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은 기다림으로 시작한다.…우리는 왕이 오시기를 기다린다"(15쪽). 티시 해리슨 워런이 던지는 이 선언은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현대 교회의 가장 심각한 영적 위기 중 하나는 '기다림'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응답과 신속한 결과를 요구하는 속도전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신앙생활 역시 효율과 생산성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에서조차 신앙을 측정 가능한 지표로 만들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닦달하곤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림절, 소망하며 기다리다>는 교회력
어떤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어떤 책은 손에서 놓았다가도 다시 펼쳐 들게 된다. 로버트 젠슨의 <종교개혁의 표어들 - 올바른 사용과 오용에 관하여>(비아)는 후자에 속한다. 줄을 그어 가며 두 번 정독하는 동안, 이 책이 단순히 종교개혁의 명제들을 해설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젠슨은 우리가 무심코 반복해 온 표어를 하나하나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생명력을 잃고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는지를 냉정하게 드러낸다. 1517년 가을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Schlosskirche) 문짝에 게시된 9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선생님께 매우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쓰신 책들을 통해 제가 품었던 신앙적 고민을 풀어 갈 수 있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꿈도 꾸기 어렵겠지만, 이역만리(異域萬里) 한국 땅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선생님의 저작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선물입니다.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흔히 역사적 예수 탐구의 세 번째 물결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바람이 한국으로 몰려왔을 때입니다. 뒤늦게 신학의 바다에 뛰어든 저는 <미팅 지저
"웃기지 않아? 이상하지… 새로운 데 와도 다 똑같아 보여."짐 자무시의 로드 무비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1984)을 관통하는 주인공 에디의 대사다. 윌리, 에디, 에바 세 사람은 무료한 삶의 자리, 뉴욕과 클리블랜드를 떠나 따뜻한 낙원, 플로리다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낙원은 거기에 없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 모노톤으로 단조롭게 칠해져 있다. 그런 까닭에 뉴욕, 클리블랜드, 플로리다로 배경을 옮겨 가지만, 에디의 말처럼 늘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단조로운
놀라운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전성민 교수가 편집한 <한국 기독교 세계관 READER: 기억과 모색>(IVP) 말입니다. 총 5부 16장 1242쪽으로 구성된 벽돌 책입니다. 1973년부터 2024년까지 30명의 저자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발표한 70여 편의 글들이 편집자의 해설과 함께 묶여 IVP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제, 이 귀한 책에 대한 저의 개인적 소감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최초의 작업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지난 50년간 한국 복음주의의 주된 주제였으며, '기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후회를 했습니다. '내가 어쩌자고 겁도 없이 승낙을 했을까?' 며칠 후 책이 도착했습니다. 서평을 써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습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났습니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교인들은 얼마나 아플까. 이 책은 교회를 사랑하는 교인들이 눈물로 쓴 반성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 모든 과정을 가까이 지켜본 구권효 전 <뉴스앤조이> 기자의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자랑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은 무엇일까? 아마도 '히브리서'라고 답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히브리서는 "같은 반이지만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는 친구"(42면)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연경 교수의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를 읽으면 최애가 '히브리서'라고 답할 사람들이 늘 것 같다. 왜냐하면 낯설고 복잡할 것 같은 내용을 아주 쉽게 이해하도록 인도할 뿐 아니라, 피곤에 지쳐 몽롱한 정신으로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정신 차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기
성장기를 보낸 교회를 가리켜 '출신 교회'나 '고향 교회'라는 말보다, 흔히 '어머니 교회' 혹은 '모(母) 교회'라고 부른다. 이러한 어휘 사용에는 한국교회 다수를 이루는 성별과 역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한국교회는 단연코, 많은 여성의 희생과 헌신으로 숱한 시련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다.어머니들의 자녀들이 자라나 교회를 섬긴다. 일부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된다. 그들은 어린 시절 즐겁게 뛰놀던 교회 풍경의 이면을 마주한다. 어머니 품처럼 마냥 아늑할 줄만 알았던 교회의 냉기를 느낀다. 더욱 쓰라린 사실이 있다. 어
부활은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부활은 말이 안 됩니다. 그렇기에 만약 부활이 있었다면 우리의 가치관은 완전히 전복되어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부활은 신앙의 머릿돌과 같습니다. 부활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이 가능합니다. 반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고전 15:14)에 불과합니다. 부활절만 되면 많은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다만 부활이 실제 역사 안에서 일어난 것인지 검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역사 끝에서 일어날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죠.
