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출범을 알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평등세상)는 9월 6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때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평등세상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목소리가 개신교 전체 목소리인 것처럼 들리는 한국교회에 다른 목소리도 있음을 알리기 위해 결성됐다. 지난해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제정을 권고한 후 첫 활동을 시작했다. 11개 단체가 모여 필요성을 논의했고, 지난해 7월에는 110개 이상 교회·단체 이름으로 차별금지법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이를 국회에 전달했다. 올여름에는 연속 포럼 '세상을 바꾸는 여름'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당위성을 짚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처음 나온 2007년에도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개신교인들이 모임을 꾸린 적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임이 흐지부지됐고, 상대적으로 주류 개신교는 '반동성애' 진영과 발맞춰 활동했다. 그 결과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낙인찍거나, 교단법을 개정해 성소수자를 쫓아내고, 퀴어 문화 축제를 폭력적으로 막는 등 활동에 앞장섰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은 9월 6일 네트워크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은 9월 6일 네트워크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선동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스러졌다고 했다. 임 목사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당장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을 차별로, 혐오를 혐오로 이름 붙일 수 있다. 누군가의 권리를 짓밟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교회 신뢰도는 날로 추락하고 있는데,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면서 사람을 쓰러트리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수경 대표(청어람ARMC)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품고 사랑을 실천하는 미래 지향적인 빛과 소금의 길로 가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오 대표는 특히 찬성·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은 중간 지대에 있는 이들을 언급하며 "세상은 다양한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넓히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중략) 차별금지법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누구를 판단·정죄하는 데 사용되는 게 아니라, 피조 세계를 더 넓게 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등세상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기독여민회·청어람ARMC 등 개신교 단체뿐 아니라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우리신학연구소·천주교인권위원회 같은 가톨릭 단체들도 참여한다.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박상훈 신부는 "차별금지법을 수용하면 꼭 동성혼까지 수용하는 것처럼 곡해한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인간의 생생한 현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절박한 현실을 다루며 실존하는 차별을 없애자는 법이다. (중략) 그리스도교에는 차별과 배제가 설 자리가 없다. 법 제정에 동참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톨릭 신앙인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성소수자부모모임 하늘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했다. 사진 제공 평등세상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성소수자부모모임 하늘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했다. 사진 제공 평등세상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모여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성소수자부모모임 하늘 대표는 눈물을 흘렸다. 가톨릭 신자인 하늘 대표는 "목사님·신부님의 발언을 듣다 보니 감격에 벅차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오시는 많은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힘들어한다. 혐오 일색인 발언에 더욱 괴로워하신다.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너무 중요하다. 연대와 일치로 평등 세상을 실현하려는 교회 공동체가 있다는 소식은, 교회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이 위로와 희망을 품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평등세상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와도 긴밀히 협력할 예정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는 "오늘 출범식은 기록에 남을 자리다. 종교의 언어로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연대하겠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연대를 통해 평등한 세상을 마주하면 좋겠다. 그리스도교인들 또한 이 과정에 함께할 것이라는 걸 알렸으니 이제 국회 또한 평등의 시간에 합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9월 1일부터 온라인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출범식이 있던 날 아침, 평등세상 구성원들은 기도회를 열었다. 줌 영상 갈무리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9월 1일부터 온라인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출범식이 있던 날 아침, 평등세상 구성원들은 기도회를 열었다. 줌 영상 갈무리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9월 1일부터 '2021 평등의 이어달리기 온라인 농성’을 진행 중이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ZOOM)에 모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다양한 논의를 이어 가고 있다.출범식이 열리는 날의 온라인 농성은 평등세상의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기도회’로 시작했다. 평등세상 구성원과 시민 활동가 35명이 모여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차별받고 있는 장애인·난민·여성·성소수자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평등세상은 출범식과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합니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곧 열리는 주요 장로교단 총회를 앞두고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는 각종 행태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10월 중에는 각 교단 총회의 성소수자 관련 결의를 모아 팩트체크하는 형식의 토론회를 연다. 한국민중신학회·한국여성신학회 등도 참여하고 있는 만큼, 성소수자를 대하는 신학적 자료를 정리해 연내에 발행할 예정이다.

다음은 출범 선언문 전문.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 출범 선언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합니다!"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에서 차별받고 혐오를 당하던 소수자들인 유대인들과 운명을 같이했던 그리스도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는 예수님이 함께하며 사랑하셨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정결치 못하다며 혐오당하던 사람들, 죄인이라며 배제당하던 사람들, 존재를 부정당하던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사랑하셨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어울려 살아가는 하느님나라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입니다."(마태복음서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 시대의 배제된 자, 차별과 혐오를 당하는 자, 소수자를 환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인데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에' 지지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다양하고 존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다양한 인간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고, 약자와 소수자의 존엄성을 부정하며 혐오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나라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세상 속에서 하느님나라를 키우고 가꾸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당한 이들에게 새 생명과 새 삶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권세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바라."(로마서 13:1)고 말했듯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하는 차별금지법은 하느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신앙의 명분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차별과 혐오의 선동 정치를 그만두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자리, 선교의 자리, 봉사의 자리로 돌아가,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나라의 시민으로 초대하고 환대해야 합니다.

하느님나라의 씨앗인 교회는 적대가 아닌 환대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향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 곳을 당신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마가복음서 11:17)라고 외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존귀하게 지으신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포용해야 한다는 비전이면서, 차별과 배제, 혐오를 포기하지 않는 종교에 대한 준엄한 심판 선고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인종, 문화, 계급, 성별 등 모든 차이를 뛰어넘는 일치와 평등의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의 기원은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라디아서 3:28)라는 포용과 환대의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하느님나라 공동체와 초대교회의 정신을 기억하는 오늘의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제시하는 차별 금지 사유의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법적 차별 금지 사유가 다 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차이 또한 하느님이 지으신 놀라운 다양성의 하나로 환대할 것입니다.

21대 국회와 각 정당 국회의원에게 호소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처음 발의된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총 7번에 걸쳐 국회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법안의 당위와 명분에 대해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 모두 인지하고 인정하고 있는데도, 일부 그리스도교 집단의 눈치를 보며,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소망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국민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입니다. 일부 차별과 혐오 집단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며 오늘의 시대정신인 "만인이 평등한 세상",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당장 참여하십시오. 국회는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나이, 학력, 출신 국가, 고용 형태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타협 없이 당장 제정하십시오.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보호하는 법만이 이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완성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교회와 사회가 실천해야 할 최대 윤리가 아니라 최소 윤리입니다. 우리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은 법 제정과 제도 마련에서 멈추지 않고, 모든 소수자와 약자를 환대하는 사랑이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에 문화가 되고 일상이 되고 기본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 기도하고 연대하며 행동할 것입니다.

2021년 9월 6일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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