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외국인학교(수원)와 대전외국인학교(대전) 이사였던 인요한 교수(사진 맨 오른쪽)가, 두 학교의 전 총감인 제임스 팬랜드의 수원 교비 136억 4000여만 원을 대전 건물 신축비 등으로 사용한 것을 눈감아 줬다는 혐의로 지난 1월 3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저명한 미국 선교사 후손인 인요한 교수(존 린튼·연세대 의과대 가정의학과)가 지난해 12월 2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선교사 후손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의 초석을 놓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인수위에서 물러나라는 야당의 거센 압박을 받는 곤경에 처했다.

선교사 집안 후손 인요한은 누구?

인 교수는 집안이 4대째 대를 이어 선교·교육·의료봉사 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3월 한국으로 특별 귀화를 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남장로교 출신으로 1895년 한국 땅을 밟은 유진 벨(배유진) 선교사의 외증손자이며,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펼치고 한남대를 설립한 월리엄 린튼(인돈)의 손자다. 아버지 휴 린튼(인휴)은 1954년 전남 순천에 파송돼 200곳 넘는 교회를 개척했다. 형 스티븐 린튼(인세반)은 1996년 증외조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유진벨재단의 이사장이다.

한국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겨 온 선교사 가문의 후손 인요한 교수는,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한데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 교수가 교비 전용에 일조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  인 교수는 집안이 4대째 대를 이어 선교·교육·의료봉사 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3월 한국으로 특별 귀화를 한 인물이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인 교수는 1987년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하고, 2003년 고려대 의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4대 소장이 됐고, 2010년 연세대 가정의학과 주임교수가 됐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인요한 교수는 1987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3년 고려대 의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4대 소장이 됐고, 2010년 연세대 가정의학과 주임교수가 됐다. 인요한 교수는 유진벨재단을 통해 대북 구호 활동을 벌였다. 그는 북한에 결핵 약품과 의료 장비 지원 사업을 펼쳐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교비 전용 눈감은 혐의로 검찰 조사

수원지방검찰청 형사1부는 지난 1월 3일 인 교수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1월 9일 밝혔다. 인 교수가 수원외국인학교(수원)와 대전외국인학교(대전) 이사로 재직하던 2011년, 두 학교의 전 총감 토마스 제임스 팬랜드(Thomas James Penland)가 수원 교비 136억 4000여만 원을 대전 건물 신축비 등으로 사용한 것을 눈감아 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팬랜드 전 총감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게 교비 전용 혐의로 고발당해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0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팬랜드 전 총감은 인 교수의 승인을 받고 교비를 썼다고 밝히며, 지난해 11월 검찰에 인 교수를 고발했다. 하지만 인 교수는 검찰 조사에서 "교비 집행을 승인하긴 했지만 불법 전용을 승인하지는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인 교수의 교비 전용에 일조한 혐의를 찾지 못해 더 조사한 뒤 인 교수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양화진 사태에 국무총리실까지 끌어들이다

▲ 인 교수는 양화진의 소유권을 놓고 100주년기념교회와 협의회를 상대로 한 4차례의 민형사상 소송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소송들은 모두 패소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인요한 교수는 "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가 서울유니온교회를 쫓아냈다"면서 '양화진 사태'가 불거지는 데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2007년 7월 말에 인 교수는 마포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8월 5일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양화진)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이니 경찰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말대로 8월 5일에 서울유니온교회 교인들은 새벽부터 양화진에 몰려와 충돌을 일으켰고, KBS를 비롯한 국내 언론이 그 현장을 취재 보도하였다.

이 충돌 사건을 꼬투리 삼아 인 교수가 임원으로 있던 경성구미인묘지회(경성구미회)는 양화진 소유권을 놓고 100주년기념교회와 오랫동안 대립했다.

그해 9월에 인 교수는 국무총리실에 △양화진은 국유지이며 △양화진의 사용권은 유니온교회에 있으므로 선교기념관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고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협의회·현 100주년기념재단 강병훈 이사장)의 양화진 개발은 중단되어야 하며 △양화진에 외국인이 계속 묻힐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을 하였다. 이로 인해 마포구청과 협의회는 국무총리실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하지만 100주년기념교회와 협의회가 "양화진의 역사를 훼손하고 사유화하려 한다"는 인 교수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 기사 : 양화진이 나봇의 포도원이라도 됩니까?) 인 교수의 감사 요청은 혹 떼려다 도리어 혹을 붙인 꼴이 됐다.

그럼에도 인 교수는 경성구미인묘지회와 서울유니온교회가 100주년기념교회와 협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4차례의 민형사상 소송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소송들 또한 모두 패소하였다. 양화진 소유권 민사소송은 1심과 2심에서 패하자 경성구미회는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100주년기념교회와 협의회의 출입 통제로 인해 선교사 후손인 자기도 양화진에 3년째 출입을 못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0년 3월에 외증조부인 윌리엄 린튼이 건국훈장을 받았을 때 인 교수는 기독교 방송사와 양화진에 와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 인 교수는 "100주년기념교회가 서울유니온교회를 쫓아냈다"면서 '양화진 사태'가 불거지는 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 이를 빌미로 인 교수가 임원으로 있던 경성구미인묘지회는 양화진 소유권을 놓고 100주년기념교회와 오랫동안 대립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리산 선교사 별장 철거 반대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있다. 감사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각각 사용 허가 기간 만료와 자연환경과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지리산 선교사 별장을 철거하려고 했으나, 인요한 교수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리산 왕시루봉 별장은 휴 린튼 선교사 등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1900년대 초 조선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은 말라리아·학질·이질 등 풍토병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와 협의해 높은 위치에 있는 지리산 노고단에 수양관을 만들었다. 초기에 세워진 수양관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파괴되거나 훼손됐는데, 휴 린튼 선교사가 주도해서 1962년 왕시루봉에 있는 서울대 학술림 안에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한 건물을 지었다. 별장 터전에는 숙소 외에 교회·수영장·테니스장 등도 마련됐다.

그는 아버지 휴 린튼 선교사가 관리했던 지리산 왕시루봉 별장 관리 책임을 1984년 넘겨받았다. 건물 소유권은 서울대에 있었지만, 휴 린튼 선교사가 실질적으로 별장 관리를 했다. 지금은 인 교수가 사비를 들여 관리인을 두어 돌보고 있다.

그런데 2003년 3월, 감사원은 사용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2004년 2월까지 선교사 휴양소를 철거하라고 땅 주인인 서울대에 통보했다. 지리산 국립공원관리공단도 자연환경과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특별 보호구역이라며, 건물 철거 의사를 밝혔다.

▲ 감사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각각 사용 허가 기간 만료와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지리산 선교사 별장을 철거하려고 했으나, 인 교수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노고단 선교사 수양관(왼쪽)과 왕시루봉 별장(오른쪽). (각각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인 교수는 노고단과 왕시루봉 터전을 선교사 유적으로 지켜야 한다며,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보존연합)을 만들어 철거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보존연합 회원들과 교계 인사 등 100여 명이 왕시루봉에 올라가 선교사 수양관 건립 50주년 예배를 드리며 올해 8월 문화재 등록 신청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한국 기독교 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선조들의 뒤를 이어 굶주린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기여했던 선교사 후손이 외국인학교 교비 전용 연루 의혹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화진 사태와 선교사 별장 철거 공방에서 보여 준 그의 역할이 눈길을 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남긴 흔적, 선교사 후손들의 태도, 한국교회에 던지는 또 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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