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한국 동행 모임 다섯 번째 예배…"예수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이주민·난민·노동자 모습으로 찾아와"
"하느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축복하시는 모든 길벗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과 춤추며 웃고 떠드시는 우리들의 하느님, 이 자리와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에 사랑이 넘쳐 나게 하소서."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형형색색 천들이 놓인 나무 의자에 꽃잎이 뿌려졌다.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는 모든 이를 기억하고, 다양한 모습 그대로 축복하는 의식의 한 장면이다. 꽃바구니를 손에 든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와 정혜진 목사(기독여민회)는 축복식에 함께한 이들을 향해서도 꽃잎을 흩뿌리며 축복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한국 동행 모임의 다섯 번째 예배가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10월 27일 저녁 서울 중구 장충동 경동교회(채수일 목사)에서 열렸다.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평등세상)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예배에는 평등세상 소속 목회자·활동가·기독교인 42명이 현장 참석했다. 온라인으로도 5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예배에는 가톨릭 인사들도 참여했다. 조진선 수녀(가톨릭성가소비녀회)는 "다양한 모습과 삶의 이야기로 이 땅에 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초대한다"는 말로 예배를 열었다. '예배로의 초대' 순서를 맡은 조 수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모든 생명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 차별·혐오·분리는 반그리스도교적 행위"라고 말했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난민·노동자 당사자·활동가들이 사회적 소수자와 그리스도인을 주제로 증언하는 시간도 있었다. 이들은 앞에 놓인 의자에 각기 색이 다른 천을 하나씩 걸며, 차별과 혐오로 물든 사회와 교회가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증언이 끝날 때마다 사회적 소수자의 모습으로 찾아온 예수와 동행하기 원한다고 화답했다.
이어서 임보라·정혜진 목사가 무지개색 천으로 덮힌 의자와 참석자들을 향해 꽃잎을 뿌리며 축복식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차별과 혐오에 물든 교회를 부활한 예수가 축복하고 치유한다는 내용을 담은 글귀들을 함께 낭독했다.
"오늘 우리는 서로의 축복이 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신을 믿든 안 믿든, 때로 서로의 믿음이 다를지라도 서로를 축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나는 당신의 축복이 되고 당신은 나의 축복이 되어,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축복이 되어 '따로 또 같이' 연대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
임보라 목사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법 적용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사회적 소수자들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신학교·교단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고 차별과 혐오의 규칙을 양산하고 있다고 했다. 임 목사는 "우리를 지은 분은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 환대하는 신앙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셨다. 하지만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아우르는 교단에서조차 기본적인 룰이 파괴된다. 우리를 부르신 이가 행하라고 했던 것들을 지키면 오히려 반칙이 되는 현실이다. 이들은 환대를 외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차별과 혐오를 외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우격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하나님께, 주께서 하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손수 지으신 것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이들로 거듭나게 해 달라고 해야 한다. 노동자·여성·퀴어·장애인·이주민·난민·청년·어린이·동물을 대상화하면서도, 마치 큰 아량을 베푸는 사람인 체하는 속사람의 사악함에서 하루속히 탈출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예배 후에는 '애찬의 나눔' 순서가 이어졌다. 자캐오 신부(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정다빈 씨(예수회 인권연구센터)가 참석자들과 함께 정교회 예식을 참고한 기도문을 읽어 나갔다. 화면에는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하라", "그리스도인은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라는 문구를 손에 든 그리스도인들 사진이 등장했다. 참석자들은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위해 마음을 모았다.
WCC 한국 동행 모임은 2022년 8월 독일 칼스루에(Karlsruhe)에서 개최되는 WCC 11차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6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교단 에큐메니컬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다. 이들은 6월 30일 개회 예배를 시작으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모임을 이끄는 이상철 목사(한백교회·크리스챤아카데미)는 "한국의 에큐메니컬 공동체가 WCC 총회를 준비하며 각 주제에 해당하는 단위별로 예배를 준비한다. WCC가 제시한 다양한 의제에 힘을 싣고, 한국적 상황에 맞춰 적용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음 예배는 11월 24일 저녁 7시 30분 경동교회에서 '디지털 혁명과 소외'를 주제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