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번역가올해의 책을 뽑아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오른 책은 세 권이었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의 <바다의 문들>(비아),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바다출판사), 그리고 피터 맘슨의 <부서진 사람>(바람이불어오는곳). 모두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좋은 책이었다. 벤틀리 하트의 저작은 특유의 현란한 수사, 날카로운 통찰들이 인상적이었고, 캐럴라인 냅의 저작은 매력적이고 위트 있는 문장에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고심 끝에 나는 올해의 책으로 <부서진 사람>을 고르기로 했다. 역설적이지만 이 책은 올해가 지
김은석 뉴스앤조이 사역기획국장"욥기의 결말은 신이 잔인한 게임을 즐긴 뒤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보인다."(248쪽) 욥기를 읽고 내게 남은 인상이 딱 이랬다. 위엄차게 등장한 조물주의 존재 증명에 압도되면서도, 불경한 물음이 심연에서 스멀거렸다. '이게 사랑과 정의의 신일까? 무고한 욥과 그의 가족이 겪은 고통과 절망, 죽음의 이유는 대체 무엇?' 비슷한 물음들이 욥기의 역사와 공존했다. 고대부터 인류는 욥기 앞에서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24쪽)의 질문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마블이나 DC의 히어로물을 좋아하지만, 우리 인생과 신앙이 영화처럼 확실한 승리를 거두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이들의 간증은 마치 전범으로서의 각성조차 없는 아이언맨의 기자회견처럼 느껴진다. 그런 유의 책으로 재미 보는 기독 출판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한 구절>이 아주 특별한 기획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짧은 분량 안에도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담담하게 풀어 낸 저자들의 이야기는 분명 울림을 준다. 그저 버티고 또 버
이민희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인간은 자신을 해석해 보려고 많은 이야기를 지었다. '그리스신화', '길가메시서사시' 같은 고대 기원 이야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같은 낯선 종족들과 세계 이야기, 그리고 '마블 시리즈'의 슈퍼 히어로들까지. 흥미로운 점은 초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펼치는 장관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랑·우정·용기 등을 발견하려 하고, 신뢰와 상식이 깃든 관계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각자의 뿌리가 어딘가에서 이어지리란 막연한 기대의 방증일지 모른다.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그리스도교 신학의 거장이 자신의 신학과 사상을 오롯이 담아낸 책이라면, 뭔가 인간계를 넘어설 정도로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가 드높이 펼쳐질 것도 같지만, 한스 큉은 서문에서부터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신학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날아들지 않고, 저 아래 일상이라는 골짜기에서 시작할 것"(16쪽)이라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 책의 모든 챕터는 '삶의 ○○'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돼 있다. 모든 주제가 한스 큉이라는 대가를 관통하여 삶의 이야기로 재배열된다. 단순히 교리를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울타리가
박혜은 서울책보고 매니저"나로 살아 내고 너를 살려 내기 위해, 우리가 '함께' 가져야 할 유산을 성경 속에서 찾고 싶었다." (11쪽)머리말에 적힌 지당한(!) 고백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진 건, 휘청이는 삶의 어느 순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연말이면 더 짙어지기 때문일 터.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인 '경經줄'과 인간 저자가 지식의 제한 속에 쓴 '서書줄'의 메시지로 직조된 텍스트라는 전제는 저자의 성경 읽기 핵심이다. 또 다른 핵심은 "떠돌이 이주 노동자들"(37쪽)이자 "사회적 배제자"(39쪽) 즉 '하비루'
