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우리가 가진 성경이 '정경'으로 확립된 과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책 모음집과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신약 27권만 읽은 것 같진 않습니다. '디다케' 혹은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책도 즐겨 읽었습니다만, 이 책들은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죠. 구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9권 외에도 '마카비상·하', '지혜서', '집회서' 같은 '외경'에 속한 책들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외경'에 준하는 다양한 문헌이 있지만, 이 책들 역시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따져 보면 구약은 굳이 39권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신약도 27권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66권으로 확정돼 우리에게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무엇 때문에 성경은 66권이 된 것일까요? 

'정경화' 과정은 호기심 많은 이들에겐 탐정처럼 조사하고 싶은 사건입니다.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일화가 생각납니다. 조직신학 수업 시간에 성경 관련 주제로 발표를 하고 질문을 주고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학우가 정경화에 대한 발제를 맡았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온갖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교회는 도대체 어떤 권위로 감히 정경을 선정했나요?"
"2000여 년이 지났는데 정경 범위를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정경 목록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정경화 과정에서 더욱 영감 있는 책들이 의도적으로 제외됐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정경화에 대한 설명이 너무 인간적인 것 아닌가요?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신 것이죠?"

그 후로 토론이 이어졌지만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우 대다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찝찝한 채로 수업을 빠져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물론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 말씀인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요). 그런데 막상 성경이 성경 되기 전 상황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정경화'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역사 속 사건에 대해서는 더더욱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정경화'라는 신비롭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그렇게 선정된 66권을 정경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경화'를 거친 성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고 한다면, 크게 두 가지 정도의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경화 과정에 특정 집단의 의도가 작동했을 가능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인간의 개입을 뛰어넘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셨을 가능성입니다.

먼저 첫 번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죠.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는 다양한 집단이 있었습니다. 정경화 과정은 다양한 집단의 토론과 합의를 거쳤겠죠. 그렇다면 다양한 집단 내에서 어떤 특정 집단이 상황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집단의 의도에 따라 특정 책은 정경에 들어가고, 특정 책은 제외됐을 가능성이 있겠죠.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니, 정경화 또한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이단으로 규정 짓고 승리한 기록은 아니었을까요?

두 번째 가능성입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당시 내려오던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에서 6명씩 뽑힌 번역가 72명이 각각 골방에서 번역했는데, 후에 번역 내용을 대조해 보니 놀랍게도 모두 일치했다고 합니다. 70인역 번역에 신적 개입이 있었다면 정경화 과정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순간적인 개입으로 하나님 뜻에 꼭 맞는 66권이 선정되지 않았을까요?

<성서의 형성 - 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 / 존 바턴 지음 / 강성윤 옮김 / 비아 펴냄 / 196쪽 / 1만 2000원
<성서의 형성 - 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 / 존 바턴 지음 / 강성윤 옮김 / 비아 펴냄 / 196쪽 / 1만 2000원

안타깝게도 오늘 소개하려는 존 바턴의 <성서의 형성 - 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비아)라는 책은 위에서 말한 두 가능성을 모두 따르지 않습니다. 그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느냐고요? 일단은 그가 책을 통해 풀어 가는 이야기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경이 결정되는 순간에만 매몰돼 극단적인 고민을 하는 우리에게, 좀 더 넓고 큰 세계를 제시하고 있거든요. 성경은 애초에 각 책들이 먼저 기록됐을 것입니다. 기록된 책들이 '오경' 혹은 '사복음서'의 형태로 모였을 거고요. 그것들이 경전이 됐을 것이고 끝내 정경으로 규정됐을 겁니다. 이는 길고 긴 역사의 과정 속에서 천천히 일어난 일입니다. 존 바턴은 '정경화'에 대한 단정적이고 쉬운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기나긴 시간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되짚어 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각 단계를 간략하게 소개해 봅니다.

1) 먼저 성경이 기록된 과정을 소개합니다. 처음 듣는 분들에겐 생경한 주장입니다. "성서 책들 중 한 사람의 저자가 특정 시점에 창작한 문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중략) 성서의 많은 책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부분들을 담고 있습니다."(46~47쪽) 각 권의 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학식 있는 계층 출신인 예언자들은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언을 입말로 전했을 뿐입니다. 이후 예언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기록합니다. 존 바턴은 "예언서를 살펴보면 예언자 본인이 말했을 것 같지 않은 구절(61쪽)"이 발견된다고 덧붙입니다.

