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의 시간] L. 줄리아나 M. 클라센스 <여성, 존엄을 외치다>(분도출판사)

'폭력'은 내 관심 주제다. 폭력 문제에 관심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혹시 가정 폭력 경험을 가진 건가 싶어 조심스러워한다. 같은 예로, 내가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드러내면 여러 이유를 굳이 생각해 내고 싶어 한다. 가령, 남초 대학교를 다니며 경쟁에서 때때로 밀렸다거나, 관계에서 상처를 다수 받았을 거라는. 내 출신 대학을 아는 누군가는 조심스레 이렇게 물어본 적도 있다. 혹시 H대에서의 경험 때문인가요?(H대 이미지 무엇?) 게으른 관점이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천만에요. 태어날 때부터 페미니스트였어요."

굳이 3년 지난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대사를 소환하자면 내 관심 주제에는 계기가 없다. "난 너 같은 년들이 제일 싫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중략) 자기 욕망에만 눈멀어서 제 살길만 강구하는 개 같은 새끼들. 뭐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라고 미성년자 성매매를 한 국회의원이 도발하자, 주인공 배타미(임수정 분)는 이렇게 답한다. "뭐, 부모님 원수를 갚거나 전 남편한테 복수하거나 그런 이유 기대하는 거야?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 다시 없을 명대사로, 인생 좌우명 각이다.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 tvN drama 유튜브 채널 갈무리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 tvN drama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게 욕망인데, 한국 미디어는 여성의 욕망에 늘 '불행한 가족사'나 '바람난 연인' 같은 계기를 부여했다. 내가 기후 위기에 관심 있다고 할 때 "기후 위기로 가정에 문제가 생겼거나 직장을 잃었나요?"라고 누구도 묻지 않듯, 폭력 문제는 기후 위기 만큼이나 인간 존엄 혹은 모든 생명체가 지속 가능한 정의와 평화 상태로 사는 일을 위한 보편 주제이므로 앞으로는 저런 태도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편견 어린 태도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다. 폭력 문제를 연구하는 남성에게는 굳이 덧붙이지 않을 궁금증을 여성인 내게는 품는다는 것. 이는 이 세계가 여성에게 결코 호의적이거나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는 작은 증거다.

그러므로 누군가 내게 "혹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가부장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험도 없고, 학교 폭력을 당한 경험도 없지만 (물론 체벌을 받은 적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내내 온갖 종류의 폭력을 목격하고 그 폭력에 노출돼 왔다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페미니스트였다고 대답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이론을 습득한 바는 없지만, 이 세계가 여성이 살 만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내 욕구와 바람을 마음껏 드러내 성취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했고 불화했으므로.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내가 체득한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를 갖게 되었으므로.

그래서 이번에 읽은 책 <여성, 존엄을 외치다>(분도출판사)에 대해서도 이렇게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여성으로서 내내 폭력을 목격하고 폭력에 위협받은 내 감각을 설명하는 언어를 더욱 정교하게 획득하게 되었다고. "저항하기 힘든 경험들에 모양과 형태를 부여하는 단어를 제공하여, 힘을 빼앗긴 자들이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인간됨을 재천명하도록"(268쪽) 도와주는 책을 찾아냈다고.

<여성, 존엄을 외치다 -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저항> / L. 줄리아나 M. 클라센스 지음 / 정혜진 옮김 / 분도출판사 펴냄 / 304쪽 / 2만 3000원
<여성, 존엄을 외치다 -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저항> / L. 줄리아나 M. 클라센스 지음 / 정혜진 옮김 / 분도출판사 펴냄 / 304쪽 / 2만 3000원
옛것에서 건져 올린
저항의 새로운 세계

이 책의 저자 L. 줄리아나 M. 클라센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스대학에서 가르치는 구약학자다. 짧게 언급한 이력은 이 책의 탄생에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남아공에서 '인간 존엄'을 주제로 연구하는 여성 성서학자. 그의 문제의식을 짐작할 만하다.

"이 나라에서 나는 매일 여성들의 취약성에 직면한다. 후천면역결핍증(HIV-AIDS)은 젠더화된 유행병으로 불리며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문화적 요인 둘 다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지는 이 질병에 여성들이 특히 더 걸리기 쉽다. (중략) 게다가 더 많은 여성이 극단적 빈곤 상태에 처해 있고 빈곤의 현실이 성별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용어로 '빈곤의 여성화'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특히 성폭력은 여성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중략)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전쟁 중이 아닌 나라 가운데 강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 중 하나다. 따라서 이 주제는 매우 개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31~32쪽)

