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대한성공회(이경호 의장주교)는 올해 여성 서품 20주년을 맞았다. 여성 사제들은 4월 25일, 대한성공회에서 처음으로 서품을 받은 여성 민병옥 사제 서품 20주년을 축하하는 감사 성찬례를 올렸다. 얼마 전 서품 16주년을 맞은 대한성공회 광명교회 민숙희(마가렛) 사제는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사제 중 한 명이 특송을 했어요. '사명'이라는 곡을 불렀는데, 현장에 있었던 우리나 해외에서 줌(ZOOM)으로 참여한 사제들이나 다 울어 버렸지…. 여성 사제이기 때문에 사목 현장에서 겪는 불평등을 다 공감하고 있으니까.

 

한국교회가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고 많이 얘기하잖아요. 나는 우리 성공회가 여성 사제 선배들 눈물 위에 섰다고 이야기해요. 민병옥 사제님부터 유명희·박미현 사제님, 이런 분들은 신학을 공부하고서도 수십 년 기다렸다가 서품을 받은 거예요. 민병옥 사제님은 만 55세에 서품받아서 10년 사역하고 은퇴하셨어요. 수십 년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그래도 그분들은 성공회를 떠나지 않았어요. 그분들이 포기했다면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죠."

민숙희(마가렛) 사제를 6월 5일 대한성공회 광명교회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민숙희(마가렛) 사제를 6월 5일 대한성공회 광명교회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성공회는 세계적으로 보면 규모가 큰 교파이지만, 대한성공회는 신도 수 1만 5000명 정도의 작은 교단이다. 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가 있으며 소속된 사제는 200여 명, 이 중 여성은 18명에 불과하다. 보통 개신교단에서 '담임목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관할사제'의 여성 비율은 이보다 현격히 적다. 서울교구 교회 60여 개 중 여성이 관할사제인 곳은 딱 한 군데다. 민숙희 사제는 몇 년째 서울교구에서 유일한 여성 관할사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관할사제가 되는 일이 감격스럽게(?)만 진행된 건 아니었다. 성공회는 파송제다. 교인들의 요구를 파악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구가 교회에 사제를 파송하는 형식이다. 새로운 관할사제로 여성이 파송된다는 소식에 교인들은 떨떠름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2년 전 광명교회 관할사제로 올 때는, 신자 9명으로 구성된 초대위원회가 찬반 투표까지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찬성 4, 반대 4, 기권 1. "결과가 아주 기가 막히지 않아요?" 민 사제는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민숙희 사제의 광명교회 관할사제 발령은 관행상 없었던 일이기는 했다. 민 사제는 광명교회에서 부제와 보좌사제를 거쳤는데, 이렇게 보좌했던 곳에 관할사제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사전에 서울교구에서 조사한 광명교회 교인들의 비전과 민 사제의 사목관이 많은 부분에서 들어맞았던 게 크게 작용했다. 발령은 계획대로 진행됐고, 다행스럽게도 교인 대부분은 민 사제를 환영했다. '여성 관할사제가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회를 떠난 교인도 있기는 했지만.

