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 치리에 목회자가 교인보다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가 발표한 '개신교 성 인지 감수성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 교인 86.5%는 '교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를 영구적으로 제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 목회자 49%는 '목사직 정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충분히 회개한다면 복권할 수 있다'고 답했다.

기반센은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공간새길에서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지앤컴리서치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전국 만 19세~65세 교인 8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했다. △성 관련 인식 △교회 내 양성평등 △설교와 양성평등 △교회 내 성희롱·성폭력 경험 △한국교회의 성범죄 대처 시스템 △목사의 성 스캔들에 대한 의견 등 20개 문항을 물었다. 이번 조사는 8월 30일부터 9월 9일까지 11일 동안 진행됐으며, 남성 354명, 여성 446명이 참여했다. 일반 교인과 목회자의 인식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진행했다. 모바일로 진행된 이 조사에는 전국 담임목사·부목사 및 설교·협력목사 212명(남성 207명, 여성 5명)이 참여했다.

교인·목회자 성 인지 감수성,
일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대부분 '양성평등'하다 답했으나
세부 항목에서 "성차별 경험 있다"
 

교인들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묻는 항목에서 대부분 높은 동의율(매우 그렇다+그렇다)을 보였다. '가벼운 성적 농담이나 신체 접촉도 성희롱이다' 항목에는 89.5%가, '단톡방·메시지·소셜미디어 등에서 상대 외모를 언급하는 것도 성희롱이다' 항목에는 85%가, '가해자가 성희롱 할 의도가 없었다 해도 피해자가 불쾌하면 성희롱이다' 항목에는 83.8%가 동의했다.

일반적인 성 인지 감수성은 높은 편이지만, 위계에 의한 성폭력 등에는 둔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은 교회·학교·회사 등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항목에는 교인 34.6%만 동의했다. 이는 교인들이 교회 내 성범죄를 권력 차이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보기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일탈로 보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내 양성평등 실태를 묻는 항목에서는 교인 74.2%, 목회자 57%가 '출석·시무하는 교회의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며 차별이 없다'고 응답했다. 여성 처우와 관련해 교인 46.3%는 '일반 사회와 비슷하다'고 답했고, 목회자 48.7%는 '일반 사회보다 더 평등한 처우를 받는다'고 답했다. '성별 구분 없이 능력에 따라 사역한다' 항목에 관해 교인은 72.9%, 목회자는 69.1%가 응답했다.

한편, 교회 내 남녀 역할에 대한 질문에는 교인 60.2%, 목회자 67.1%가 '여성과 남성이 맡아야 할 일은 어느 정도 구분하는 게 좋다'고 답했다. '교회 내 양성평등에 관심이 많다'고 답한 교인은 49.8%, 목회자는 52.8%였다.

'담임목사가 성차별 설교를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질문에는 교인 84.5%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체적 예시를 제시하자 '성차별적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상승했다. 교인들은 출석하는 교회에서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기본적 역할이다'(39.1%), '여성은 순종적이고 지혜로워야 한다'(32.9%), '교회에서 여성 리더는 부드럽고 포용적이어야 한다'(21.7%), '남성은 여성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존재여서 조심해야 한다'(21.2%)는 내용이 담긴 설교를 들었다고 응답했다.

성범죄 피해 직간접 경험 최대 22.5%
한국교회 성범죄 대처 시스템 '부정적'
목회자, 2차 가해 인식 수준 낮아
 

최근 3년 이내 교회 안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는지도 물었다. 교인들은 '가벼운 신체 접촉'(22.5%),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품평, 별명 사용'(11%), '가벼운 성적 농담'(9.5%), '본인이 원하지 않는 지속적인 연락'(5.5%), '짙은 성적 농담'(3.3%), '사생활에서의 성적 경험에 대한 질문'(3.2%), '심한 신체 접촉'(2.1%), '본인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 요구'(2%)를 경험했다고 했다.

'출석 교회나 기독교 기관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교인 82.2%, 목회자 54.5%가 '없다'고 응답했다.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묻자, 필요하다고 응답한 교인은 64.8%였다. 같은 항목에서 목회자는 대다수인 99.6%가 필요하다고 응답해 성폭력 예방 교육에 대한 강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 성범죄 대처 시스템에 대해서는 교인 55.9%, 목회자 93.7%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교인들은 복수 응답이 가능한 질문에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공적 기구가 없음(61.6%)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함(59.3%)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소홀함(48.6%)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약함(42.9%)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함(31.4%)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같은 문항에서 목회자는 2차 가해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소홀하다'는 응답은 20.8%,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한 것 같다'는 응답은 8.3%에 그쳤다.

발표자들은 교인들의 성범죄 피해에 대한 감수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발표자들은 교인들의 성범죄 피해에 대한 감수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여론조사를 진행한 권미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상담학)는 "남녀 목회자 수, 교회·교단 전체 지도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임에도 이를 평등하게 여긴다거나, 분명 성차별적인 표현임에도 이를 차별로 느끼지 않는 것은, 한국교회 성 인지 감수성이 (조사 결과와 다르게) 민감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교회 안에 양성평등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부재하고, 평등의 문제를 광의의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목회자, 교인 모두 성폭력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교단 또는 기독교 기관에서 교회 현실에 맞는 체계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을 만들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 교수와 함께 문항 작성 및 결과 분석을 진행한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는 "교인의 성 인지 감수성이 우려할 만큼 낮지는 않지만, 위계에 의한 성폭력 인식이 부족하고 교회에서 성범죄를 문제 삼기도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또 교회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직자들의 성 인지 감수성이 다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홍보연 원장은 조사 대상의 성비 불균등만 봐도 한국교회의 성별 불평등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양성평등하다는 응답 결과를 볼 때, 차별 상황을 인식하지 못해서 평등하다고 하는 것인지 이만하면 평등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면 성 인지 감수성은 깨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홍 원장은 "인식과 감수성은 다르다. 감수성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동적인 태도다. 성 인지 감수성은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고정된 관점이 아니라 계속되는 변화와 성숙을 전제한다. 교인·목회자들이 교회 내 불평등과 차별을 섬세하게 알아차리면서 성 인지 감수성을 길러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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