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3항

"재판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109조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공개재판'은 헌법에 두 번이나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공개재판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물론 재판 공개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헌법 제109조) 또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성폭력처벌법 제31조 1항) 비공개재판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심리에 국한되며 판결은 예외 없이 공개된다.

공개재판은 사법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에 예외도 최소한으로 적용해야 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이상원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2012년 '사법 신뢰 형성 구조와 재판의 공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사법부의 신뢰는 객관적 실체인 사법부의 공개함으로부터 나온다"며 "재판 공개 기준의 기본 위치는 모든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돼야 하고 예외적으로만 제한될 수 있다는 '최대 공개의 원칙'에 설정돼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사회 법에서는 '기본권'
교단법은 보장 안 해

공개재판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교회 재판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교단은 자치 규범인 헌법에서 재판의 공개 여부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해야 할 텐데, 거꾸로 재판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교단이 대다수다.

사실 이는 비단 교단 재판위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단에 속한 거의 모든 위원회·기관이 '밀실 회의'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교단지 기자에게만 취재할 수 있는 특혜(?)를 주기도 하는데, 조금만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면 교단지 기자도 예외 없이 퇴장당한다. 교단은 소속 교회 교인들의 헌금으로 운영된다. 언론을 통해 모든 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교단 지도자들은 이런 의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는 듯하다.

. 뉴스앤조이 구권효
2014년 전병욱 목사 성폭력 사건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된 가운데, 바깥에서는 홍대새교회 교인들이 행패를 부렸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단 안팎의 관심을 받는 재판에 있어서도 교단들은 비공개를 고수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평양노회가 2014년 진행한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 성폭력 사건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다. 당시 재판이 진행된 평양노회 사무실 앞은 전 목사를 비호하는 홍대새교회 교인들의 행패로 아수라장이 됐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전병욱 목사와 홍대새교회 교인들에게 있지만, 노회가 애초에 재판을 공개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이 2018년 명성교회 세습 사건을 다룰 때도 비공개였다.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을 찾은 교단 목회자와 신학생뿐 아니라, 교계·일반 언론 취재진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총회 재판국은 회의가 끝난 후, 논의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 브리핑했다. 재심 재판 중에는 9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시간이 없어 논의하지 못했다"는 결과만 들은 경우도 있었다.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 회의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 회의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예장합신)은 아예 재판 절차상 재판국원들이 판결을 공개로 할지 비공개로 할지 결정하게 돼 있다. '비밀재판'에 대한 규정도 있는데 △범죄의 성격상 공개로 재판했을 때 하나님과 교회를 크게 욕되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원고, 피고, 방청인 모두의 신앙에 큰 손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될 때 △공개재판을 할 때 원고나 피고 어느 한편 혹은 양편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등 기타 신변에 위험을 주는 행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되는 때 비밀재판을 열 수 있게 했다. 사실상 모든 재판을 비밀로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한 규정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권징조례 42조에 별도 조건 없이 "재판회는 위원 과반수의 결의로 재판을 비공개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장합동에서는 판결이 나기 전 재판 관련 문서를 언론에 알리면 불이익을 받는다. 권징조례 76조는 "(전략) 혹시 어떠한 소원이나 상소를 불문하고 본 치리회나 혹 그 재판국에서 재판하는 중 판결 언도 전에 피고 혹 원고가 상회원에게나 일반 민중에게 대하여 변론서나 요령서를 출간 혹 복사하거나 기타 수단으로 직접 혹 간접으로 선전하면 치리회를 모욕하는 일이니 그 행동을 치리하고 그 상소를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판을 공개하지 않고 판결 전 언론 보도도 막겠다는 것은 '밀실 재판'을 하겠다는 말과 같다. 

