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판사님이랑 가서 식사라도 하세요."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변호사에게 돈 봉투를 건넨 사람은 재판 관련 상담을 받으러 온 목사였다. 변호사는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대체 목사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게 벌써 4년 전인데, 나도 하도 어이가 없어 그날 저녁 메모를 해 둔 기억이 있다. '목사들은 재판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판사랑 밥 먹는 변호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뉴스앤조이> 기자로 분쟁 교회를 취재하고 교회 재판이 진행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면서, 황당했던 이 에피소드가 교회에선 예삿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재판을 맡은 이들이 재판 당사자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 재판의 권위와 신뢰성이 더 떨어질 곳도 없는 밑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진다. 교회 재판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기소·재판위원 금품 수수
돈 받은 증거 나와도 징계 안 해

재판위원 금품 수수 의혹이 언론에 가장 많이 드러난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다. 예장통합은 2014년 9월 99회 정기총회에서 총회 재판국원을 전원 교체했다. 재판국원이 분쟁 교회로부터 금품을 수수했고 특정인에게 로비와 법률 자문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국장 오 아무개 목사는 배임수재죄로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예장통합 소속 강북제일교회 분쟁에서도 재판국원 금품 수수 의혹이 있었다. 강북제일교회는 황형택 목사 측과 조인서 목사 측으로 나뉘어 오랜 기간 분규 상태였는데, 조 목사 측이 황 목사를 면직·출교해 달라며 한 총회 재판국원 장로에게 2015~2016년 7회에 걸쳐 8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내부 고발이 나온 것이다. <뉴스앤조이>는 당시 재판국원에게 돈을 전달하는 현장 영상을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진 적 있다. 2017년 <뉴스앤조이>가 취재했던 한 분쟁 교회에서, 재판국원으로부터 금품 청탁을 요구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한 재판국원은 "(재판)국장하고 서기를 직접 만나셔 가지고 접촉하셔야 합니다. 국장·서기 같은 경우 단가가 좀 큽니다. 최저로 얘기하면 '3' 정도는 생각하셔야 될 거예요. 일단 국장을 트라이(try)해 가지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세요"라고 말했다. '3'은 3000만 원을 뜻했다.

보도가 나간 후 당시 예장합동 총회 재판국장 윤익세 목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돈 받고 재판한 적 없다"며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재판국원만 자진 사임시키는 선에서 사태를 진화했다. 윤 목사는 통화 녹음을 유출한 사람과 이 사실을 보도한 <뉴스앤조이>를 고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그는 <뉴스앤조이>를 고소하지 않았다.

재판국원과 사건 이해 당사자들이 함께 밥을 먹다 걸린 적도 있다. 2018년 7월,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원 3명은 재판이 진행 중이던 서울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교회 또한 원로목사 측과 후임 목사 측으로 나뉘어 오랜 기간 분규를 겪었다. 재판국원 3명은 원로목사 쪽 인사로 알려진 이들과 식당에서 고기를 먹었다. 식탁에는 맥주병도 있었다. <뉴스앤조이>가 이 사실을 취재하자, 재판국원들과 서울교회 원로목사 측은 오히려 "반대편이 미행·사찰했다"며 불쾌해했다.

재판국원의 금품 수수는 중대한 권징 사유다. 그러나 돈 받은 재판국원이 처벌되는 일은 없다. 2016년 예장통합 총회 기소위원회는 재판 중이던 ㅇ교회 측으로부터 30만 원씩 2회에 걸쳐 60만 원을 받아 논란이 된 총회 재판국원 3명을 모두 불기소처분했다. "반성문을 제출하고, 부덕의 소치로 잘못을 뉘우치고, 목회에 전념하겠다는 정상을 참작했다"는 이유를 댔다.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도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재심 요청을 기각했다. 재판국 보고서를 보면 "불복하면서 주장하는 의혹들은 이미 총회 기소위원회에서 철저한 조사와 심문을 통하여 해소된 사항이고 진실이 파악된 사항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총회 재판국 화해조정위원들에게 여비로 드린 것(30만 원, 2회)은 교회 관행에 따라 순수한 마음으로 드린 것이며, 20여 명 이상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위원들이 받지 않으려는 것을 강권하다시피 드린 사항이라는 것"이라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유독 예장통합에서 이런 사건이 많이 드러났지만, 타 교단들에서도 재판위원이 돈을 받는다는 소문은 파다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재판위원을 맡은 적이 있는 한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모든 재판위원한테 돈 주는 게 아니다. 과반수라든지 2/3 같은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만 준다"고 말했다.

