항공우주국 과학자를 꿈꾸고 언제나 잘 웃는 '미소 천사' 이.영.만.

어른들 앞에서는 다정하고 예의 바르고, 친구들에게는 배려심이 깊으면서도 재미있는 친구 이.장.환.

요리의 제왕, 호텔 요리사가 되고 싶은 이.태.민.

잔소리할 필요 전혀 없이 건강하게 자라던 착한 아들 전.현.탁.

늦은 밤 어머니가 퇴근해서 오시면 꼼꼼하게 안마해 드리는 엄마의 영원한 보디가드 정.원.석.

처음 보는 사람과 말도 잘하고 친하게 지내며 엄마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최.덕.하.

약자가 배려받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관이 되길 소망하는 홍.종.영.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단련하도록 돕는 체육 선생님이 꿈인 황.민.우."

6·1 지방선거 직후 열린 예배에는 오랜만에 생명 안전 공원 부지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안산시민 '얼쑤'는 "생명 안전 공원 건립과 관련해 주민 투표를 다시 거치겠다는 공약을 낸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가 안산 시장에 당선됐다. 가슴 아파할 가족들 곁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예배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교사인 장기혁 집사(고기교회)도 용인에서 안산을 찾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이미 '우리 아이들'이 되어 버렸다며 운을 뗐다. 장 집사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무렵 컨테이너에서 예배하던 때를 회상하며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만, 여전히 캄캄하고 앞이 안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불씨를 간직하고 조그마한 빛이라도 볼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등이 되어 주고 밥도 함께 나눠 먹으며 힘을 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 어둠이 짙어진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온 남기업 소장(토지+자유연구소)은 "다니엘서를 읽으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어떤 정신으로 버텼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자괴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귀환했다. 우리가 예배하고, 노래하고, 호소하고, 당부하고, 격려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6·1 지방선거 직후 열린 예배에는 세월호 가족들과 그리스도인 36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6·1 지방선거 직후 열린 예배에는 세월호 가족들과 그리스도인 36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예배 본문은 시편 35편 23~28절이었다. 시편 저자가 자신의 재난을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향해 절규하는 내용이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말씀을 읽은 뒤 소감을 나눴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참사를 겪기 전에는 이런 말씀을 '할렐루야'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참사를 겪고 나서는 이 고백이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한 고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리한 이후에 하는 고백이 아니라 앞이 암담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이런 시편을 짓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얼쑤도 "이전까지는 기분 좋은 통쾌함을 느꼈던 본문이지만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본문 말씀처럼, 우리를 참담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이 앞으로 4년을 이어 가게 된다. 그 기간 우리가 거꾸러지고 수치를 당하는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하는 반전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의식 있고 건강한 위정자의 모습을 그들에게 당당히 보여 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기적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오는 9일 임기를 종료하며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가족들은 사참위 조사 결과와 별개로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임기 종료를 앞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오는 9일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가족들은 사참위 조사 결과와 별개로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편 2018년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6월 10일, 3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임기를 종료한다. 당초 6월 1일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내부적으로 내인설·외인설을 둘러싼 논쟁을 결론 내지 못했다. 사참위는 7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한 뒤, 9일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가족들은 사참위 결과 발표와 별개로 진상 규명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박은희 전도사는 "가족들이 켜켜이 쌓아 온 시간과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외쳤던 울부짖음은 절대 묻히지 않는다. 분명히 이 우주에 선명하게 남은 종적이다. 이제 우리가 할 것은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우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쌓아 온 움직임, 행동, 바람, 기도가 결국 우리를 계속해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예배는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5시 안산 화랑유원지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진행한다. '7반 친구들과 함께하는 예배'는 7월 3일 열린다. 이날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000일을 넘어서는 날이기도 하다. 아울러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월례 기도회도 진행된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이 주관하는 6월 기도회는 6월 16일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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