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는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최근 한국갤럽이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직장 동료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교회 양상은 전혀 다르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가 교회·사회의 몰락을 불러올 거라고 주장하면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여지없이 달려가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이 5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교인과의 만남'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권 의원은 "개신교계에서는 차별금지법 반대 목소리만 집중적으로 들리고 있는 상황인데, 같은 영역에서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게 균형 있는 접근이라 생각해 자리를 만들게 됐다. 세상의 변화를 위한 하나의 기회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보궐선거 패배 이후 민심을 듣기 위해 시작한 '국민 소통, 민심 경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국회를 찾았다. 왼쪽부터 이동환 목사, 정혜진 연구실장, 민김종훈(자캐오) 사제, 임보라 목사, 권인숙 의원, 박승렬 소장, 최형묵 목사, 정경일 원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국회를 찾았다. 왼쪽부터 이동환 목사, 정혜진 연구실장, 민김종훈(자캐오) 사제, 임보라 목사, 권인숙 의원, 박승렬 소장, 최형묵 목사, 정경일 원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동안 각자가 몸담은 현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온 개신교인들이 간담회에 참석했다. 권인숙 의원은 이들에게 동료 의원들이 실제로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조직된 힘을 두려워 한다고 했다. 권 의원은 "차별금지법·건강가정기본법 등 반대가 심한 법안은 실제로 항의 전화·문자 등에 시달린다. 의원들뿐만 아니라 보좌진들까지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와 관련해 다른 여지를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혜진 연구실장(기독여민회)은 국회를 공격하는 데 앞장선 현재 반동성애 진영과 일부 목사들의 극단적 행태가 위험 수위까지 와 있다고 했다. 헌법에는 양심의자유가 보장돼 있는데, 주요 교단에서 동료 목회자를 검열하며 정체성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반동성애 목소리를 내는 이들 전부를 극우 세력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이들 대부분이 정치 의제에서 극우주의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동성애 문제에 일부 대형 교회가 합세하면서 세력이 커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띄기 때문에 차별금지법과는 상관없이 앞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박승렬 소장(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도 이 목사 의견에 동의했다. 기독교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만 놓고 정당을 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한국교회에 동성애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고 있다며 정치인들이 종교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스스로 묻고 판단해야 할 때라고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가 교단 내 일부 목회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는 반대 목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도 표심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동성애 진영이 내는 목소리는 열성적이고 공격적으로 들리는 데다가 과잉 대표된 경향이 있다고 했다. 최 목사는 "게다가 차별금지법 반대는 꼭 신학적인 이유로만 볼 수도 없다. 의제 자체가 상당히 정치화돼 있다. 과거 도시산업선교회 등 기독교 내 노동운동을 공격했던 패턴과 똑같다. (의원들이)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도 정치권이 너무 보수 개신교의 눈치만 보지 말고 조금 더 크게 봐 달라고 주문했다. 정 원장은 "정치에서도 선동 정치가 문제인 것처럼 개신교에서도 소수 극우 진영의 선동 신앙·신학이 문제다. 그럼에도 사회가 인권 지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듯이 개신교 내에도 인권 지향적인 흐름이 이어져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료 시민이 헌법적 권리를 누릴 자유를 일부 개신교인이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차별금지법이 14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쏟아지는 항의를 받아 내기 힘든 건 알지만,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던진 이유는 그런 걸 감안해서 견뎌 내 달라는 의미도 있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한 입장과 목소리를 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김종훈(자캐오) 사제(성공회 용산나눔의집)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정치인 역할에 더 집중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민김 사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동행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종교적 교리를 근거로' 방해하려는 일부 개신교계의 행위는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 정치권이 이들의 의견을 일반 시민의 의견과 동등하게 대하기보다는, 종교적 논쟁으로 보고 입장이 다른 종교인과 토론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가 명확한 입장을 내세울 때 더 많은 사람이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교계에서 들리는 반동성애 목소리가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말하기 때문에 목소리에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상식적인 목소리와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일반 교인의 인식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며 정치권이 눈치 보지 말고 소신대로 제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권인숙 의원은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도 듣고 싶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권인숙 의원은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도 듣고 싶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편,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는 지난 5월 25일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 동의 청원을 시작했다. 차제연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국회는 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틀렸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국민이 국회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국민의 인식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청원은 6월 23일까지 계속되며 국회 국민 동의 청원 사이트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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