국가적인 맥락뿐 아니라, 남아공의 네덜란드개혁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한 최초의 여성 가운데 한 명으로서 "존엄이 훼손당하는 상황 속에서 목소리를 내고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여성들과 함께 분투해야 했던 시기"(33쪽)를 거친 저자의 개인적 맥락까지 더해진 이 책 곳곳에는 실존의 고투가 묻어난다. 자기 실존에 던져진 질문에 답하고자 절박하게 자기 연구 분야에서 길을 찾은 이의 지적인 고투. 그래서였을까. 현실에서 충실히 단련됐을 저자가 생산한 사유, 그가 해석한 구약 여성들과 그 해석이 도출한 다채로운 저항 방식은 면면이 입체적이다. 2021년 한국에서 성경을 읽고 믿으며 현실을 사는 세속의 한 여성 노동자에게도 영감을 주고 실제적 저항 방식을 가르쳐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저자가 오늘의 우리에게 저항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구약의 여성들을 불러온다. 복수의 정치학 속에 학살당하고 매장조차 되지 못한 아들의 어머니 '리츠파', 공동체 전체가 숙청당할 뻔한 폭력의 위협 앞에서 음식을 차려 낸 '아비가일', 이복 오빠 암논에게 강간당한 '타마르', 바빌론 포로기에 강간 위기에 처했던 유대인 '수산나', 아버지 입타의 섣부른 서원에 희생당한 '입타의 딸', 여성의 유산상속을 요구한 '츨롯합의 다섯 딸들', 아들 이스마엘과 광야로 내쫓겨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던 '하가르', 여성의 출산 능력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불임이었던 '사라', 남성 보호자의 죽음으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서게 되었던 '룻'과 '나오미', 사랑과 안전에 대한 희망이 없었던 창세기의 과부 '타마르'까지.

이들의 저항 방식(애도, 환대, 외침과 생존, 기도, 연대와 기억, 이의 제기, 눈물, 웃음, 간계와 속임수)은 때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행위부터 목숨을 건 창의적 계략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형형색색 무지갯빛이다. 그중에서도 국가 폭력에 맞섰던 '리츠파'와 강간 폭력에 저항했던 '타마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리츠파가 매장되지 못한 이들의 곁에서 장장 6개월간 이어 간 항의 농성 형식의 애도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국가 폭력으로 슬픔 앞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 모습과 겹쳤다. 결국 다윗왕이 매장을 지시해 죽은 이의 존엄을 지키게 한 건 리츠파의 "조용하지만 공개적인 저항"(56쪽) 때문이었다. 리츠파는 죽은 이의 존엄뿐 아니라, 다윗의 존엄까지 지켜 낸 셈이다. 이야기는 기근이 회복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이를 이끌어낸 건 애도 행위를 한 리츠파였다는 게 이 책의 해석.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리츠파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녀의 애도를 보셨음을 알게 된다."(61쪽)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리츠파와 하느님의 일하심 간의 결부는 우리가 동시대에 국가 폭력을 겪고 있는 이웃의 곁에 끈질기게 남아 있어야 할 비전을 제시해 준다.

이복 오빠 암논에게 강간을 당한 타마르 이야기는 "강간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릴 뿐 아니라 (성)폭력에 맞서 저항한 한 여성에 대한 강렬한 증언이다."(99쪽) 청소년 시절, 수련회에서 타마르 이야기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타마르의 단정하지 못했을(?!) 품행을 지적하며 결연한 태도로 여학생들을 가르치던 여전도사님을 잊을 수 없다. 문제는 타마르였다. 결론은 여학생들의 단정한 품행이었고. 하지만 우리는 오늘 새롭고 정교한 해석을 다시 읽는다.

타마르는 명백히 저항했고, 이 끔찍한 사건을 '어리석은' 또는 '무분별한' 짓이라 이름 지으며 암논의 행동에 도덕적 판단을 내렸다. 비록 이 모든 저항은 헛된 노력에 그쳤지만, 타마르가 그 순간 목소리를 높여 외친 행위는 암논이 저지른 폭력의 진짜 의미를 들추어내는 일이었고 이후 그녀가 회복으로 가는 첫걸음을 떼어 내게 만든 중요한 토대가 된다.

"타마르의 저항에서 우리는 회복으로 가는 첫걸음, 즉 충격적 사건을 서술하는 언어를 찾아내어 성폭력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해석 행위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발견한다." (109쪽)

이 책장을 오랫동안 넘기지 못하고 밑줄을 그으며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2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김지은입니다>(봄알람)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포털에서 성폭력 사건 관련 기사를 그 형태도 다양하게 접하는 시국에 <김지은입니다>같이 당사자가 자기 사건을 해석하고 기록으로 남긴 책은 그 자체로 저항의 빛나는 예다. 같은 2020년에 개정판이 나온 김영서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 또한 근친 성폭력 생존자의 기록으로서 우리 시대 타마르의 분명한 예가 될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저항의 궁극적 형태다."(113쪽) 이 문장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모른다. 타마르가 어떤 회복 과정을 거쳤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현대 신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펼치며 그에게 자유의 공간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압살롬이 딸의 이름을 '타마르'라고 지었다는 데 근거해, 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해 재능을 펼쳤다거나, 더 큰 공동체와 연결돼 생명을 주는 연대를 재구축했을 것이라는 적극적인 상상으로 말이다. 어여쁜 아기 타마르를 상상하니 온종일 일터와 미디어에서 던져 대는 언어 폭력과 무감각의 블랙홀에 허우적대며 무엇이든 때려치우고 싶은 건조한 마음에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살아남아. 지금 그 자리에서. 네 트라우마를 정확히 응시해 발판으로 삼아. 살아 있어, 부디. 나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라고 속삭이는 타마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삶의 복잡성

