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 로고는 원에 '기' 자가 화살표 모양으로 들어가 있는 형태다. 기장 홈페이지에는 "화살표는 나아가는 화살처럼 새 질서를 향한 희망의 전진을 의미합니다"라고 나온다.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기장은 민주화 운동의 보루 역할을 하며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화살' 역할을 했다.

"이 '기'가 기장의 '기'이기도 하지만, 화살촉을 뜻하기도 해요. 세상의 화살촉이 돼라는 의미예요. 화살이 과녁을 뚫을 때 가장 먼저 부서지는 게 화살촉이래요. '기장성'이라고 하면 민주화 운동 시절을 떠올리지만, 민주화 운동만을 뜻하는 건 아닐 거예요. 세상이 변혁을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달려가 부서지는 화살촉. 그 역할을 하는 게 기장성이라고 생각해요."

한국기독교장로회 로고. 
한국기독교장로회 로고. 

한신대학교 신학부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 전도사로 사역 중인 김하나 씨(40)는 기장 로고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기장이 좋았다. 어렸을 적부터 다닌 타 교단 교회에서는 성서에 의문을 품는 걸 허락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번은 목사에게 왜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사람 창조 이야기가 다른지, 사복음서 내용이 왜 조금씩 다른지 질문했다가 기도 처방(?)을 받았다. "목사님이 '너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라'더라고요.(웃음)"

"우리 교회는 안 그런데"라는 친구 말을 따라 스무 살 때부터 기장 소속 교회로 옮겼다. 민중신학 관점으로 성서를 읽기 시작하자, 성서 문자들이 가난하고 힘든 자신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기장 청년회전국연합회(기청) 활동을 하면서는 기장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현장을 지켰다. 스물여섯 살, 뒤늦게 한신대 신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기장 목회자는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네, 그때는 뭘 모르고 그랬습니다.(웃음) 그런 꽁깍지를 쓴 상태로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한신대가 1학년 오리엔테이션 때 민중가요 '바위처럼' 부르고 그런 분위기거든요. 딱 거기까지더라고요. 한신대에서도 민중신학 배우기가 쉽지 않았어요. 기청 활동하면서 선배들에게 배웠던 김재준·문익환·안병무 선생님 이름을 듣기도 어렵더라고요. 나는 그 뜨거움을 가지고 왔는데….

 

물론 기본적으로 역사 비평 같은 걸 배우니까 성서 해석에서는 다른 교단들과 좀 다른 면이 있죠. 근데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충격받아서 자퇴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저에게는 그게 더 충격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데 누군가는 그 정도로도 충격을 받아 학교를 그만두다니.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낀 것 같았어요.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방향성을 상실한 느낌이었죠."

지금 어디에 이런 차별이 있을까

하나 씨가 실망한 이유는 '기장도 다른 교단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한신대 학부와 신대원에서도 '골품제' 이야기가 종종 나왔다. 목사 자녀는 '성골', 장로 자녀는 '진골', 집사 자녀는 '6두품'…. 집안에 믿는 사람도 없고 검정고시 출신에 나이는 많은데다 돈도 없는 자신은 낄 자리가 없었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역지는 1차적으로 성골·진골의 '이너 서클(Inner circle)' 안에서 채워졌다. 정보의 차이는 곧 힘의 차이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하나 씨보다 더 취약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신대 신학부가 아닌 타 학부 출신이나 만학도, 장애인 신학생들이었다. 좋은 사역지를 찾는 일은 이들의 열심과는 관계가 없었다. 아니 '좋은 사역지'가 아니라, 필수 과목을 이수하기 위한 사역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작년 말, 한신대 신대원에 재학 중이던 뇌병변 장애인 유진우 씨가 '목회 실습' 과목을 이수할 수 없어 자퇴한 일이 있었다. 하나 씨는 이런 차별이 학교 안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다고 했다.

