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도는 춘천 퀴어 퍼레이드 행렬. 앞서 가는 이들과 뒤에 오는 이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환호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반환점을 도는 춘천 퀴어 퍼레이드 행렬. 앞서 가는 이들과 뒤에 오는 이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환호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제3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5월 14일 춘천 의암공원에서 열렸다. '퀴어가 힘이 넘치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퀴어 문화 축제는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는 운동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의암공원 중앙 잔디밭에 단체 16개가 부스를 차렸다. 참가자 300여 명은 부스를 돌아보고 운동회에 참여하며 축제를 즐겼다.

앞서 춘천시청은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의암공원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지난해 축제 때 물품 판매 행위가 이뤄졌고, 다수의 반대 민원이 들어온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에 조직위와 소양강퀴어연대회의는 4월 11일 춘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춘천시의 결정은 자의적이고 근거 없는 차별적 대응이라고 규탄했다. 장소 사용은 불허됐지만 경찰에 집회 신고는 해 둔 상태이기 때문에, 조직위는 예정대로 의암공원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했다.

축제에는 아이들과 함께 참석한 사람도, 외국인도 더러 보였다. 봄 날씨 같지 않게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참가자들은 저마다 제기차기, 신발 양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경보 계주 등을 하며 즐거워했다. 중간중간 참가 단체들의 연대 발언과 드래그 퀸(Drag Queen) 뮤지션 허리케인김치의 공연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퀴어 문화 축제의 꽃이라고 불리는 '퀴어 퍼레이드'까지 무탈하게 치렀다. 참가자들은 춘천 시내까지 왕복 4.5km를 걸으며 "춘천을 퀴어하게, 소양강 퀴어!", "혐오는 메롱메롱, 차별도 메롱메롱"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제3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소양강 퀴어 운동회'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제3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소양강 퀴어 운동회'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조직위와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기자회견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조직위와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기자회견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동안 축제에서는 줄다리기가 진행됐다. 혐오 세력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동안 축제에서는 줄다리기가 진행됐다. 혐오 세력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퀴어 문화 축제의 불청객,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반대 집회도 있었다. 재작년 1회 춘천 퀴어 축제 때는 수백 명이 축제 장소 건너편에서 몇 시간 동안 집회·시위를 이어 갔다. 작년 2회 때는 20~30명이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데 그쳤다. 이번 3회 때도 약 20명이 참석해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내용은 역시 동성애나 퀴어 축제와 관련한 허위·왜곡·과장 정보와 혐오 발언으로 점철됐다. 기자회견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잠깐 고성이 오가고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지만, 기자회견은 축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경찰의 개입 속에서 조직위와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어 기자회견이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고, 음량 또한 축제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절됐다.

이번 축제에는 대한성공회 춘천나눔의집 양만호 사제의 '축복식'이 진행됐다. 양만호 사제는 "제1회 춘천 퀴어 축제 영상을 봤는데, '오늘 하루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힘으로 남은 1년을 살아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뭉클했다. 비단 오늘 하루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 내가 나여서 기쁘고 나로 태어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김종훈 사제(용산나눔의집)와 고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가 작성한 기도문을 참가자들과 교독한 뒤, 준비해 온 성수를 뿌리며 축제를 축복했다.

양만호 사제는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의미로 춘천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했다. 그가 속한 대한성공회 춘천나눔의집은 성소수자 신앙 상담 등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양만호 사제는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의미로 춘천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했다. 그가 속한 대한성공회 춘천나눔의집은 성소수자 신앙 상담 등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춘천나눔의집은 이번 퀴어 문화 축제에서 부스를 차리기도 했다. 춘천나눔의집 김태민 사무국장은 연대 발언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폭력은 주로 예수를 따른다는 기독교 국가에 의해서 벌어졌다. 그 폭력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와 다르고, 내 믿음과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저들을 그냥 놔두면 언젠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저들처럼 될 것'이라는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또는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공격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독교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혐오하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로부터 미움을 받고 공격받고 차별받을 줄 알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으로 살겠다고,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고, 그리고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당당하게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안에 사랑을 품은 작은 예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참여한 춘천나눔의집 사제회장 하혜정 씨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모두가 소중한데, '너는 이것 때문에 안 돼', '너는 저것 때문에 안 돼'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축제에 올 때 아이들이 '퀴어가 뭐야?' 내지는 '퀴어 축제는 왜 하는 거야? 우리는 거기 왜 가야 돼?'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이들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퀴어든 아니든 인간으로서 누구나 차이점은 있을 텐데, 기독교는 그 작은 차이 때문에 그 사람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걸 정당화한다. 기존 보수 기독교 교단에 호소하고 싶다. 좀 제대로 알고, 이야기를 좀 들어 봤으면 한다. 실제로 그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왜 존재를 부정하려고 하는지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잔디밭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쉬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어린아이들도 여러 부스를 돌고 운동회에 참가하며 즐거워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참가자들은 잔디밭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쉬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어린아이들도 여러 부스를 돌고 운동회에 참가하며 즐거워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편, 퀴어 문화 축제 등 성소수자 관련 행사의 장소 사용을 지자체가 불허하는 결정은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올해로 24회를 맞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연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 줄곧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다. 하지만 올해 서울시는 7월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서울시청광장 사용 신청을 불허했다. 대신 CTS기독교TV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에 서울시청광장 사용을 허락하기로 했다.

춘천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홀릭 위원장은 연대 발언 시간 "이러한 일들은 매일 반복되고 있다. 많은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지역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혐오와 차별,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편견에 기반을 둔, 인권을 부정하고 공적 영역으로부터 배제하고자 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라고 꼬집었다.

제3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소양강 퀴어 운동회 축복식

(✝ 표시는 인도자가, ☉ 표시는 참여자가 함께합니다)

✝ 천지 만물,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든 것들에 깃들어 계신 우리들의 하나님.
☉ 이 좋은 날, 복된 자리에 우리를 불러 모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니 감사하나이다.

✝ 이 시간 간절히 비오니, 교회에서 상처받고 쫓겨난 모든 이들과 성소수자들이 그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새로운 식구가 되게 하시고,
☉ 주님의 입맞춤이 주는 힘으로 사랑의 관계를 되찾게 하소서.

✝ 주님의 이름을 악용한 모든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를 거절하며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 차별에는 거룩하고 차가운 분노로,

✝ 배제에는 끈기 있는 연대로,
☉ 혐오에는 힘 있는 축복으로 끝내 승리하게 하소서.

✝ 주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축복하시는 성소수자,
☉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과 춤추며 웃고 떠드시는 우리들의 하느님.

✝ 우리가 모여 함께 울고 웃고 떠들썩하게 춤추며 즐거움을 나누는 이 자리를,
☉ 연약함으로 강하게 하시는 성부와 참사랑이신 성자와 우리들의 호흡이신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하오니,

✝ 이 자리와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에 사랑이 넘쳐나게 하소서. 아멘.

* 민김종훈(자캐오) 신부, 故 임보라 목사 공동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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