이런 경험은 광명교회로 올 때만 겪었던 일은 아니다. 이전에 있던 교회에 관할사제로 파송됐을 때도 그랬다.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였는데, 어떤 교인은 "이제 우리 교회가 여자 관할사제나 오는 곳이 되었구나"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민 사제는 관할사제 전 대한성공회 사회 선교 기관 '나눔의집'도 여러 곳 거쳤다. 한 지역 나눔의집 원장사제로 파송됐을 때도 별다른 이유 없이 교인들의 반대를 경험해야 했다. 이전까지 파송된 원장사제를 반대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대놓고 얘기는 안 했지만 누가 봐도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계속 거절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맷집도 생기고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여기서 어느 정도 있으면 또 발령받을 거잖아요? 그 생각하면 벌써 파송된 교회에서 거절당할까 봐 걱정하게 되는 거예요. 거절당하는 건 적응이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눈에 흙은 넣으셨나 몰라
민숙희 사제의 말투는 시원시원 거침이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포스가 느껴졌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민숙희 사제의 말투는 시원시원 거침이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포스가 느껴졌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태어나 보니 4대째 성공회 집안이었다. 성공회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 증조부모가 성공회 신자였던 셈이다. 민숙희 사제는 전통적으로 '교회 잘 섬기는 집안'에서 자랐다. 할머니나 어머니나 '우리 신부님'을 극진히 모셨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뜻한 바도 없이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88학번이 됐다. 어머니는 "딸이 사모가 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대한성공회는 여성 성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서울교구에서는 여성이 사제 서품 코스인 사목신학연구원에 입학조차 되지 않았다. 연구원에 입학하려면 주교(교구의 수장) 추천서가 필요했는데, 여성 성직이 인정되지 않으니 주교도 여성에게 추천서를 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고참 사제는 "앞으로 여성 성직자는 100년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부에서 성공회 신학을 배우고도 갈 데가 없었던 청년 민숙희는 오기가 생겼다. '여자는 왜 안 돼?' 마침 1997년부터 연구원이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으로 정식 인가를 받게 되면서 입학 때 주교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민숙희 사제는 1995년부터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실무자로 일했다. 거기서 타 교단이기는 했지만 말로만 듣던 '여성 목사'들을 만나며 그의 눈도 뜨이게 됐다. 여성 목사들이 여러 모습으로 사역하는 것을 보며 민 사제도 구체적인 사역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는 연합회 총무였던 윤문자 목사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민 간사, 난 네가 성공회 성직자가 됐으면 좋겠다." 민숙희 사제는 1997년 신학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때 성공회대 총장이었던 이재정 사제님(현 경기교육감)이 부르더라고요. 서울교구에서 연락이 왔는데 '학교에서 여성들을 공부시킬 수는 있겠지만 서품은 교구에서 주는 것이다.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했다는 거예요. 1년 입학을 보류하고 그동안 교구 분위기를 좀 바꿔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1년 뒤 1998년에 여성 후배 두 명과 함께 신대원에 입학했어요. 서울교구에서는 처음이었죠.

 

입학해서는 학생들과 '여성성직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어요. 대한성공회에는 교구 전체 교회가 신학교에 모여 지키는 '성소 주일'이 있는데요. 그때 저희가 여성 성직 청원 서명운동을 벌였어요. 면전에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여성 사제는 못 본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러고 보니 그 양반은 눈에 흙 넣었나 몰라.(웃음) 그런 일도 있었지만 서명운동은 성공적이었어요. 300명 계획했는데 1000명 넘게 받았으니. 이 서명을 근거로 여성 성직 안건을 전국 의회에 제출할 수 있었죠."

대한성공회 성직자를 부르는 공식 명칭은 '주교', '사제', '부제'이지만 사제에게 굳이 '신부神父'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웹툰 '원주민 공포 만화' 갈무리
대한성공회 성직자를 부르는 공식 명칭은 '주교', '사제', '부제'이지만 사제에게 굳이 '신부神父'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웹툰 '원주민 공포 만화' 갈무리

1999년, 여성 성직 안건은 의외로 무리 없이 통과됐다. 문제는 주교들이었다. 성공회에서 서품권은 주교에게 있다.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고 해도, 정작 주교들이 시행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었다. 주교들은 '아직 분위기가 안 됐다'며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침묵을 깬 건 당시 부산교구 이대용 주교였다. 그는 2001년 민병옥 사제에게 서품을 줬고, 이후 부산교구에서만 여성 4명이 사제가 됐다. 서울교구에서는 2004년 첫 여성 사제가 나왔다. 민숙희 사제는 이듬해 서품을 받았다.

여성 서품 역사를 함께한 민숙희 사제는 현재 대한성공회 여성성직자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여성서품20주년준비위원회와 함께 9월 첫주에 계획된 대한성공회 여성 서품 20주년 공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여성활동단체협의회와 여성성직후원회가 주관하는 공식 행사에서는, 여성 서품 20주년 기념 감사 성찬례와 함께 대한성공회 여성 성직 역사를 책으로 출판하고 다큐멘터리영화로도 상영할 예정이다.

내가 너한테 모욕감을 줬어?

지난 20년간 여성 사제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앞으로 2년간은 사제 서품을 받을 여성이 없으며, 현재 성공회대 신대원에 재학 중인 여성도 1명밖에 없다.

