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의 연합인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모임(평등세상)'이 8주에 걸친 연속 포럼 '세상을 바꾸는 여름'을 기획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구을)이 6월 16일 '평등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대표 발의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 개신교 내에서 차별·혐오의 언어가 이전보다 더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포럼 사회를 맡은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정경일 원장은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교회를 피난처로 삼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부끄럽게도 오히려 교회로부터 혐오를 당해 사회에 호소하고 있는 도착된 현실을 살고 있다. 혐오의 생산자·유포자가 돼 있는 교회의 현실을 바꾸고 환대의 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번 포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6월 28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첫 번째 강좌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저자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와 기독교윤리학자 김혜령 교수(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가 '혐오는 어떻게 도덕이 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지혜 교수는 타인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종교의자유를 근거로 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지혜 교수는 타인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종교의자유를 근거로 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은 진정한 '종교적 행위' 아냐
"본인 권리 침해 주장하지만,
순전히 타인 권리 빼앗는 일"

종교적 신념이 차별의 근거로 악용된 역사는 길다. 특히 미국에서는 성경이 인종차별의 근거로 사용됐다. 다양한 인종이 있는 건 하나님의 섭리인데 혼혈이 되는 것은 창조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인종 간 결혼을 금하거나, 근본주의 개신교 대학의 경우 흑인의 입학을 금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을 자행했던 때도 있었다.

성경은 더 이상 인종차별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유독 성소수자와 관련해서는 성경이 여전히 차별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2014년 호주 법원은 성경에 등장하는 동성애 관련 구절이 현대사회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김지혜 교수는 호주의 '코바우(Cobaw) 판결'을 소개했다. 한 지역단체가 동성애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차별의 영향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열기 위해 기독교 기관이 운영하는 장소를 대관하려 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호주 법원은 이 차별 사건에 종교적 근거를 가져다 댈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죄인을 포함한 차이에 대한 관용을 요구하는 내용에 비춰 볼 때 이러한 차별이 진정한 '종교적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평등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종교의자유가 침해받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지혜 교수는 종교를 이유로 다른 구성원의 존엄성과 평등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동성혼이 통과된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결혼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건 순전히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기 위한 일이지,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주장이 아니다. 특정 교리를 근거로 타인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 괜찮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김혜령 교수는 예수가 혁명적이었던 것은 당연히 대접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닌 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혜령 교수는 예수가 혁명적이었던 것은 당연히 대접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닌 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수가 주목한 약자는
사회 인식 때문에 배제된 이들
"죄인이라 죄인인 것 아니라
잘못된 인식이 죄인 만들어"

김지혜 교수에 이어 발표한 김혜령 교수는 예수의 사역이 혁명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율법·종교법 등으로 구제받을 수 없는 사람, 즉 '자격 없는 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수가 만난 사회적 약자를 여러 층위로 나눴다.

첫 번째 층위는 '고아와 과부'다. 선량하고 무고한 이들이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가난해진 사람들도 아니다. 하지만 사복음서에는 고아가 한 번, 과부가 두 번만 등장한다. 김 교수는 그만큼 예수는 고아와 과부에게 별로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미 당대 율법·종교법에서 마땅히 도와야 하는 이들로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예수가 사회에서 마땅히 도와야 할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지탄받고 배제당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예수가 만난 다음 층위의 사회적 약자는 '병자와 장애인'이었는데, 사복음서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김 교수는 여기서 오늘날의 '병자·장애인'과 당대의 '병자·장애인'을 이해가 달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대 사람들은 병에 걸리는 이유가 부모의 죄 혹은 하나님의 저주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 비과학적 근거를 댔고, 따라서 '병자·장애인'은 마땅히 도와야 할 사람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기피 대상이 됐다. 예수는 오히려 이들에게 집중했다는 것이다.

"성서에 나온 유대인들은 '병자와 장애인'을 죄인으로 여겼지만, 실제로 그들은 죄인이 아니었다. 잘못된 인식 때문에 죄인으로 취급받아 공동체 밖으로 쫓겨났을 뿐이다. 예수는 공동체 밖으로 내몰린 이들을 불러 직접 고치면서 일상생활로 복귀시킨다. 그들을 공동체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신교인 중에는 성소수자를 세리, 음행한 자와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존재와 행위를 뒤섞어서 구분없이 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동성애 행위는 죄이기 때문에 그 죄에서 돌이켜야만 용서하고 받아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김혜령 교수는 이 같은 논리가 예수 가르침의 핵심에 있는 이웃 사랑을 '조건부'로 만든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예수는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이들을 불러 죄를 사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줬는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 대한 혐오 선동을 일삼고 대중을 겁박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래도 소용없다.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고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역사는 진보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서 고통받는 자들과 언제나 우선적으로 함께하신다"라고 말했다.

박상훈 신부(사진 왼쪽)와 김동규 연구원이 토론을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상훈 신부(사진 왼쪽)와 김동규 연구원이 토론을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두 강사의 발제가 끝나고 토론자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와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에서 활동하는 김동규 연구원은 평등법 제정을 위해서는 중도적 입장에 있는 개신교 오피니언 리더들이 입장을 정리가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검찰 개혁 등 다른 정치 이슈에는 가톨릭·개신교인 수천 명이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적 있다. 평등법 제정 국면에서도 이분들이 입장을 밝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박상훈 신부는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강하게 누군가를 혐오하는 건,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지 않다고 했다. 박 신부는 "인간의 참된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그리스도교는 있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의 참된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평등세상 포럼은 앞으로 7주간 이어지며 △환대와 연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 △섹슈얼리티와 젠더 △장애와 몸 △이주민과 난민 △노동과 가난 △차별금지법 이후 교회 △세계교회와 차별금지법 등을 주제로 강연을 연다. (신청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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