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난해 7월, 청어람ARMC(오수경 대표)가 주관한 온라인 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미국 홀리네임즈대학에서 영성학을 가르치는 박정은(소피아) 수녀가 이끈 피정은 '지혜의 원 - 깊은 곳에 그물을 치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피정避靜'은 한국 개신교 전통에서는 낯선 행위다.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는 수련 방법이다.

여성들만 참여한 이 온라인 피정의 주된 생각거리는 '기쁨'이었다. 박정은 수녀는 참가자들에게 한 주간 오롯히 느낀 기쁨의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보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의외로 기쁨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았다. "항상 기뻐하라"는 성경 구절을 인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는데, 일상에서 기쁨을 포착하는 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4주간 진행된 온라인 피정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분명 나는 기쁨을 찾는 훈련을 했고 피정에 참여하는 순간만큼은 그 방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일상은 그대로였다. 기쁨보다는 불평·불만·불안이 삶을 잠식했다. 물론 순간순간의 기쁨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고, 스스로 그 기쁨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저만치 사라져 버렸다.

<생의 기쁨> / 박정은 지음 / 옐로브릭 펴냄 / 228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생의 기쁨 - 불활식한 날들을 가볍고 유연하게 건너는 법> / 박정은 지음 / 옐로브릭 펴냄 / 228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정은 수녀의 신간 <생의 기쁨>(옐로브릭)은 이처럼 기쁨이 낯선 이들을 향해 건네는 일종의 '기쁨 찾기 안내서'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변화의 연속인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저자는 일상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일은 '영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자기 삶의 고유한 결을 찾는 부단한 작업을 해 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작업의 과정을 기쁨의 영성이라 부르겠습니다. 이 작업을 위한 중요한 전제는 세상은 늘 변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는 불편한 진리를 끌어안고 그 속에서 유연하고 자유롭게 내면의 조화를 누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90~91쪽)

수다가 주는 치유의 힘을 알려 준 <사려 깊은 수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 영혼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슬픔을 위한 시간>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는 삶의 순간순간 기쁨을 '발견하는' 연습 방법이 들어 있다. 성서가 "항상 기뻐하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알려 줬다면, 이 책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이 반복되는 나의 잔잔한 일상을 어떻게 기쁨으로 채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안내해 준 실용서 정도로 볼 수 있다.

박정은 수녀는 첫 번째 장 '기쁨의 단서들'에서 기쁨이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소설 <빨강 머리 앤>과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기쁨을 찾는 것은 나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이고, 주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며,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 낼 때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일상의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주변의 사소한 것들 안에 담긴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고 그 발견으로 인해 더 이상 사소하지 않은 그 대상과의 깊은 유대와 친교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기쁜 사람들은 늘 자기 주변의 것을 돌아보고 관계 맺을 줄 알며 그 안에서 깊은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93쪽)

박정은 수녀와 나눈 대화를 돌이켜 보면, 그가 건넨 말 하나하나가 위로였다. 사진 제공 옐로브릭
박정은 수녀와 나눈 대화를 돌이켜 보면, 그가 건넨 말 하나하나가 위로였다. 사진 제공 옐로브릭

실제로 일상에서 기쁨을 찾기 위해서는 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박정은 수녀가 제시한 방법들은 실천하기 어렵지 않다. 깊은 경건과 묵상 혹은 끊임없는 기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낸다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이기도 하다. 그가 학교 신입생들과 했다는 '일상생활 기쁘게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수행한 일들은 다음과 같다.

- 12시 전에 잠자리에 든다
-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 친구들과 놀기 전에 숙제를 마친다
- 매일 운동을 한다
- 매일 플래너를 사용해 삶을 잘 계획하고 경영한다
- 기도한다
- 언제나 자신에게 진실하고자 노력한다
-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을 결정하지 않도록 한다
- 고요한 시간을 가지며 명상한다
- 기꺼이 길을 잃어 보고 다시 방향을 찾는다
- 숲에 간다
- 좀 더 자주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귄다.
등등

이는 박정은 수녀가 예로 든 것일 뿐 독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일을 찾아 행하면 된다. 이외에도 △현재에 머무르기 △감사하기 △공감하기 △받아들이기 △주변 정리하기 △만남 △놀이 △유머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자, 책을 다 읽으면 없던 기쁨이 갑자기 충만하게 차오를까. 글쎄, 저자가 그것을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저자가 방법을 알려 준다 한들, 이를 직접 실행하는 건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반복되는 훈련 없이는 순간순간 다가오는 기쁨을 붙잡지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낼 확률이 높다. 박정은 수녀는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쁨을 발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쁨은 우리를 살짝살짝 건드리고 달아나 버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혹은 시냇가에서 물방울을 튕겨 옷을 적시고 도망가는 장난스러운 친구라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렇게 보내 버리기에는, 기쁨은 우리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 주는 너무도 중요한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관계들, 함께 나누었던 마음,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고스란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고 때로 행복이라 부르며 또 누군가는 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뜻언뜻 찾아오는 그 기쁨을 잘 알아차리고 연장해 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220~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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