"만약 당신이 85세까지 살게 된다면 당신은 절반의 확률로 알츠하이머 환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절반의 확률인)알츠하이머 환자의 간병인이 될 것입니다."알츠하이머에 관한 소설 <스틸 앨리스>(세계사)의 저자 리사 제노바(Lisa Genova)가 강연에서 한 말입니다.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이 말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2024년 연말에 우리나라의 노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소망이 없었다.육군 일병 시절이다. 휴가 첫날 들른 서점에서 책 하나가 처진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제임스 패커'라는 저자 이름과 '소망'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두 가지만으로 충분했다. 바로 집어 들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만큼 소망에 굶주렸었다.그전까지 내게 기독교 신앙은 평면이었다. 지극히 단순했다. 하나님은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들어주시고 응답하는 분이었다. 그 매끈한 틀은 자대 배치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내면 이곳저곳에 유리 조각이 박혔다. 마음벽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으며 깨달았다. 지금껏 굳게 붙잡
1990년 2월 8일, 일흔다섯을 갓 넘긴 노인이 연속 강연을 한다. 희어진 수염, 낡은 주름, 의학 박사였지만 수도자의 길을 선택하고 격동하는 역사를 신앙으로 살아 낸 그는 어떤 지혜를 말해 줄까?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과 필기할 노트를 펼치고 있는데 노인이 말한다."저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힘이 빠지는 말이다. 75년의 세월을 하나님 앞에 산 수도자가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고, "아직도 바닥 신세를 면치 못"했다며 한탄하다니. 나긋나긋하지만 몹시 불편한 그의 자기 성찰은 이내 범위를 넓히더니 우리로 확장됐다.우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던 분과의 그 싸움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시작되었다. (중략)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격렬하고, 개인적이며, 갈등적이다. 그날 밤의 씨름에서 시작된 종교의 추종자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추종자들은 그들이 그토록 깊이 사랑하는 것들과 겨루고, 가장 거칠고 비참한 체험까지도 감내함으로써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개괄적으로 보여 주었다고 말해진다. - <3천년 기독교 역사 I - 고대사>(디아메이드 맥클로흐 지음)에서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느 기이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어둔 밤, 홀로 남
같은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교회에 얼마나 스며들어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따라 교회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형 교회에서 유명한 목사의 설교만 듣고 예배만 참석하는 교인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바로 발길을 끊을 수 있고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평생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며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교회 내에 형성된 교인의 정체성은 사뭇 다르다. 교회가 곧 자신의 신앙생활의 근간이 되며 모든 아름다운 추억과 일상의 가장 큰 축이었던 교인들은 교회가 직면한 '분쟁 상황
영화사에 기록될 위대한 영화인을 논할 때 스웨덴 출신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Ernst Ingmar Bergman)은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베를린, 칸, 베니스, 오스카 등에서 수상하며 1960년대에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던 그는 이제 막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구소련 출신의 한 젊은 감독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타르콥스키의 첫 영화와 만남은 내게 기적과도 같았다. 나는 갑자기 어떤 방의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금껏 내가 열쇠를 가지지 못했던 방이었다…. 타르콥스키는 내게 언제나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와도 같이.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정지용, '발열' 중아버지는 고열에 시달리는 아들을 차마 볼 수 없다. 가쁜 숨결을 몰아쉬는 아들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차라리 그쪽을 선택했으리라.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작디작은 아들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능력한 아버지는 아들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닥치는 대로 기도한다. '저 작은 아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차라리 저에게, 아이의 모든 아픔을 돌리십시오.'"아버지! 불과 장
'특강'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특별히 하는 강의'라는 뜻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무엇이 특별할까? 언뜻 보면 잠언 주해서 같기도 하고, 언뜻 보면 잠언 주석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이래서 특별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특별한 강의인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책 구입을 결정하기 위해 항상 먼저 보는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서론이다. 서론에는 저자가 이 책을 쓴 계기, 책의 서술 방법 등이 들어 있다. 책의 중요한 가치가 서론에 모두 녹아 있다고 생각하기에 반드시
그리스도교는 빛의 종교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빛을 증언하고, 그 빛을 반사하는 이들이다. 요한복음도 '그 빛'에 관해 증언한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요 1:3-4)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이에게 생명을 준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그리스도교는 이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빛'을 말한다. 그러나 '어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빛이신 그리스도는 어두운 세상에 성육신했다. 그리스도는 새 생명의
제가 현대신학을 처음 접한 것은 젊은 시절 우연히 간하배(Harvic Conn) 선교사가 쓴 <현대신학 해설>(개혁주의신행협회)이라는 책을 접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책의 원래 의도는 보수 장로교 신학의 입장에서 당시의 대표적인 현대신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었지만, 이 책을 접한 저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현대신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광활하고 험준한 현대신학의 '영토'를 탐사하기 위해서는 그 지형도를 친절하게 안내해 줄 소개서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그동안 목창균 교수님의 <현대신학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의 설교집 <기다리는 아버지>(복있는사람)가 원문인 독일어에서 직접 번역되어 나왔다. 원제는 <예수의 비유들. 하나님의 그림책 Die Gleichnisse Jesu. Das Bilderbuch Gottes>이지만, 영역본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로 제목이 바뀌었고, 1978년 영역본이 한국에 소개될 때 이를 그대로 따랐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영어 번역이 좀 더 감각적이지만, 예수의 비유를 하나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