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가족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매일같이 농성하던 청와대 앞을 떠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 가족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매일같이 농성하던 청와대 앞을 떠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세월호 관련 책임자들을 주요 요직에 벌써 앉혔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모욕하고 짓밟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화가 납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 엄마 아빠들은 여전히 살아 있고, 진상 규명의 의지가 있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이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우리의 힘입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창현 엄마 최순화 씨가 한숨을 푹 내쉰 뒤 입을 뗐다. 이번에는 청와대 앞이 아니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였다. 매월 셋째 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도회를 진행하던 세월호 가족들은 5월부터 세월호 기억관이 있는 서울시의회 마당으로 기도회 장소를 옮겼다. 진상 규명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고, 세월호 문제에 무응답으로 일관한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은 하루하루 타들어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로 지명된 이들이 하나둘 요직에 발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으로 임명된 권영호 육군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대행은 당시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문건을 파쇄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국정원장으로 지명된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세월호 보고 당시 시각 조작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세월호 참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정치인도 발탁됐다. 2018년 논평에서 '세월호 7시간 난리굿'이라는 표현으로 논란을 빚은 홍지만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실 정무비서관으로 내정됐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월례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다. 5월에는 서울시의회 마당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월례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다. 5월에는 서울시의회 마당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참사를기억하며연대하는그리스도인모임은 5월 17일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첫 번째로 열린 기도회였다. 창현 엄마 최순화 씨, 시찬 엄마 오순이 씨,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와 그리스도인 20여 명이 서울시의회 마당 앞에 펼쳐진 노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모여 앉았다. 퇴근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기도회 현장을 지나쳐 갔지만, 잠시 자리에 머물렀다 가는 이도 있었다.

청수교회 한수현 목사는 304명의 생명이 쓰러져 간 자리에 여전히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진상 규명을 바라는 사람들이 연대해 진실을 찾고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더디고 이익에 눈먼 이들의 반목만이 계속된다고도 했다.

한 목사는 "과정은 길기만 하고 답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 갑갑하게만 하고 있다. 우리에게 진실은 승리하고, 옳음은 이뤄지고, 빼앗긴 것은 반드시 되찾아진다는 '믿음'의 능력과, 진리는 밝혀지고, 정의는 세워지고, 온전하고 안전한 삶을 끊임없이 '소망'하는 능력과, 진실을 위해 헌신하고, 정의를 위해 희생하고, 평화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능력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다.

참가자들은 윤 정부 취임 이후 진상 규명이 더욱 요원해졌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윤 정부 취임 이후 진상 규명이 더욱 요원해졌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현장아카데미 이정배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내의 시간을 견디며 진상 규명을 위한 새로운 싹을 틔워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무가 통째로 잘렸더라도 그루터기, 밑동마저 죽는 법은 없다. 이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야 하고, 이전과는 다른 생명을 잉태해야 한다"며 "'석과불식'이란 말이 있듯이 세월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미래를 위해 남겨진 씨앗들이다. 말라죽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맞춰 가며 우리들의 생명력을 키워 나가자"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현 정부하에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순화 씨는 이틀 전 방문한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이었던 김향득 사진작가를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김 작가는) 카메라 하나 메는 것도 힘겨워할 만큼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에너지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5·18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굉장히 뚜렷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상황을 증언하더라. 구 전남도청 주변과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거였다. 42년이 넘도록 그분을 견디게 했던 힘은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게 힘인 것 같다. 가족들도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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