이 책의 탁월성은 구약의 여성들이 처했던 삶의 복잡성을 학자다운 균형감으로 지적하는 데 있다. 가령 츨롯합의 딸들이 정복될 땅의 토지소유권을 상속받게 해 달라고 요구할 때, 이를 젠더 중심적으로 읽으면 자기 권리를 빼앗긴 약자의 정당한 문제 제기로 읽을 수 있지만 탈식민주의적 방식으로 가나안 주민의 입장에서 읽으면 츨롯합의 딸들은 그저 제국주의의 참여자일 뿐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읽기 방식의 긴장을 솔직히 인정하며, 삶이 우리를 많은 순간 복잡한 해석의 자리에 처하도록 만드는 현실의 긴장을 제대로 포착해 낸다. 츨롯합의 딸들이 해석 방식에 따라 '페미니스트 전사'가 될 수도, '제국주의 정책에 참여하는 식민주의자'가 될 수도 있듯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그 실체가 모호하고 복잡한 게 우리네 삶의 본질 아니던가. 해석과 현실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아비가일은 식사를 대접하며 폭력에 저항했지만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을 넘어서지 못했고, 사라는 웃음으로 불임의 상황에 저항했지만 자기 권력으로 여종 하가르를 배제했고, 유다의 며느리 타마르는 정의를 드러내기 위해 간계와 속임수를 썼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대한 젠더 중심적 읽기와 탈식민주의적 읽기 사이에서 공통의 기반을 발견할 방법이 있을까? 나는 인간 존엄이라는 해석학적 관점을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이 서로 상충되는 해석을 모아 낼 수 있는 귀중한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189쪽) 인간 존엄이라는 제3의 관점으로, 매일 내가 선 자리를 성찰하고 내 저항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며 휘청댈지언정 그 모호하고 복잡한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다(끄덕끄덕).

사라는 웃음의 방식으로 위태로운 불임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저항 행위를 보여 주지만 한편 하가르를 배제하고 혐오한 자리에도 서 있었다는 복잡성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은 이야기였다. 솔직히 요즘 사라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사라의 이야기는 자신도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또 다른 누군가를 학대할 수 있으며, 개인적 집단적 고난은 자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성찰하게 해 준다."(229쪽)

혐오와 두려움이 뒤범벅된 마음으로 내 삶의 반경에서 내쫓아 버리고 싶은 하가르 같은 사람은 늘 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고 늘 폭력의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정확히 지적한 대로 우리의 복합 지배 체제(헤테라키·Heterachy) 상황에서 난 누군가를 내쫓을 만한 프로파간다를 실행할 능력과 약간의 권력을 획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마르같이 간계와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숙제다. "사라의 저항에 관한 이야기는 자신의 안녕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는 저항이 결과적으로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우쳐"(230쪽) 주었으니, 내 저항이 누구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

살고 싶다,
울고 웃고 음식도 만들고 기도하고
소리도 지르고 간계도 써 가면서

"도덕적으로 복잡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254쪽) 속 구약 여성들은 위계 구조가 확고한 세계에서도 "그들 자신의 힘으로 주체로서 권리를 주장하면서 (중략) 각자가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 필요와 바람, 욕구를 가진 주체들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주장을"(255쪽) 해냈다. 구조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해 살아야 하며 잠재력을 실현할 희망이라고는 거의 없는 세계의 여성들이 그랬다면, 현대의 여성들은 폭력에 저항할 더 많은 수단과 방법을 창의적으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3년 전 그 드라마의 범죄자 국회의원 대사로 돌아가 본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중략) 자기 욕망에만 눈멀어서 '제 살길만 강구'하는 개 같은 새끼들." 와우(이 순간의 BGM은 '마마무'가 부른 드라마 OST 'WOW'). 이처럼 배타미를, 아니, 살아남아 오늘을 사는 여성들을 꿰뚫어 본 명대사가 또 있을까. 이 대사를 조금 비틀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입체적인 인격으로, 내 욕구와 권리를 가진 주체로, '함께 살길을 강구'하며 개같이 살아남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 아이 모두가 폭력에서 자유로워지는 세상"(284쪽)이 도래하는 그날까지. 울고 웃고 음식도 만들고 기도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가끔 간계와 속임수도 써 가며, 그렇게 폭력에 저항하며.

박혜은 / 한양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숭실대에서 '권정생의 세 장편동화에 나타난 성서적 주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죠이선교회에서 오랫동안 간사로 일했고, 남들보다 좀 늦게 사회에 나와 책과 관련한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현재는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운영팀 매니저로 일하며 책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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