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에 한 번씩 PCR 검사를 받아요. 식사·샤워·세탁이 가능한 노숙인 종합 지원 센터를 이용하려면 PCR 검사 확인증을 보여 줘야 하니까요. 급식소들은 코로나19로 아침 식사를 중단하는 등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문을 닫았어요. 음식을 나눠 주던 개인 봉사자들도 감염 위협 탓에 거리로 나오지 않아요. 새벽 6시 20분 배급되는 아침을 먹기 위해 녹번동부터 충정로까지 걸은 적도 있어요. 사람들이 엄청 몰려서 첫차 타고 가면 늦어서 못 먹어요."

"김장수(가명)는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어요. 병상이 부족해 자택에서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집이 없으니 격리도 할 수 없어요. 결국 주변 홈리스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거리에 계속 머무르는 거예요. 거리에서는 치료·관리는커녕 제대로 씻거나 잠을 자기도 어렵죠."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서울시는 올해 1월 30일부터 관내 모든 노숙인 시설 및 지원 기관 출입 시 7일 이내 PCR 검사 결과를 제시하는 '음성 확인제'를 실시했다. 앞서 서울역 홈리스 집단감염 당시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감염을 막고 방역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높아진 문턱은 홈리스들의 복지 서비스 접근성 하락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서울역 실내 급식장 '따스한채움터'의 2020년 한 끼 평균 이용 인원은 302명이었는데, 음성 확인제 시행 직후에는 152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재확산 속에서 홈리스들이 처한 상황은 서비스 이용이 어렵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홈리스들의 밀집·취약 주거 특성상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지만, 임시 주거 지원 등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 따르면, 11월부터 시설 등 노숙인 밀집 공간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150여 명이다. 정부의 단계적 일상 회복, 즉 '위드 코로나'대로라면 화장실·주방 등 필수 공간 분리가 어려운 주거 취약 시설 거주 확진자는 우선 생활 치료 센터에 입소해야 한다. 하지만 홈리스들은 병상 부족과 정부의 대책 미비로 열악한 거처에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년도 홈리스 지원 정책과 규모를 담은 서울시 예산안이 발표됐다.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12월 7일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2년 서울시 '노숙인 보호 및 자활 지원' 정책 예산안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예산안이 복지 공백 및 감염 위협에 놓인 홈리스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홈리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복지 공백, 감염 위협에 처한 홈리스 현실이 2021년 서울시 홈리스 예산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 예산안은 올해 초부터 계속돼 왔던 의료 공백, 급식 대란, 집단감염 사태의 재현을 예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홈리스행동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복지 공백, 감염 위협에 처한 홈리스 현실이 2021년 서울시 홈리스 예산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 예산안은 올해 초부터 계속돼 왔던 의료 공백, 급식 대란, 집단감염 사태의 재현을 예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안형진 상임활동가(홈리스행동)는 코로나19 집단감염 상황을 겪으며 홈리스들의 주거 안정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는데도, 예산안에서는 개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 예산안에 따르면, '노숙인 주거 안정 지원' 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여름철·겨울철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응급 쪽방' 사업이 '거리 노숙인 보호' 사업으로 이관되고, 임시 주거를 지원하는 월 임대료 기준액이 증액된 데 따른 것이다. 대상 인원과 보장 기간도 늘어나지 않았다.

안 활동가는 "현재 서울시가 임시 주거로 지원하는 자원은 쪽방과 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로 한정돼 있어 코로나19 집단감염 상황에 적절한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고층과 좁은 통로로 이뤄진 취약한 주거 환경은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해 중첩된 취약성을 지닌 홈리스 당사자의 진입을 막는다"며 임대주택 등 적정 주거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홈리스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의료 지원 예산은 오히려 감액됐다. 서울시는 '노숙인 등 의료 지원' 사업 예산을 전년도 대비 10% 삭감했다. 노숙인 진료비의 최근 4개년 평균 집행 실적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는 병원급 노숙인 진료 시설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홈리스들의 의료 접근성이 저하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실제 홈리스들은 서울시 지정 병원 10곳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그중 9곳이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전환됐다.

안 활동가는 "홈리스들이 진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실제 의료 지원 수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인데, 서울시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채 거꾸로 대처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인원귀원회 최현숙 위원은 서울시가 홈리스 관련 지원 정책·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인권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 위원은 "내년이면 팬데믹 3년째다. 3년간 자영업자, 비정규직, 임시직 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겨 노숙인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상황만으로도 2022년 노숙인 관련 예산은 더 증액돼야 했지만 서울시는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설을 중심으로 한 홈리스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홈리스 당사자를 위한 지원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설을 중심으로 한 홈리스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홈리스 당사자를 위한 지원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코로나19로부터 진정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감염에 취약하고 중증 위험이 큰 이들을 위한 의료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노숙인 의료 상황을 파악해 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회 최규진 위원장은 "거리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몸이 아파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갔는데 접수도 못 하고 쫓겨났다. 하루는 동상으로 다리가 썩어 가는 분을 발견해 응급차를 불렀는데, 경찰도 119 대원도 그를 입원시키지 못했다. 노숙인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숙인을 위한 최소한의 공공 의료 시설을 확보하지 않으면, 또다시 집단감염 같은 재앙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대규모 감염 상황일수록 시설 중심의 홈리스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안형진 활동가는 "코로나19가 계속되고 있고 한동안 종식이 가시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홈리스들에게는 여전히 시설 입소가 첫 번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식사 지원 서비스도 집합적 복지인 '단체 급식'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쪽방, 고시원, 노숙인 시설, 거리 등 노숙인이 밀집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을 중심으로 한 지원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서비스 제공처 자체를 분산하거나 개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5개 단체로 구성된 '2021홈리스추모제기획단'은 매년 동짓날을 맞아 쪽방·여관·거리·시설 등에서 생을 마감한 홈리스들을 추모하는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오는 12월 15일부터 22일까지는 '홈리스 추모 주간'으로 지내고 22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를 연다. 기획단은 "열악한 홈리스 인권 실태를 고발하고 사회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모아 내는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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