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

식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

이 작은 나무에서 누군가는 울고 웃었을 나무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밑동만 남은 나무는

물을 주어도 햇빛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추억을 지키고 싶다면

나무를 끌어안고 봐 보아라"

5월 1일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 인근 공터에서 5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5월 1일 안산 화랑유원지 내 생명 안전 공원 부지 인근 공터에서 5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예배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 군이 생전 지은 시 '나무'를 읽으며 시작했다. 호성 군의 어머니 정부자 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쥔 순서지만 들여다봤다. 마주 보이는 나무에는 노란 리본이 걸려 있었다. 단원고 2학년 1반 문지성 양 엄마 안명미 씨는 시를 읽은 후 짧게 기도했다. "우리가 끝까지 끌어안아야 할 것, 아이들과 진실을 바로 이곳에서 지켜 내게 하소서."

세월호 5월 예배가 5월 1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렸다. 가족들과 4·16생명안전공원 예배팀은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5시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예배를 드린다. 생명 안전 공원 무사 건립을 염원하고 희생된 아이들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예배는 지난 달 8주기 기억 예배부터 현장 전환했다.

이날 예배는 화랑유원지 오토캠핑장 입구에서 오른쪽 산책로로 100m 정도 걸으면 나오는 공터에서 진행했다. 지성 엄마, 호성 엄마, 예은 엄마를 비롯해 서울·군포 등지에서 찾아온 그리스도인들이 노란 플라스틱 의자에 모여 앉았다. 왼쪽 편으로 노란색 벤치와 파란 고래가 그려진 팻말과 함께 생명 안전 공원이 조성될 부지가 보였다. 겨우내 얼어 있던 빈 땅에는 어느새 연녹색 풀들이 낮게 자라 있었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5반 아이들 2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단원고 2학년 3반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와 정경일 교수(성공회대)가 아이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줄넘기 대회에 나가면 늘 1등을 하고 어머니와 다정하게 지내는 김건우.

과학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그걸 토대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속정 깊은 쿨가이 김건우.

엄마에게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리는 피아노 천채 김도현.

법과 정치 교과 도우미, 책상 이동 도우미로 언제나 선생님을 도와드리는 김민석.

부모님이 힘들게 버신 돈을 허투로 쓰고 싶지 않다던 속 깊은 아들, 특수부대 군인이 꿈인 김민성.

일요일 오후에 아버지와 화랑유원지에 가서 축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김성현.

까칠하다가도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마음 따뜻한 아들 김완준.

농구, 축구, 줄넘기, 달리기 등 몸으로 하는 것도 잘하고 손으로 조립하는 것도 잘하는 김인호.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 주는 안산 상담원 김진광.

어른스럽던 아들, 고단한 어머니의 삶의 위로인 김한별.

복싱 대회와 생활체육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탈 정도로 운동을 잘하고 경호원이 되고 싶은 문중식.

평화주의자, 정의주의자, 이태석 신부님 같은 사제가 되기를 소망하는 박성호.

잔걱정 없이 늘 긍정적이고, 어머니에게 직접 만든 커피를 맛보여 드리는 것을 좋아하는 박준민.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님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은 대건 안드레아 박진리.

사교성이 좋아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형들과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박홍래.

자신의 끼를 무대 위에서 마음껏 펼쳐 보고 싶은 명랑 소년 서동진.

다정하고 애교 많은 아들, 집안의 꿈과 희망 꿈돌 준영 오준영.

세계 곳곳을 소개하는 관광 가이드가 되고 싶은, 아버지의 영원한 우리 아가, 우리 준이 이석준.

주변 사람들을 항상 웃게 만들어 곁에 있기만 해도 행복을 주는 이진환.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리 있는 츤데레, 믿음의 가정 안에서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창현.

독특한 디자인의 옷을 사는 것이 취미이고 미용사를 꿈꾸는 콩순이 이홍승.

누나들의 청을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는 집안의 남자, 가족을 가깝게 묶어 주는 인태범.

편찮으신 어머니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면서도 늘 웃고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정이삭.

엄마와 비밀 없이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동생 별명이 오징어라서 오징어 오빠라고 불리는 조성원.

웃으면 눈이 초승달이 되고, 직접 만든 빵을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좋아하는 천인호.

보석처럼 빛나는 아들, 목표를 이루기 위해 PC방도 끊고 공부에 집중하는 최남혁.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상식이 풍부하고 행동이 반듯한 하루카 씨 최민석."

.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부자 씨 옆으로 넓게 펼쳐진 생명 안전 공원 부지가 보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부자 씨 옆으로 넓게 펼쳐진 생명 안전 공원 부지가 보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4·16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부서장인 정부자 씨는 가족들을 대표해 생명 안전 공원 진척 상황을 설명했다. 생명 안전 공원은 오는 9월 착공을 앞두고 있다. 남은 4개월간 기재부의 예산 승인과 최종 공사 도면을 확정하는 '실시설계' 단계를 거쳐야 한다. 공원 건립이 확정된 2019년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은 반대 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안산시를 비롯해 국무조정실·해양수산부 등과 합의를 이뤄냈지만, 가족들에게는 착공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생겼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기존 사업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직까지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가가 세월호 참사를 과거사로 만들었다. 올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임기가 끝나면 세월호 참사는 과거사가 된다.

 

아이들의 고향이자 추억이 있는, 단원고가 보이고 엄마 아빠들이 근처에 사는 이곳에 우리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한 이유는 진상 규명을 끝까지 이루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부모들은 미래 세대와 안전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국가가 해 주지 않는 진상 규명을 시민들과 함께해 나갈 것이다.

 

진상 규명은 끝나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또다시 손잡고 뚜벅뚜벅 가야 할 일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올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9월에 공사가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해 달라."

참가자들은 시편 14편을 묵상하고 느낀 점을 나눴다. 안산에 거주하는 조선재 씨는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라는 6절 말씀이 와닿았다고 했다. 그는 "차기 정권에 기대할 건 없다. 답답하고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에는 기억식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실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김혜숙 씨는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는 말씀을 언급했다. 그는 '세월호 이야기를 그만하라'는 말을 접하고 속상해하는 자신을 통해 가족들의 고통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기만 하면 모두 어리석지 않은 사람인지를 질문하게 된다"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가난한 자, 가장 상처받은 자와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별이 된 아이들을 대신해 가족들에게 포옹을 건네며 카네이션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은호 목사(희망교회)는 예배를 마치면서 생명 안전 공원 건축이 순탄히 진행되고,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뜻을 함께하는 후보자가 당선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예배에는 .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예배에 참석한 이들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카네이션을 건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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