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를 비롯한 신천지 피해자들이 2020년 3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2차 청춘 반환 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를 비롯한 신천지 피해자들이 2020년 3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2차 청춘 반환 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문화 센터', '성경 공부' 등을 내세워 정체를 숨기고 포교하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만희 총회장)의 '모략 전도'에 대해, 대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 제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8월 11일, 신천지 서산교회 탈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 중 신천지교회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2018년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전피연) 주도로, 신천지 탈퇴자 함 아무개 씨와 조 아무개 씨 등 3명이 신천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신천지에 빼앗긴 세월을 돌려 달라는 취지에서 '청춘 반환 소송'이라고도 불린다.

1심2심에서는 재판부가 신천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탈퇴자들의 손을 들어 줬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신천지가 어떤 방식으로 '모략 전도'를 하는지 적나라하게 공개되기도 했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신천지는 포교 대상인 '피전도자'에게 신분을 숨기고 접근한 후 '성경 공부' 또는 '문화 체험' 명목으로 교리 교육을 받게 하며, 피전도자가 인도자·섬김이·교사(인섬교) 외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게 관리하면서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는 등의 행위를 일삼았다. 

1·2심이 연달아 신천지의 '모략 전도'가 불법행위이며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신천지의 행태를 "사회적·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정당한 범위를 일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다. 피해자들이 그간 교육받아 온 곳이 기성 교회가 아니라 신천지였다는 점을 뒤늦게 인지한 후에도 교리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교리 교육이 강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대법원은 탈퇴자 조 아무개 씨를 전도하는 과정에서 '기망적인 행위'가 존재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조 씨의 종교 선택에 관한 자유가 상실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조 씨가 신천지 입교 생활을 한 1년 6개월간 예상치 못한 재산상의 불이익이나 일상생활의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4년간 이번 사건을 대리한 홍종갑 변호사(법무법인 사명)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손해삼분설에 따르면 손해는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로 나뉘는데, 이번 사건에서 탈퇴자 조 씨는 신천지 서산교회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뜬금없이 재산상 불이익이라든지 일상생활에 중대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재산 손해 여부를 따지고 있다. 모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그동안 법원의 위법행위 판단 기준 중 하나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를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신천지의 행위가 '사회적·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고 했고 기망 행위가 포함돼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위법행위는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신천지 교육장 출신 이단 전문가 신현욱 목사(구리이단상담소)도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결국 피해자들이 자진해서 신천지 활동을 했으니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것인데, 모략 전도를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한 과정을 외면한 판결이다. 사탕에 마약을 발라 놓고 유인하면 결국 마약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신 목사는 "성범죄 사건에서, 예전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집에 갔다든지 하는 사정이 있으면 '왜 거길 따라갔느냐, 좋아서 그런 것 아니냐'면서 가해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그루밍 성폭력 개념이 확산하면서, 현재는 위계와 위력 여부, 정서적 예속 상태 등 전후 사정을 폭넓게 고려하고 있다. 신천지 사건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나왔는데도 '좋아서 활동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만 문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사건을 하급심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향후 열릴 파기환송심에서는 신천지 피해자들의 청구가 기각될 확률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이번 신천지 서산교회 사건이 신천지의 모략 포교 방식에 대한 첫 대법원 판단이었던 만큼, 유사 사건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려면 대법관 전원이 논의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돼야 한다.

전피연은 현재 춘천지방법원에서 '제2차 청춘 반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탈퇴자들은 2020년 3월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불교 신자라 성경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가짜 스님'까지 동원해 포교했다"며 신천지의 모략 포교 실태를 폭로하고, 서산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홍종갑 변호사는 "향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를 변경하고 모략 전도의 불법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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