"여성 사제들이 병이 많이 나요. 이런 현상에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일해야 공평하다'는 인식이 한몫했다고 봐요. 아무래도 대부분 여성이 남성보다 체력이 부족하잖아요. 생리나 임신·출산에 따른 고통도 있고요. 간혹 여성 사제들이 임신·출산·육아로 휴직하는 걸 가지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어요. 마치 '여성도 군대 가야 한다'는 주장처럼, 다름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남자와 똑같이 일해야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병나서 그만둔 여성들이 있어요. 육체적인 병이든 정신적인 병이든…. 체력적으로는 한계에 부딪히죠, 남성 중심적인 교회 안에서 리더십 발휘하기는 쉽지 않죠, 임신·출산 시기에 배려받기도 어렵죠. 이런 이유들로 어렵게 성직을 받아 놓고도 포기하는 거예요. 간혹 여성 사제가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자기 달란트가 한국에 있을 때는 대접받지 못하는데 외국에 나가면 대접받는 거죠. 우리는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나가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여성 서품의 길을 개척해 온 민숙희 사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처음 가면서 "총알을 너무 많이 맞았다"고 회상했다. 사제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눈 뜨고 바라본 일부 교인도 문제였지만, 남성 사제 몇몇도 여성 사제를 동등한 성직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제가 광명교회로 발령이 나니까 사제들이 '영전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선배 사제는 '모욕적인 인사'라고 하고요. 저는 어디를 가든 열심히 했어요. 나눔의집에 있을 때나 시골 교회에 있을 때는 다들 저한테 고생한다고 했어요. 형편이 어려운 곳에 있을 때는 기특하다고 하더니 조금 규모가 있는 곳에 오니까 '그건 아니지'라는 거예요.

 

왜 불편해할까? 자기들은 다 그런 데 있어 봤으면서. 어차피 성공회는 호봉이 있고 사례비가 정해져 있어요. 교회에서 상여금까지 충당이 안 돼도 성직자 생활 안정 기금이 있어서 어느 정도 생활이 되거든요. 근데 왜 꼭 나를 보면서 불편해할까. 한마디로 그런 데는 여자가 갈 곳은 아니라고, 여자한테는 줄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여성 사제가 도시 교회 관할사제가 된 것은 남성 사제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인가. 영화 '달콤한 인생' 갈무리
여성 사제가 도시 교회 관할사제가 된 것은 남성 사제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인가. 영화 '달콤한 인생' 갈무리

그럴수록 민 사제의 생각은 확고해진다. 여성 관할사제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첫걸음이고, 어쩌면 다름을 인정하는 길이야말로 쇠퇴하는 한국교회에 남은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교회가 수직적인 남성 중심 문화를 고수한다면 젊은 사람들은 계속 교회를 떠날 거예요. 여성 사제들이 여성주의 관점에서 사목하면 교회는 변합니다. 여성 사제들이 빛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우리가 한 발 더 나아가야

민숙희 사제는 관할 교회에서 조용히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교회 주방 봉사는 여성 신자들 몫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교회위원회는 남성 신자들 몫으로 여겨졌던 문화를 바꿨다. 관할사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간 이유 없이 여러 일을 떠맡았던 여성 신자들이 편해졌다. 여성이 편해졌다고 해서 그만큼 남성이 불편해진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문화의 혜택은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것이다.

대외 활동도 활발하다. 민 사제는 지난 회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대한성공회환경연대재건위원회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대한성공회환경연대를 복구해, 기후 위기 시대에 성공회 차원에서 환경 운동에 힘을 보태려는 생각이다. 환경문제를 전문적으로 공부해 보지는 않았지만 환경과 동물권 등은 항상 민 사제의 관심사였다. 그가 십수 년간 '반려동물 축복식'을 해 왔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교계 여성운동도 열심히 했는데요. 이제 여성운동은 그만하면 됐다 싶어요.(웃음) 후배들이 해야죠. 저도 나이가 50이 넘어가니까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내가 젊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어느 순간 저 같은 사람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는 건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뒤에서 밀어줄 거예요. 방해 세력이 나타났을 때 '쓰읍~ 가!'라고 하는 역할.(웃음)"

민 사제는 젊은 여성 신학생과 사제들이 좀 더 힘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힘들어도 같이 견디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게가 자랄 때 탈피의 아픔을 겪는다잖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버텨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한 발 더 나아가야 우리 후배들이 설 자리가 있는 거니까요. 저는 쌈닭처럼 해 왔지만, 후배들은 조금 덜 힘들었으면 해요."

민 사제는 남성 사제들의 인식 변화와 여성 사제들의 인내를 바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민 사제는 남성 사제들의 인식 변화와 여성 사제들의 인내를 바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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