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오전, 갑자기 열린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작년 여름 서울시는 '과다한 신체 노출 시 서울광장 사용을 제한한다'는, 원칙도 기준도 알 수 없는 말로 퀴어 문화 축제 허용에 조건을 내건 바 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아예 개최 이전에 광장 사용 '불허'라니, 한층 더 적극적인 모양새다.

당초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기로 한 7월 1일, 서울광장에서는 기독교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가 열리게 됐다. 굳이 퀴어 문화 축제 날짜에 딱 맞춰 그 장소에서 해당 행사를 열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한다. 시민위원회 측에서는 이 행사가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라는 이유로 우선순위를 뒀다고 하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충분한 논의나 조정 과정은 없었다. '정황상' 이번에도 반동성애를 내세운 한국 개신교 혐오 세력이 뭔가를 한 듯하다.

'정황' 같은 모호한 단어로 혐오 세력에게 혐의를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당당하다. 같은 날 나온 기사에서는 '성 혁명'을 막아설 '거룩한 방파제' 전국 국토 순례단이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이들은 출정식에서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이후, 지난해 7월 16일 또다시 서울광장에서 1만 3000여 명이 참여한 퀴어 축제가 열렸고, 여전히 음란성이 행사장 곳곳에 가득했다"고 했다.

그에 이어서 "서울시가 2022년 퀴어 축제에 서울광장 사용 허락 조건으로 내건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 등의 금지 내용이 당시 행사 중에 전혀 지켜지지 않은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테네에 종교성이 충만하다고 한 바울의 말도 아니고, 행사장에 음란성이 가득하다는 게 어떤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보다, 퀴어 문화 축제를 얼마나 즐겼으면 음란성이 가득한 걸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정작 작년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당일에는 폭우가 내렸고, 옷을 벗기는커녕 우비와 우산을 구하기만도 벅찼다. 음란성이 가득해 보일 만큼 노출을 할 이유도 겨를도 없었다는 말이다. 설령 정말 그런 문제가 일어났다 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문제를 삼지,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처럼 혐오 세력은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서만은 유독 음지와 양지를 넘나들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딴지를 걸곤 한다. '전세 사기'와 '하한가 작전 세력'에 버금가는 혐오 세력의 이런 속 보이는 물밑 작업에, 서울시는 그대로 순응함으로써 특유의 무능 혹은 혐오를 다시 한번 보여 줬다.

서울시가 5월 3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열고, 7월 1일로 예정된 '서울 퀴어 문화 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서울시가 5월 3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열고, 7월 1일로 예정된 '서울 퀴어 문화 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다가오는 7월 1일, 퀴어 문화 축제가 사용을 불허당한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라고 한다. 퀴어를 몰아낸 자리에서 '회복'을 외친다는 점도 퍽 상징적이다. 어떤 청소년과 청년에게 무슨 회복을 안겨 주겠다는 걸까? 애초에 회복이라면 무언가를 원래의 좋은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미일 텐데, 자신들이 그 '좋은 상태'일 뿐더러 누군가를 그 상태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그 근거는 무엇일까? 개신교인 특유의 자의식은 가끔 이렇게 놀라움을 안겨 주곤 한다. 그간 퀴어 문화 축제에서 안티테제로 활동하던 것에 지쳐서, 이제는 아예 테제가 되려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잔혹한 혐오 세력의 테제다.

혐오 세력이 이렇게까지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니 정확히 어떤 점을 반대하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찾아보면 볼수록 아리송해질 뿐이었다. 이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음란성'인데, 무엇이 어떻게 음란한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 혹시 축제 참여자들이 단정한 옷을 입고 무지개 깃발을 들고 엄숙하게 행진하면 '음란 축제'의 혐의를 벗을 수 있나? 여름마다 젖은 옷에 헐벗은 남녀가 어우러져 춤추는 '워터밤' 같은 행사에는 별말 않는 걸 보면, 그 정도는 괜찮은 듯한데 말이다. 어쩌면 '퀴어' 자체에 딴지를 걸 수 없다는 걸 본인들도 알기에 '음란성' 같은 모호한 기준을 물고 늘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들은 꼭 '동성애 퀴어 축제' 같은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이 축제가 해롭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노력한다. 하여간 '동성애'는 혐오 세력이 제일 좋아하는 먹잇감인데, 엄밀히 따지면 '동성애 퀴어'같은 단어 선택부터 촌스럽다. '고등어 생선 축제', '사과 과일 축제', '장로교 개신교 기독교 축제' 같은 언어 조합은 아무도 안 쓴다. 이들은 '동성애' 같은 젠더/성적 지향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퀴어'가 어떤 의미인지도 상상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니, 아마 혐오 세력들은 퀴어 문화 축제에서 누가 퀴어인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의 무엇을 반대하는 걸까? 여전히 모르겠다. 이들이 그걸 제일 모르니 단순하게 장소와 방향으로 '편'을 갈라 반대쪽에서 화를 내는 게 아니겠나. 성소수자가 작곡한 곡인지도 모르고, 차이콥스키의 곡에 맞춰 부채춤을 추면서 말이다.