박혜은 서울책보고 매니저그리스도인이 왜 창조 세계를 돌볼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교과서적'으로 설명한 후 실천으로 나아갈 것을 독려하는 기본서이자 실천 제안서. 기후변화 시대에 환경 보존 실천을 고민하는 교회 공동체가 기본 교재로 사용하기에 알맞다. 교재를 연이어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중간에 좀 졸기도 했지만, 단단한 성경적 기초 위에서 더 충실한 실천 행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저자는 성실히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이 환경을 위해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하는 당위를 톰 라이트가 제시한 5막의 성경 드라마에 따라 설명한 전반부의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복음주의 배경에서 내내 살아온 나는 솔직히 전례와 성찬이 중심이 되는 예배가 여전히 낯설다. 원래부터 예전에 익숙한 사람들은 '굳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담긴 의미와 배경,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확실히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관찰자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거슬러 진지한 자세로 예전을 탐구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매우 좋은 안내서다. 예배에 대한 책은 대개 본질과 진정성만 지루하게 반복하며 변죽만 울리기 일쑤인데, 이 책은
일요책방 북큐레이터 용도사2021년 버전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신학대학원 영구 휴학생으로서 동감하며 술술 읽었다. 목사직을 내려놓고 집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아 끄덕이며 읽었고, 저자의 솔직함과 뜨거움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표지에는 없지만 맨 뒷장 서지 정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제목 "우리는 왜 목사를 하는가?"가 이 책의 핵심 질문이다. 자칫 꼰대스럽거나 어둡게만 그려질 수 있는 스토리를 저자가 1인칭으로 풀어내 부담스럽지 않다. 몇 수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신학대학원 진학 후 엘리트 코스를 꿈꿨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기도라면 모름지기 뜨겁고 힘 있게,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정확하게 간구해야 한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다. 이런 복음주의식 기도에도 나름대로 일정 부분 미덕이 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문제는 열정의 기도 이후에 찾아왔다. 더 이상 기도문이 써지지 않고, 입 밖으로 기도가 나오지 않는 시간들을 만났을 때 혼란스러웠다. 열정이 부족하니 더 '열정, 열정, 열정!' 하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결핍을 느끼는 이들과 인생의 어둠 같은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밤 기도'를 권하는 이 책이
일요책방 북큐레이터 용도사성경 속 여성들이 살아났다. 그들의 절규, 저항, 연대, 희망에 찬 기도가 이 책을 읽는 공간에서 재현되는 것 같았다. 냄새가 나고 만져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신학 서적을 열심히 읽으면서 구속사적·영적 성경 읽기에 갇힌 관점을 수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성경 속 여성을 수동적으로, 구속사의 장엄한 주인공 남자들의 들러리로만 여기는 정서를 전제한다는 걸 알았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저자는 오랜 해외 생활 후에 남아프리카로 돌아왔다. 고국의 처참한 상황과 세계의 저항운동, 주디스 버틀러 같은 사상가
일요책방 북큐레이터 용도사"그리스도교의 신론은 순전히 '그리스도교적'이기만 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215쪽)이런 책을 찾고 있었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이미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펼쳐 놓은 책은 있었지만, 이렇게 깔끔하면서도 핵심 쟁점이나 인물, 주장을 빼놓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비교적 작고 얇은 책이라 방심했는데, 챕터마다 저자의 정리 실력에 감탄하며 그동안 부분적으로 배웠던 역사 속 신론을 다시금 한눈에 정리할 수 있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고대 이스라엘 종교가 다신론 세상에
최경환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예수를 더 깊이 알고 싶어 공부하다 보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예수에 대해 많이 알 수 없다는 것. 둘째, 제한된 영역에서 예수에 대해 알더라도 그 지식은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에 그리 유용하지 않다는 것.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할수록 예수의 성품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학자들은 점점 회의감에 빠지나 보다. 하지만 마커스 보그가 보여 주는 예수는 다르다. 그가 소개하는 예수는 온화하고 따뜻한 영적 '인간'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에 저항하던 민중 봉기
