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직장을 가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당신의 일은, 진정한 당신의 삶은, 당신의 진정한 우선순위는 가정에 있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느라 지쳐 있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은 매일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고 싶다면, 그리고 당신이 기혼 여성이라면 당신을 향한 그분의 계획이 먼저 우선적으로 가정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에게 당신의 가족과 가정을 책임지고 돌보도록 하셨다. [엘리자베스 조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성>(생명의말씀사), 214~215쪽]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현대인의 시각으로 읽으면 의아한 이 책은 불과 20년 전인 2001년 출간됐다. 저자 엘리자베스 조지는 20세기 말, 미국에서 근현대 사회 근간을 이루던 핵가족 외형이 무너지자, 전통적 개신교의 이상을 회복하기 위해 '가정 회복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여성은 그 무엇보다 '가정'에 우선한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전통적 개신교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당연시하며 각각 이에 따른 일정한 역할이 있다고 봐 왔다. 차이의 강조는 자연스럽게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여성 안수 거부 같은 제도적 문제는 물론, 여성 사역자에게 출산휴가를 보장하지 않거나 채용 자체를 꺼리는 등 교회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준비한 '세상을 바꾸는 여름' 3주차 포럼에서는 이처럼 성에 기반한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활용하는 한국교회 문화적·신학적 현실을 짚고,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토론했다. 포럼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강남대 백소영 교수는 "남녀가 존재론적으로 평등한데 기능적으로 위계가 있다"는 말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고 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강남대 백소영 교수는 "남녀가 존재론적으로 평등한데 기능적으로 위계가 있다"는 말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고 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예수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차이의 평등' 제도화에 앞장서야"

이날 발제를 맡은 백소영 교수(강남대 기독교학과)는 "근현대 개신교에서는 남녀가 동등한 존재로 창조됐지만 기능적으로는 차이가 있고, 이 차이에 위계가 있다는 말을 '기독교적 젠더 질서' 혹은 '신적 질서'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가부장적 제도에 익숙한 교회 기득권자들이 '신적 질서'를 성차별의 정당한 근거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위 교계 지도자들은 대부분 60대 이상 남성이다. 여성 할당제 등을 통해 여성에게도 일부 자리를 '허락'하고 있지만, 이것이 성차별적 현실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불평등한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며 문제 제기하는 이들을 '신적 질서'를 위협하는 이로 몰며 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사회의 발뒤꿈치도 쫓아가지 못하는 한국교회 현실에 많은 여성 개신교인은 좌절을 경험한다. 백소영 교수는 "좌절하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자매들이 많다. 그러나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 가부장적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이 구축해 놓은 젠더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이의 위계를 당연시하는 '기독교적 젠더 질서'가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에 동원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백소영 교수는 '차이의 평등'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남성과 여성, 유대인과 이방인, 의인과 죄인으로 양분된 유대 사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시며, 모든 존재를 품는 포괄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로서의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저항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격상에 따라 온라인으로만 열렸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날 포럼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격상에 따라 온라인으로만 열렸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토론을 맡은 이들은 평등법 제정 국면에서 지금처럼 한쪽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더 많이 열리고, 기득권 세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김정혜 연구원(젠더정의연구회)은 "남녀가 존재론적으로는 평등하나 기능적으로는 위계적이라는 이 개념에 머무는 한 '양성평등'만이 허용된다. 이는 기득권의 파이를 침범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용인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 침묵했던 이들이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도 했다. 김정혜 연구원은 "교회 내에서도 그렇고 교회 밖에서도 대다수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평등법 제정 시국을 지나가고 있다. 침묵이 상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같은 혐오의 시대에는 침묵이 곧 혐오에 대한 동조이자 확산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점도 자각해야 한다"며 다른 생각을 지닌 개신교인들이 적극 발언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영 대표(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하나님이 여성에게 부여하신 창조질서'라는 주장에 경도된 개신교인들이 보수 정치 세력과 결탁해 각종 정책 수립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평등법 제정 반대 운동에서도 이들의 혐오 선동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단순히 소수자의 편에 서고 옹호하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의 규범과 질서를 깨는 새로운 관계와 돌봄의 방식, 평등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섹슈얼리티 보장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지 함께 전망하고 제시해야 한다"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오수경 대표(청어람ARMC)도 새로운 '언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반동성애·반페미니즘 전선이 형성돼 있는데, 이 같은 현실을 두고 어떤 언어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논의를 이어 가면 좋겠다고 했다. 오 대표는 "평등법이나 페미니즘 찬반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대중'을 발견하고, 그들의 생각 지평을 넓히기 위한 언어를 제공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실제적인 방법을 고민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퀴어신학의 다양한 맥락을 소개한 유연희 회장(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은 혐오 선동에 동의하지 않는 개신교인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유 회장은 "평등법을 지지한다고 소신껏 말하면 분명 불편한 일을 겪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더 어려운 일을 겪는 소수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혐오 선동이 과대 대표되지 않도록 자기가 속한 곳에서 소신 있게 생각을 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4주차 포럼은 7월 19일 '장애와 몸: 갇히지 않는 삶'을 주제로 열린다. 김도현 연구 활동가(노들장애학궁리연구소), 이문희 관장(전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주제 강연을 하고 이진희 공동대표(장애여성공감), 유진우 활동가(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토론자로 나선다. 포럼은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다.

참가 신청 바로 가기: http://bit.ly/christian-summerforum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