"진우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저도 말렸죠. '그러지 말고 이 안에서 더 싸워 보자'고 했는데, 제가 생각해도 그 말이 너무 공허한 거예요. 진우 말고도 장애를 가진 원우가 둘 더 있었어요. 그들도 목회 실습할 사역지를 못 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그때 학생회장이어서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에 요청을 했어요. 최소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교회가 어디인지 명단이라도 만들어 달라고요. 목회 실습은 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이건 학교가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은 문제거든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어요. 어떤 교수들은 면접 때부터 대놓고 이야기해요. '아, 네 아버지가 OOO 목사님이시구나', '쟤가 OOO 장로님 아들이래' 이런 말을 다른 면접자들 듣는 앞에서 망설임 없이 하는 거예요. 학교는 사립학교법 적용을 받는 공적인 공간이잖아요. 요새 어떤 기관에서 이럴 수 있나요? 지금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교육부 감독을 받는 학교도 이런데, 아무 견제도 없는 청빙 과정은 오죽하겠어요."

하나 씨는 타 교단보다 인권에 민감하다고 생각했던 기장과 한신대에서도 여러 차별이 존재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나 씨는 타 교단보다 인권에 민감하다고 생각했던 기장과 한신대에서도 여러 차별이 존재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성차별도 다른 교단들과 비슷했다. 하나 씨는 '펜스 룰(Pence rule)'이 어느 집단보다 심한 곳이 교회인 것 같다고 했다. 담임목사는 90% 이상이 남성이었고, 이들은 면접 자리에서 "나는 남자가 더 편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남자여야 이것저것 시키기 편하고 단둘이 있어도 오해를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미혼 여성 사역자를 부담스러워했는데, 그렇다고 기혼 여성 사역자를 환영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장에서도 여성 사역자들의 결혼과 출산은 자주 경력 단절로 이어졌다.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는 순간 갈 수 있는 자리가 더 없어진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여성은 파트타임으로 찾는 교회가 많아서 전도사일 때 오히려 자리가 많다는 것이다. 목사가 되면 파트로 채용하기도 뭣하고 사례도 더 많이 줘야 하기 때문에 교회들이 꺼린다고 했다. 여성 목사로 교회에서 사역을 이어 가더라도 '교육목사'가 한계였다. 교육부서를 총괄하는 교육목사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 역할과는 별개로 목사 중 가장 서열이 낮은 직책으로 통했다. 그리고 여성은 교육목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아무리 오래 사역해도 교구 목사, 수석목사는 될 수 없었다.

"12년간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작은 교회, 큰 교회 다 경험해 봤는데요. 특히 작은 교회에서는 부교역자가 온갖 잡일을 도맡게 되더라고요. 저도 청소부터 시설 관리, 잡일 다 했어요. 그런데 여성들은 이런 일 못할 것 같다고 청빙 과정에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있어요. 억울하죠, 우리도 다 하는데."

반복되는 교단 내 성폭력, 문제는…

다른 어떤 교단들보다 앞장서서 인권을 외쳐 왔지만 기장 또한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3년 전 기장 소속 한 목사가 친족 강간 미수 및 무고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때 노회가 보인 행태도 가관이었다. 중직들을 포함한 일부 노회원은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재판국은 정직 1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1년 반 전에는 한신대 현직 교수가 제자에게 성폭력을 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지금도 기장과 한신대는 전·현직 교수들이 여성 시간강사를 지속적으로 성희롱했다는 문제가 접수돼 조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교단 총무 김창주 목사가 피해자에게 전형적인 2차 피해를 입혔다. 기장은 2019년 교단 차원에서 <성폭력 예방과 처리 지침서>를 발간하기도 했지만, 교단 중직자부터 이 매뉴얼과는 전혀 다른 대응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목사는 자신이 2차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나 씨는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여러 번 한숨을 쉬었다. 그 또한 학교에서 당한 성폭력을 고발한 적이 있었다. 한 조직에서 성폭력이 반복된다는 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성평등하지 않은 구조가 문제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기장은 교단 내 여성들의 노력으로 성폭력 매뉴얼도 발간하고 홈페이지에 성폭력 상담 및 신고 게시판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폭력이 일어나고 2차 피해도 계속된다. 목회자들이 전반적으로 성 인지 감수성과 성폭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이번에 전·현직 교수 성희롱 사건 기자회견할 때 저도 연대했는데요. 오신 분들 보니까 대부분 제가 성폭력을 고발했을 때 도와주셨던 분들이었어요. 그분들이 제 눈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시더라고요. 저 때도 성폭력이 폭로되고 규탄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니 저한테 미안하셨나 봐요. 그분들이 그럴 일은 전혀 아닌데….