정다운 번역가우리는 종종 우리의 '시작'을 알고 싶어 한다. 교회의 첫 모습. 초대교회의 풍경 같은 것들. 길을 잃었을 때일수록 그런 열망은 강해진다. 아마 그건 순수했던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는) 우리의 시작을 되찾고 싶은 소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초대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온갖 이상화·낭만화의 대상으로 왜곡되기도 쉽다. 그러한 왜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엄정한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연구와 문법적 분석'에 더불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묵상과 상상력'에 열려 있는 안내자가 필요한
박혜은 서울책보고 매니저먹고사는 일에 치여 월급 날짜만 세며 땅에 파묻혀 살다가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야. 벽 너머에 또 다른 실재(Reality)가 있다고." 천사든 환상이든 모든 수단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기를 갈망했던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거하시려고 땅과 긴밀하게 연결된 곳"(50쪽)으로서 '하늘나라'를 자기 거처로 삼으셨다. 하늘나라는 '죽음 이후 하프를 켜며 행복을 경험하는 저 멀리 어느 곳'이 아닌 것이다. 호그와트는 승강장을 통해야만 갈 수 있지만,
이민희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 연구원레슬리 뉴비긴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이지만, 비슷한 꼬리표가 붙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통찰은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빛을 발하고 있다. 교회의 문제들을 향한 그의 지적은 여전히 생생하고 강력하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IVP), <종결자 그리스도>(도서출판100) 등 뉴비긴의 책에 담긴 판단과 분석은 예언 같다. 현대 경관에서 복음·선교·문화의 만남을 인식하려면 고립된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이보다 더 정확하고 자세히 균형을 갖춰
이민희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 연구원모두에게 선하고 모든 일에 자비를 베푸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력과 공포를 조장할 수 있을까? 대니얼 호크는 이 질문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 신의 폭력에 대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결정적인 설명 자체가 가능한지 의심한다. 그는 신의 폭력에 쉽게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며, 성경적 답안이 아닌 성경적 사고에 방점을 둔다. 지나치게 깔끔해서 결국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고 마는 답안에 집착하기보다는 성경 속 폭력을 괴롭게 보라고 제안한다. 특히나 이런 폭력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쉽게 단
개봉동박목사마태복음에 나란히 실려 있는 팔복과 주기도문은 수많은 설교자·학자가 해설에 도전한 본문이다. 더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힘들 뿐 아니라 자칫하면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로 빠질 확률이 높다. 이 본문을 택해 책을 내겠다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혹은 뻔뻔함)이 있거나, 이 본문에 대한 깊은 애정과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덕주 교수님이 팔복에 관한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왜 굳이 이걸?'이라는 의문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덕주 교수님이라면?'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다행히도 책을 다 읽고 남은 건
박혜은 서울책보고 매니저이 책은 올여름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다. 가슴에 머문 기독 출판물은 많았는데 머리에 머물다가 결국 가슴으로까지 내려온 책을 만나는 건 드문 일. 긴 시간이 걸린 작업이었던 만큼, 이 책은 내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열어젖혔다. 과연 '비아 제안들 시리즈'는 믿고 읽는 시리즈가 되어 가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이름도 낯선 벤틀리 하트의 주장, 그러니까 "고난과 죽음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목적도 갖지 못한다"(53쪽)는 것이 신약성서의 가르침이라는 말이 혼란스럽게만 느껴졌다.
이민희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 연구원준비된 죽음이 어디 있을까. 어떤 모양의 죽음이든 남은 이들에게는 황망하기만 하다. 쉰 살이 넘어 근 100년을 사신 엄마를 잃은 저자는 당혹스러울 만큼 날것의 감정을 휘몰아치듯 쏟아 낸다. 저자의 표현처럼 '미친년'이 돼 마구잡이로 자신의 기억을 탈탈 턴다. 신기한 건 산만하거나 혼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자의 영혼 속 한 자리에 같이 침잠하게 된다. 울컥울컥 토해 내는 단어들 앞에서, 중년의 고아가 된 저자가 안쓰러워 울었고, 무언가를 잃고 누군가를 지워야 했던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