감리회는 주요 교단 중 유일하게 재판을 공개해 왔지만, 갑작스럽게 비공개 통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감리회는 주요 교단 중 유일하게 재판을 공개해 왔지만, 갑작스럽게 비공개 통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주요 교단 중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만이 '공개재판'을 명시하고 있다. 교리와장정 제7편 제2조 3항에는 "교역자와 교인은 2심제에 의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선거 관련 재판은 예외로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감리회는 이 규정에 따라 비교적 공개재판 원칙을 잘 지켜 왔다. 그러나 감리회 총회 재판위는 2월 22일 열린 '성소수자 축복기도'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항소심 재판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비공개를 통보했다. 이 목사 측은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공개재판을 할 수 있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재판은 열리지 못했다. 이 목사를 변호한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이 재판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결문 공개하는 교단도 드물어
판례 적용 안 하니 임의적일 수밖에

대한민국 법원은 민·형사소송법에 근거해, 확정된 민·형사사건에 한해 비실명화한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법원 홈페이지에 있는 '판결서 인터넷 열람'에서 법원명, 사건 번호, 당사자명을 입력하면 누구든지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다. 법원이 판결문을 공개하는 이유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바람직한 법률 문화 정착'을 위해서다.

그러나 교회 재판에서는 일단 판결문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예장합동의 경우 회기 내 열린 재판 판결문을 매년 9월 정기총회 보고서에 수록하고 있지만, 이는 판례를 아카이빙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예장합동 재판 구조상 총대들의 결의가 있어야 판결이 확정되기 때문에 보고용으로 작성한 것일 뿐, 이를 따로 모아 놓거나 일반 교인들에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물론 총회 보고서에조차 판결문 전문을 공개하지 않는 교단도 있다.

예장통합은 유일하게 홈페이지에 판결문을 정리해 온 교단이다. 재판의 사건 번호, 사건명, 피고인, 소속 노회, 판결 일시, 주문, 판결 이유 등을 모아 놓은 판례집을 열람할 수 있게 해 놨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6년(101회기) 이후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예장통합 재판국 홈페이지가 비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홈페이지 갈무리
텅 비어 있는 예장통합 재판국 홈페이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홈페이지 갈무리

판결문 및 소송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은 재판의 투명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고소·고발을 해도 교단이 각하·기각하는 경우 이유를 알 길이 없다. 감리회 총회 재판위는 7월 9일 이동환 목사의 상소를 각하하기로 결정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결정문을 통지하지 않았다. 이 목사가 9월 13일 총회 재판위원회에 내용증명을 보내자, 다음 날 위원장 조남일 목사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아직 결정된 게 없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재판을 재개할 예정이다"라고 답했다. 

예장합동 소속 ㅍ교회 교인들은 작년 1월, 담임 최 아무개 목사가 교회 청년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를 ㄱ노회에 고소했다. 최 목사는 ㄱ노회 노회장이었다. 노회는 고소장을 접수해 놓고도 재판국을 구성하지 않고 조사처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예장합동 헌법 권징조례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고소를 각하한 것인지, 왜 재판국이 아닌 조사처리위를 구성했는지 ㄱ노회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판결문 수집과 공개가 중요한 이유는 판례가 하급심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 법에서는 대법원 판례가 하급 법원 판결의 준거가 된다. 유사 사례를 다룰 때 실정법과 더불어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재판의 일관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교회 재판에서는 기존 판례를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 판례가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판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회 재판의 판결문 비공개는 보수적인 법학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해 왔다. 한국교회법학회장 서헌제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는 2015년 '교회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판결문의 공개야말로 교회 재판에 대한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믿는다. 판결은 교단 헌법 규정 못지않게 교회법의 법원法源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개된 판결문을 통해 재판부의 입장을 알아야, 이후 재판에도 기준으로 삼을 수 있고, 허술한 권징조례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법 전문가들이 판결문 공개를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불필요한 재판을 줄이고 유사 범죄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법 전문가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재판은 다 선례다. 공적이고 규범적인 판결을 위해서는 선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게 죄가 되는구나', '이 죄를 저질렀을 때 어떤 벌을 받는구나'를 알게 되고 예방 효과도 있다. 판례를 축적하는 것은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단순 판례 모음집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공개재판은 사법 신뢰와 직결된다. 재판 과정 및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을 지속하는 한, 교회 재판이 신뢰를 회복할 길은 없다. 반대로 말하면, 이것만 해도 교회 재판의 공정성·투명성을 다소라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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