 

이번 사건에도 임보라 목사님과 몇몇 여성 목사님이 나서셨잖아요. 저도 처음에 임 목사님께 말씀드렸거든요. 이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분이 기장 내에도 별로 없어요… 정말 없어요.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겠지만,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요. 성폭력에 대해 공부해 본 적도, 상담해 본 적도 없다 보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여성들이 성차별이나 성폭력을 경험했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 회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2019년 9월 기장 104회 총회에서 양성평등위원회가 배포한 <성폭력 예방과 처리 지침서>. 교회 성폭력의 특징과 대처 방법 등이 잘 나와 있지만, 교단 중진조차 이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9년 9월 기장 104회 총회에서 양성평등위원회가 배포한 <성폭력 예방과 처리 지침서>. 교회 성폭력의 특징과 대처 방법 등이 잘 나와 있지만, 교단 중진조차 이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사역지 선택의 폭이 좁아질지도 모르지만 목사 안수를 꼭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시대 여성 목사는 존재 자체로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 씨는 기장성을 갖춘 여성 목사가 교단에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성평등한 교단을 만드는 일만 보더라도 여성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적은 게 문제다.

"기장 여성 목사님들 역할이 정말 감사하고 중요하다고 느껴요. 기장은 '여성 할당제'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여성 목사가 있어야 할당제도 채우죠. 저는 그래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고 해요. 인권 활동도 저의 비전 중 하나인데요. '그러면 내가 왜 인권 활동가가 아닌 목회를 선택했을까' 생각해 봤어요. 교회가 너무 보수적이고 뒤처져서 실망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제가 지금 그런 역할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버티고 있고요. 그분들이 얼마 되지 않으니 짐이 무거울 거예요. 그걸 조금이라도 같이 지고 싶은 마음이죠."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씨를 뿌리면

기꺼이 화살촉이 되고자 기장 목회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학교나 목회 현장에서는 기장성을 배우고 발전시키기 어려웠다. 기장성이 살아 있는 교회가 이제 기장 내에서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곳은 대개 작고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부교역자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 교회는 정말 적었다. 하나 씨는 2년 전부터 향린공동체에서 일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새로운 운동성이 발견되고 있다고 봐요. 페미니즘과 퀴어신학 같은 것들이요. 기장은 성소수자 인권 지지한다고 신학교 입학 못 하게 하지는 않잖아요.(웃음) 임보라 목사님도 보수 교단들에서 이단으로 규정됐지만 우리 교단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죠. 제가 '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 활동도 하고 있어요. 그것도 제가 기장 소속이니까 가능한 거겠죠. 아직 기장에는 이런 얘기를 들여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이런 새로운 담론들을 기장성과 연결하면 사회와 함께 발맞춰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수 운동'이라는 건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어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며 소수자·약자들의 주체성을 회복해 주셨죠. 지금 사회에서 여성, 젠더 퀴어, 장애인, 난민, 이주민 등이 소외받은 자들로 조명되고 있잖아요. 근데 교회만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하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이게 중요하다고 할 때 유대인들이 아니라고 했던 것처럼."

지금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 씨가 이해하는 기장성, 화살촉이 되는 길이다.
지금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 씨가 이해하는 기장성, 화살촉이 되는 길이다.

하나 씨가 한국교회를 보며 걱정하는 영역은 '교육'이다. 그간 개신교가 성경을 토대로 한다면서 잘못된 씨를 너무 많이 뿌려 왔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교회는 생태·인권 등의 소양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도 반동성애 진영은 시효가 끝난 구시대적 내용을 들고 와 '성경적'이라는 말만 갖다 붙인 성교육을 지금도 한국교회에 보급하고 있다. 안 그래도 뒤처졌는데 뒤로 더 잡아당기는 꼴이다. 하나 씨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성서 정신에 근거한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강사는 기독교인들이 페미니즘이 아니라 '패밀리즘'을 배워야 한대요.(웃음) 정말 어이가 없죠. 이런 잘못 뿌린 씨들을 수거하고 새로운 씨를 뿌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제가 지금 한신대 사회혁신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혁신'이라는 게 다 그렇대요. 나 죽기 전에 안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길게 봐야 한다고. 오늘도 내일도 씨를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열매를 걷지 않을까…. 제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고요. 이미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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