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8주기 기억 예배가 부활절을 앞둔 4월 10일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열렸다. 유가족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 8주기 기억 예배가 부활절을 앞둔 4월 10일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열렸다. 유가족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아이가 보고 싶어서, 너무 보고 싶어서 날마다 울고 싶지만, 우리 아이들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아껴 두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게 될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2972일을 맞이하고, 2973일을 맞이하겠습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날마다 '세월호력'을 센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을 기준으로 오늘이 몇 번째 날인지 세는 것이다. 세월호 8주기 기억 예배가 열린 4월 10일, 단상에 서서 세월호력으로 날짜를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픔과 고통의 기억이 묻어났다. 최 씨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대로인 슬픔을 아껴 둔 채, 생명 안전 공원 건립과 진상 규명을 희망하며 매일을 살아 내겠다고 말했다.

세월호력으로 2971일째 되던 날, 유가족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그리스도인들이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여덟 번째 기억 예배를 열었다. 공터 모래 바닥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 200여 개는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 앉을 자리가 부족해 서거나 멀찌감치 놓인 공원 벤치에 앉은 이들도 있었다. 단상에는 세월호 가족들과 8년째 함께해 온 나무 십자가가 놓였다.

예배는 길가는밴드 노래로 시작했다. 보컬 장현호 씨는 '위로', '다시 봄 - 4·16 그대들을 기억하며'를 부른 뒤 "8년 전에 불렀던 노래인데 여전히 이 노래가 유효하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조유빈 씨(고기교회)는 해외에서 글을 보내온 조민아 교수(미국 조지타운대)의 글을 대독했다. 별이 된 아이들이 가족들에게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길가는밴드 장현호 씨가 노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길가는밴드 장현호 씨가 노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각 반을 대표해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단원고 희생자와 교사·일반인·선원 304명의 이름이 10여 분간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순서지에 적힌 이름을 눈으로 따라가며 함께 읽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희생자들을 호명하던 가족들은 자꾸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참석자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유가족 증언을 위해 단상에 오른 최순화 씨는 먹먹한 마음에 말을 시작하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마주 앉은 참석자들은 '끝까지 잊지 않을게', '진상 규명 될 때까지' 등이 적힌 피켓을 들어 올려 그를 북돋웠다. 최 씨는 참석자들을 향해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예배를 드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곳 전체가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는데 왼쪽에는 산업 박물관이 들어섰다. 우리가 못 만난 사이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한 생명 안전 공원도 올 가을이면 첫 삽을 뜨고 공사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화랑유원지에 들어설 생명 안전 공원은 오는 9월 착공한다. 2만 3000㎡ 규모의 생명 안전 공원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봉안 시설과 문화·교육 공간이 조성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째 되는 2024년까지 완공하는 게 목표다. 최 씨는 생명 안전 공원이 하루빨리 조성돼 전국 추모 시설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 안산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각 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각 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발언하고 있는 창현 엄마 최순화 씨. 뉴스앤조이 나수진
발언하고 있는 창현 엄마 최순화 씨. 뉴스앤조이 나수진
생명 안전 공원이 들어설 안산 화랑유원지 내 부지. 가족들은 공원이 순탄히 건립돼 전국 추모 시설에 흩어져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안산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생명 안전 공원이 들어설 안산 화랑유원지 내 부지. 가족들은 공원이 순탄히 건립돼 전국 추모 시설에 흩어져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안산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971일 동안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간절함'인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내일은 좀 괜찮아질 거야' 이런 주문에 가까운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 온 것 같습니다. 2971일 동안의 간절함과, 2971일 동안의 주문과, 2971일 동안의 기대는 모두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제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알고 있는 건 하나님이 우리를 포함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오늘을 살아 내고 내일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저기에 산업 박물관이 세워진 것처럼 이 공터에도 아이들이 안식할 건축물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요.

 

지금까지 저희와 함께해 준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씩 알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닮아 가는 저의 모습도 발견합니다. 지금처럼 먼저 자신을 살필 줄 알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이웃으로, 상처 많은 세월호 가족들의 이웃으로 계속 남아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8주기 예배 주제 '혼돈, 공허, 어둠 그리고 빛'은 가족들이 직접 정했다. 여전히 흑암의 시간을 견디며 진상 규명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담았다. 순영 엄마 정순덕 씨는 설교 본문 창세기 1장 1~5절을 대표로 읽었다. 하나님이 혼돈·공허·어둠으로 덮여 있던 세상에 빛을 만들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설교는 김기석 목사(청파교회)가 맡았다. 세월호 2주기 기억 예배에서 설교한 적 있는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동안 경험해 왔던 것이 바로 공허와 혼돈과 흑암이었다. 삶은 형태조차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고, 희망의 빛 어디에서 한 점도 비쳐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절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얘기한다. 하나님의 영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품에 안았다. 그 후에 '빛이 있으라'는 창조의 음성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유대교 신학자 아브라함 J.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의 책 <사람을 찾는 하나님>(한국기독교연구소)에 등장하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가만히 앉아 통찰이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암흑의 순간에 우리 속에 있는 빛이 밖으로 나오기를 힘써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에 빛이 있는가' 하고 묻는 게 아니고, 감춰져 있는 빛을 우리 속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304명의 희생자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정의를 세워 달라고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그 사랑하는 자식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는 라헬들이 앉아 있다"며 그리스도인들이 진상 규명이라는 빛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감춰져 있는 빛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김기석 목사(청파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감춰져 있는 빛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정의는 반드시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을 땅에 묻으려는 사람들을 거슬러 그 진실을 땅으로부터 끄집어내려는 사람들을 통해 망가진 세상을 고치십니다. 반딧불 한 마리의 불빛은 희미하지만 반딧불이들이 함께 모이면 마치 크리스마스의 전구처럼 반짝거려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연대하기 위해 모인 우리들이 바로 세상의 희망인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참석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진상 규명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생명 안전 공원이 순탄히 건립되고,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했다. 이들은 함께 세월호를 기억하고 다짐하는 노래 '약속해'를 부르며 예배를 마쳤다.

세월호 참사 8주기 행사는 계속된다. 4월 14일 저녁 7시 30분에는 세월호참사를기억하는그리스도인모임이 '세월호 8주기 그리스도인 연합 예배'를 연다. 예배는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한다. 15일에는 안산 문화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8주기 전야제가, 16일에는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이 진행된다.

참석자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노란색 종이에 각자 기억과 다짐의 말을 적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노란색 종이에 각자 기억과 다짐의 말을 적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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