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비판은 무엇일까? 마르크스가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하는 글에 남긴 짧은 문구가 아닐까? 마르크스는 그 글에서 종교, 즉 기독교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고 민중의 계급투쟁 의지를 마비시킨다고 일갈했다. '계급투쟁'이 역사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보는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 비판은 오늘날에도 적확하다.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급투쟁 의지' 대신에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을 넣어 보라. 바로 수긍하게 된다. 김회권은 <자비경제학>(PCKBOOKS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정신이 없는 육체가 지옥이지만, 육체가 없는 정신도 지옥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은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 논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찍이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해 "육체는 정신의 감옥"이라고 했고, 데카르트는 실체론을 통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선포하며 물질(신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처럼 플라톤과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심신이원론'에 대해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는 한 실체의 두 가지 측면일 뿐
기도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누는 사랑의 속삭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면, 기도를 정말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그런 기도는 '안전한 기도'요, 그저 하나님께 '보험'을 드는 기도일 뿐이다.<위험한 기도>의 저자 크레이그 그로쉘은 단순히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소통을 넘어,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나를 시험하여 보소서"라고 기도해 보라고 초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발휘해 보라고 도전한다. 이는 마치 어린 독수리가 안전한 둥지를 벗어나 저 높고 푸른 창
교회란 무엇인가? 동일한 질문을 수십 년 전부터 던졌지만 아직도 하는 것을 보면 답을 찾지 못해서일 것이다. 어쩌면 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몸'이니 '진리의 터'이니 하는 식의 답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정의된 교회와 '살아 내는 교회'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 간극이 얼마나 큰지, 마치 딴 세상 같다. 신앙생활이란 고백과 실천 사이에서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성경에서 제시한 교회는 '천국' 내지 '완전한 공동체'로 보이지만, 실제 교회는 경쟁과 반목,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정글'이다. 교회는 원래 그런 곳일까?
케빈 리 목사는 릭 워렌 목사가 섬기고 있는 미국 새들백교회에서 온라인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약 2100개 온라인 소그룹을 관리하고 있고, 유튜브 채널 '미국 목사 케빈'을 통해 미국 교회 시스템과 온라인 사역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새들백교회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도 없던 1992년 처음 인터넷에 사이트를 등록했고, 2009년 온라인 예배를 녹화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 생방송 중계, 2013년 온라인 소그룹을 시도했다. 2014년엔 전임 온라인 사역자를 세워 온라인 사역을 전담하게 했다. 케빈 리 목사는 2017년
코로나19를 겪으며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다. 이제는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보다 과연 교회가 존립할 수 있을지, 어떻게 존립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여러 기적과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줬는데 이제는 불쾌감과 절망감만 주고 있다.<정치적 제자도>(새물결플러스) 저자 빈센트 바코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가 공적 삶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신학이 일상적이고 공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보수적인 교단
창세기는 전통적으로 인류의 기원과 이스라엘의 시작을 다룬 책으로 인식돼 왔다. 1~11장은 원역사로 우주와 인간과 만물의 시작을 다루는 부분이고, 12~15장은 족장들을 통해 펼쳐지는 이스라엘의 시작과 믿음의 행진을 담고 있다. <다시 읽는 창세기>(이레서원)는 기존 해석을 인정·수용하면서도 창세기와 성경을 더욱 풍성하고 은혜롭게 볼 수 있는 시각과 틀을 제공해 준다. 성경을 사랑하며 연구해 온 저자 민경구 교수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저자의 감정·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거
샘 올베리의 <교회, 나에게 필요한가?>(아바서원)는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코로나19 사태로 특별히 한국에서는 교회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고, 꾸준히 교회를 출석하는 이들에게 오랜 비대면 예배와 기능이 약화된 공예배가 준 영향은 '교회가 정말 나에게 필요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만한 상황을 가져왔다.영국의 차세대 기독교 지도자 샘 올베리는 성공회 목사로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에서 편집인으로 섬길 만큼 뛰어난 저자이기도 하다. 아바서원은 2019년 올베리의 책 <하나님은 동성애
도시는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준다. 그래서 시골이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한 꿈을 찾아 도시로 몰려든다. 도시에 대한 환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곳에 오면 성공할 것 같고 특별한 사람이 된 것같이 여겨진다. 이곳만큼 세련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곳은 없다. 모든 과학과 산업과 기술과 지성이 모여 있다. 도시라는 우상은 시민들에게 성공을 보장해 주고 인생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친다.어디 그뿐인가. 도시의 삶은 인간 생애 주기에 따른 교육·복지 시스템이 편성돼 윤택하고 편리하다. 이곳은 지상낙원이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을 갖췄
연일 터지는 기독교 관련 뉴스가 신자들 마음을 복잡하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일반 사회와 시민들은 교회를 향해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 있는 시국인데도, 부산에 있는 한 대형 교회가 예배를 강행하면서 정부의 방역 지침을 기독교를 향한 핍박과 탄압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상주에 있는 인터콥선교회 BTJ열방센터는 마지막 시대에 선교적 사명을 감당한다는 명목으로 위험한 상황 가운데 목숨을 걸고 모여, 많은 사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어느 종교나 자신들이 믿는 교리와 신앙 내용이 보편적 진리가 되기를