혐오 세력이 퀴어/비퀴어를 분간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 자리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시민'이고, 퀴어 문화 축제는 '시민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민의 이름으로 공간을 빌려 문화를 누릴 뿐이다. 색출해 내지도 못할 누군가를 단지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런 강퍅한 태도는, 실은 현대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퀴어 문화 축제는 이미 시민 축제로 23년을 이어 오고 있다. 혐오 세력은 364일 혐오하고, 퍼레이드 당일에는 더욱 신나서 혐오를 부르짖을 자유를 외친다. 그러면서도 퀴어들이 단 하루라도 벽장 속에서 나와 동료 시민과 당당히 행진하고 즐길 자유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데, 굳이 찾아와서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해 내는 데 골몰한다. 그 행동이 성경적이며 '동료 시민'으로서 사회에 바른 영향을 끼친다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근 인터넷상에서 유행한 '바퀴벌레 질문'이라는 것이 있다. "엄마는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다소 실존적이고 부조리한 질문이다. 감동과 절망, 허무함을 품은 답변들이 유머 요소로 소비되는 동안 나는 다른 질문을 생각했다. "내가 퀴어라면 어떻게 할 거야?" 모르긴 몰라도 '그레고르 잠자'만 한 벌레를 마주칠 때보다 저 질문을 마주할 때 더 놀라 펄쩍 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야말로 카프카 소설의 괴이함과 음울함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부조리는 그런 사람들이 큰 소리로 '회복'을 외치면서 완성된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신들을 '혐오 세력'으로 악마화하지 말라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하나님은 적어도 기도와 그에 따른 행동으로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상처 주지는 않으신다. 누군가를 '악마'라고 칭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떤 행동들은 부정할 수 없이 혐오적이며, 오늘날 사회에서는 '반사회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호주의 퀴어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Hannah Gadsby)는 1997년까지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태즈메이니아 섬의 '바이블 벨트' 지역에서 자랐다. 그는 "저를 사랑과 믿음으로 키워 주셨던 분들의 70%가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겼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스스로 퀴어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동성애 혐오를 뼛속까지 내재화해 자기혐오를 두른 상태였고, 그렇게 10년간 벽장 속에 숨어 있어야 했다.

"아이에게 수치심을 심어 주면 아이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해요. 자존감을 못 느끼죠. 자기혐오는 오직 외부로부터 심어지는 건데, 아이에게 자기혐오를 심어 주면 (중략) 자기혐오를 중력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요."

우리 주변의 동료 시민들이 바퀴벌레가 되는 일은, 현재로서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할 테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가 퀴어일 수는 있으며, 이미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 개신교 혐오 세력이 자기 의에 도취해 들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불가피하게 수많은 동료 시민이 자기혐오를 내재화한다. 혐오 세력은 마치 이들에게 죄의식을 심으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거나 '죄를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혐오를 심으면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남이 축제에서 옷을 얼마나 벗는지, 누구와 어떻게 만나 어떤 성교를 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죄 유무를 판별하는 일은 주로 죄 많은 우리 인간이 벌이는 일이다. 이런 사소한 미풍양속 단속반의 광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일은 아닐 것이다.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광장을 독식하며 일부 시민을 배척하는 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비추고 드러내시는 분, 닫힌 문을 여시는 분, 상한 자가 마음 놓고 나오게 하시는 분이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퀴어 문화 축제를 반기시지 않을까.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시의 불허 결정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퀴어 문화 축제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부디 시민 축제는 축제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 물론 혐오 세력도 '시민'인 만큼 퀴어 문화 축제에 '놀러' 온다면 더없이 환대해 줄 의향이 있다. 여러분이 걱정(?)하던 것보다는 건전하고 재미있다! 그러니 이제는 편 없는 광장에서 만나, 싸우지 말고 함께 축제를 즐기면 좋겠다.

심정용 / 아마도 교회 청년부의 핵심 멤버. 차기 선교부장으로 내정될 위기에 처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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