강북제일교회 조인서 목사 측 교인이 내부 고발한 '재판국원 금품 전달' 장면. 해당 재판국원은 돈을 받은 적 없다고 부인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 분쟁 나면 접근하는 '브로커'들
언론사 운영하는 '목사 기자'들도 개입

교회 재판이 법리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인맥과 돈 등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교단마다 속칭 '브로커'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역할은 사건 당사자를 대신해 재판위원들을 만나 '로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건 당사자들에게 먼저 '도와주겠다'며 접근하는 경우도 있고, 교단 내에서 이런저런 소문을 들은 당사자들이 이들을 먼저 찾는 경우도 있다.

예장통합 소속 ㄴ교회 F 집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영화 시나리오를 방불케 한다. ㄴ교회는 몇년 전까지 교회 분쟁을 겪으며 교단 재판을 거쳤다. F 집사는 "교회 재판에 쓴 돈이 사회 법정에서 쓴 돈보다 두 배나 더 들었다"고 말했다. 예장통합의 경우 소를 제기하는 쪽이 심급에 따라 100만 원~300만 원을 내면 되는데, 무슨 돈이 그리 많이 들었을까. 그의 말은 구체적이었고 분노에 차 있었다.

"총회 재판국원이나 누구를 만나서 잘 얘기해 준다는 목사가 있다. 그럼 식사 대접하고 몇 백만 원 쥐어 준다. 그걸로 누구 만나는 비용을 처리한다는 거다. 그러더니 매번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다가 소식이 끊겼다. 어떤 목사는 호남에 있는 재판국원들을 만난다더라. 밥 한끼 40만 원씩 식사비 200만 원, 선물비 100만 원 등 착수비로 500만 원을 요구해서, 그쪽에도 돈을 줬다. 현금을 선호했고 계좌로 보내더라도 본인 통장으로 보내라는 경우는 없다. 사모(아내) 통장이나 사모 동생 통장으로 보내라더라.

 

목사들이 우리를 이용했다.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접근한다. 이들이 오면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지 않나. 김치찌개를 사 줄 수는 없으니 소고기 사 줬다. 선물도 보냈다. 가끔 그들이 못 하겠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울며 겨자 먹기로 또 몇십만 원씩 보냈다. 식사비 등 추가금도 계속 요구했다. 갑자기 할 얘기가 있다면서 우리더러 오라고 할 때도 있었다. 새벽에도 가고 밤에도 갔다. 소송비용보다 이들에게 차비·선물비 등으로 지불한 돈이 더 많다. 사회 법정에서야 변호사 선임하는 돈만 들었지만 교회 재판은 그렇지 않았다."

교인들도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브로커들의 만행을 언론사에 쉽게 알릴 수도 없었다. F 집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된 게 아니다. 저쪽(반대 측)은 총회 재판국원들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우리도 식사라도 하면서 사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이었다. 어차피 (당사자인) 우리는 안 만나 주니까. 근데 우리를 도와준다고 했던 목사들이 누구를 만났다 해도, 진짜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언젠가 그 목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럼 뭐 영수증이라도 달라는 것이냐'고 되레 화를 내더라"고 말했다.

2016년 9월 예장합동 윤익세 재판국장이 "돈 받고 재판한 적 없다"며 <뉴스앤조이> 보도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교회 재판에 관여하는 '목사 기자'들도 있다. 이들은 '교회법 전문가'를 자처하며 재판 당사자 중 한쪽에 서 돈을 받고 '자문'도 해 준다. 이들 중에는 법률 관련 학위가 있어 전문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을 받고 자문해 준 사건 관련 기사를 자신이 운영하는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것은 저널리즘적·윤리적으로 문제가 크다.

담임목사의 상습 설교 표절로 분쟁이 생긴 예장합동 소속 ㄱ교회 C 집사도 이 '목사 기자'들 이야기를 꺼냈다. 교인들은 노회 재판국에서 목사에게 기울어진 판결을 받고 총회에 상소했는데, 예장합동 헌법이 워낙 두루뭉술하게 돼 있다 보니 도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조언해 주겠다'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공짜로 상담을 요청하기가 뭣해서, 나름대로 성의 표시를 했다. 처음에 50만 원을 드렸더니 적다고 계속 뭐라 하더라. 자기가 고생했는데 돈이 적다는 거다. 그래서 그 사람하고는 관계를 끊었다"고 말했다.

ㄱ교회 교인들이 찾은 또 다른 사람도 예장합동을 주로 다루는 1인 언론사를 운영 중인 목사였다. C 집사는 "우리가 노회 재판 결과에 대해 총회에 상소한 후, 헌법을 잘 모르니까 조언을 받으러 갔다. 누가 소개해 줘서 1시간 상담하고 20만 원을 드렸다. 그 목사가 기사도 써 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중에는 연락해도 답변이 없었다. 30만 원을 보냈더니 자문 내용을 A4 용지 1장 정도에 써서 주더라"라고 말했다.