여기 성경과 씨름하는 한 사람이 있다. 교회와 학교에서 듣고 배운 피상적인 대답과 성경 본문을 견주어 보며 '이것이 그러한가'(행 17:11) 고민하는 사람. 성경 본문을 읽어 가며 "나는 이 구절이 이걸 의미하면 좋겠어"(19쪽)라는 자신의 욕망과 씨름한 사람이다. <지혜란 무엇인가 - 잠언-욥기-전도서의 상호작용>(감은사)은 성경 본문과 씨름한 송민원 목사의 노고가 담긴 작품이다.책의 전개 방식은 일관적이다. 저자는 고대 근동 언어 전문가답게 본문을 다루는 데 거침이 없다. 잠언·욥기·전도서에서 오독해 잘못 인용되는 본문들을 또
필자는 학창 시절부터 탄허(1913~1983, 속명 김금택)의 <부처님이 계신다면>(1979)·<현토 역주 주역 선해 1~3>(1982)·<현토 역주 도덕경 1~2>(1983, 이상 교림) 등을 읽었다. 이때부터 '당대 최고 학승'이라는 탄허의 사상은 필자의 관심 대상이었다. 특히 최근 필자가 연구한 <한밝 변찬린>(문사철, 2017)을 '사교 회통 사상가'라고 평가한 아무개 교수가 필자에게 두 종교 사상가를 비교해 보라고 제안한 일이 서평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저자 문광(속명 권기완)은 '탄허학'을 주장할 만큼 탄허 연구의 대가이
김동문 선교사의 책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성서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랍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지내온 그는 성서의 땅을 소개하는 데 가장 알맞은 사람이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펴낸 책들도 좋지만, 특별히 나를 행복하게 하는 책은 성경 읽기와 관련한 저서다.2014년 출간한 <오감으로 성경 읽기>(포이에마)를 읽으면서 김동문 선교사의 '맛'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전까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오감'을 통한 성경의 세계는 나에게 색다른 체험을 안겨 줬다. 나의 성경 읽
오늘날 확실히 예배는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변화는 현재형이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팬데믹이 던진 예배에 대한 도전은 기존 신앙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에게는 충격 아닌 충격을 줬다. 이제 '예배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수많은 이가 교회 건물이 아니라 각 가정이나 다른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보다 예배다운 예배를 꿈꾸다>(생명의말씀사) 저자 양명호 교수(홍콩중문대학교 신학대학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배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1부에서는 예배 정
수영은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시민배우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와 그의 경험에는 겹치는 지점이 있었기에, 각자의 연극에서 강조점을 다르게 두었다. 그 결과, 나는 진료과들 사이를 헤매야 하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의료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자 했고, 수영은 관계들 안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아픈 말들, 거기서 생기는 상처와 이를 관통해 나가는 삶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의 무대 위에서 펼쳐진 의심받는, 사람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경험들은 내가 경험한 소외와 단절들을 상기했다.그의 더 깊은 이야기들을 기다리던
처음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20대 초반, 한 권의 책을 접했다. <구원 그 이후>라는 책이었다. 그동안 구원에 대해 추상적이고 희미하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창세전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 우리의 행함이나 어떤 행위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총신대학교 신대원에 입학해서 또 한 권의 책을 접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었다.<하나님의 열심>은 성경에
신자는 자기 전공과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전공과 복음 사이에 연결점이 있어야 하고, 배우고 공부한 내용이 하나님나라를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 <과학자의 신앙 공부>(선율) 저자 생물학자 김영웅은 생명체의 신비와 비밀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더욱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간다. 우리 신앙도 이처럼 자기 삶을 통해 성숙하고 깊이를 더해 가야 한다.저자는 생명체의 구조와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이를 신앙과 연결해 교훈을 준다. 신앙은 자칫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며 무식한 모습으로 나타날
"들어 봐. 남자 밥 먹는 걸 보면 밤에 어떤지 알 수 있어.""어떻게?""밥을 게걸스럽게 먹으면 섹스도 그렇게 하지.""(그러면 그렇지…) 말이 되냐?""맛을 음미하며 먹는 사람이면 밤에도 그럴 확률이 높아."어느 날, 친구가 세상의 비기를 전수하듯 나를 가르쳤다. 내가 속한 한쪽 세계는 음으로 양으로 순결을 강조하고, 또 다른 세계는 "몇 년을 사귀고도 아직 '안 했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건데 덜컥 결혼하고 안 맞으면 어쩔래?" 하며 채근하던 시절이었다.결혼할 남자 친구가 있는 스물여섯 살 내게, 성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의
성경적 상담을 배울 때 고정관념이 하나 있었다. 국내 신자들은 목사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보다 세속 심리 상담을 자유롭게 이용하니, 몇몇 신앙적·교리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만 목사의 목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은 서구처럼 특별한 문제가 없을 때도 목사와 자연스럽게 상담하는 문화가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회 상담의 필요성이 크게 강조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문화와 권위주의적 사회구조가 변하면서 목사의 개인 상담도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성경적 상담학 관련 교재는 국내에 꾸준히 소개됐고 신학교나 기관에서도 상담을 전문적으로
과학과 신앙은 역사적으로 항상 다퉈 왔다.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추론한다. 과학은 신앙의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신앙은 과학적 기준으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건을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신앙 사이에 건널 수 없는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과학자의 종교 노트>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저자 곽영직 교수는 물리학자다. 그는 기독교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난 뒤 몇몇 사건만으로는 기독교 역사를 자세히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