역시 예장합동에서 작은 언론사를 운영하는 ㅅ 목사는 재작년 이단성 논란이 일었던 S교회 측으로부터 총 1700여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S교회는 한 장로 부부가 '교주' 행세를 하며 교인들을 세뇌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이들은 교회 청년들에게 거짓 기억을 주입해 '아버지와 삼촌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 고소를 부추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를 포함해 교계뿐 아니라 일반 언론도 이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ㅅ 목사는 S교회 장로 부부에 대한 이단성 지정 절차에 문제가 있고, 이를 보도한 예장합동 교단지 <기독신문>도 이들을 무리하게 이단 몰이 하고 있다는 취지로 기사를 썼다. 노회의 대처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ㅅ 목사는 S교회 특집으로 종이 신문도 2회나 발행했을 뿐만 아니라, 이단 혐의로 기소된 장로 부부의 노회 재판 변호도 맡았다.

ㅅ 목사는 9월 1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S교회 관련자들로부터 '헌금' 명목으로 1700여만 원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 돈은 기사나 노회 재판 변호와는 상관없는 '선교 헌금'이었다며 매우 불쾌해했다. ㅅ 목사는 "나는 개인적으로 돈 안 받는다. 내가 대표로 있는 선교 단체에 선교 후원비로 들어왔다. 선교 단체에 내는 돈은 아무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단이라고 규정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있는지, 이단으로 몰아서 내쫓을 필요가 있는지 등을 지적한 거다. 나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다. 강의하지, 언론사 하지, 교회 하지. 매일 새벽 2~3시에 퇴근한다. 그런데 왜 이 일에 뛰어들었겠나. 불법이고 잘못됐으니까 한 거다. 후원금 때문에 (보도)한 게 아니고 정의감에 한 것"이라고 말했다. ㅅ 목사는 이를 신문 발간 비용, 선교 비용, 운영비 등으로 썼다고 했다.

당시 S교회가 속한 예장합동 서울동노회는 이 사건으로 몸살을 앓았다. ㅅ 목사가 기사를 통해 노회원들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제기했기 때문이다. 서울동노회는 2020년 9월 예장합동 105회 정기총회에 '총회 산하 모든 재판에 언론인의 변호를 금지해 달라'는 헌의안을 올렸다. 언론사를 운영하는 '목사 기자'들이 교회 재판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 헌의안은 통과됐다.

다만, 서울동노회는 특정인을 겨냥한 헌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동노회장이었던 박영락 목사는 9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론인의 개입은) 일반 사회에서도 용인되지 않는 것 아닌가. 일종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인데 재판에서 변호까지 해 주는 건 옳지 않다. 언론을 하면서 변호를 하면 기사를 어떻게 쓰겠나. 그런 의미에서 공정해야 하니까 헌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와 인터뷰한 교인들은 브로커들과 목사 기자들 때문에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교단을 떠날 생각까지 한다고 했다. F 집사는 "다들 처음에는 우리를 위하는 척했지만, 결국 다 돈이더라. 교단도 돈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C 집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서는 무슨 조언을 받아도 진행이 안 된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변호사에게 맡기는 게 나았다"고 했다.

<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뉴스앤조이) 저자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기독교 언론사 형태를 띄거나 교회법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교회 재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인들도) 답답하니까 처음에는 그들의 조언을 받는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되면 긍정적인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인맥을 소개하거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위원에게 편의 제공하면
불이익받는다는 인식 형성돼야"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늘날 무너진 교회 재판의 권위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늘날 무너진 교회 재판의 권위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판사 집 앞에 찾아가 한우 세트를 들이밀거나, 검사에게 로비하기 위해 브로커를 만나지는 않는다. 법으로 금지돼 있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정서가 형성돼 있다. 만약 판·검사에게 이런 일을 했다가는 처벌받을 수 있다. 판·검사가 이에 응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사회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문제가 된다.

교회 재판은 그렇지 않다. 교회 재판을 겪어 본 교인들은 오히려 재판위원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재판위원을 구워삶거나 돈을 들여 사정하면 먹힌다는 생각 자체가 실추된 교회의 권위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브로커들이나 유사 언론인·법조인이 판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 재판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문대 변호사는 "교회는 하나님 이름으로 재판을 하는데, (재판위원들에게) 무슨 편의를 제공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옛날에는 사회에서도 그렇게 안 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때문에 알음알음했지만, 지금은 그러는 순간 이상하게 취급당해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정서가 확산됐다. 사회는 발전해 나가는데 교회가 이걸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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