이사야서가 좋은 예입니다. 학자들은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1~39장), 제2이사야(40~55장), 제3이사야(56~60장)로 구분합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활동 시기보다 훨씬 후대에 일어난 일들이 이사야의 이름으로 기록돼 있는 겁니다. 이를 통해 존 바턴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요? 성경 각 권은 오랜 세월 형성된 복수의 자료를 수집·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책 쓰기 과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입니다.

2) 이어서 성경 각 권을 모으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과거에 '성서'는 한 권의 책 제목이 아니라 소규모 서고를 가리켰을 것(78쪽)"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성경 각 권이 하나의 책으로 통합된 과정을 추적합니다. 존 바턴은 바벨론 포로기를 기점으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 역사서'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원전 4세기경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이 '오경'으로 묶였다는 데 주목합니다.

복음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한 권이 아니라 네 권이었습니다. 1세기 말 ~ 2세기 초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른 복음서를 병행해서 읽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레네우스의 저작을 참고해 보면 150년경에는 이미 '사복음서'가 묶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 또한 어느 시점부터 모음집으로 회람되기 시작합니다. '오경', '사복음서', '바울의 편지' 같은 묶음들이 어떻게, 어떤 의도로 모아졌는지 특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 다음은 모아진 각 권의 성경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성경 대다수는 애초부터 경전으로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아가서, 잠언, 빌레몬서 같은 경우에는 지극히 평범한 책에 가깝습니다(물론 신명기, 요한복음처럼 처음부터 경전으로 기록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늦어도 2세기 말경이 되면 신·구약에 속한 책들이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경전이 되기 전에 평범했던 책들은 경전이 되고 난 뒤로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합니다. 현 상황을 지시하는 메시지, 보편 인류가 탐독해야 할 메시지, 심오한 비밀을 감춘 메시지 등으로 말입니다. 말 그대로 '경전'이 됐으니까요.

존 바턴은 흥미로운 지점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성경 각 권은 저자의 권위나 저작 연대에 따라 경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존 바턴이 보기엔 선후 과정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연대가 앞서서 경전이 된 게 아니라, 경전으로 읽히다 보니 연대를 앞서 받아들이기도 했다는 거죠. 권위 있는 사도의 기록이라 경전이 된 게 아니라, 경전으로 읽히다 보니 사도의 기록으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고요. 사복음서의 경우도 초기에는 경전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경전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경전으로 여겨졌고, 읽혀졌을 뿐입니다.

4) 마지막으로 '정경화' 단계입니다. '정경화'는 성경의 목록을 확정하고 앞으로 더 이상 같은 위상의 경전이 추가되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구약의 경우, 70인역과 히브리 성서의 목록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존 바턴은 "1세기에 확고하게 정경이 된 것은 오경뿐이었으며 다른 책들은 유동적(146쪽)"이었다고 설명합니다. 2세기가 되면 미슈나가 편찬되서 더 짧은 히브리 성서 목록을 따라갑니다. 훗날 히에로니무스는 불가타 성경을 번역하면서 히브리 경전 목록 바깥에 있는 책을 제외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외경'으로 구분 짓습니다. 이후에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히브리 경전 목록만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외경'을 거부합니다. 물론 모든 개신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루터교와 성공회는 여전히 '외경'을 즐겨 읽었습니다.

신약 정경 목록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이단자 마르시온이며 정통 교회가 이에 대응하면서 정경을 확정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존 바턴은 마르시온의 정경 목록을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거의 알아차리지 못(153쪽)"했다고 선을 긋습니다. 마르시온과 정경화 과정은 우연한 선후 관계에 불과하지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날 정경 목록과 매우 유사한 에우세비우스의 목록과 아타나시우스의 목록을 견주어 비교한 존 바턴은 '정경화'는 "어떤 책을 단순히 정경에 포함시키느냐 배제시키느냐의 문제가 아니었(155쪽)"다고 말합니다. 또한 대다수의 교회가 정경의 목록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특정 책을 경전으로 읽는 과정은 "교회가 규율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진행(158쪽)"됐다고 주장합니다.

자, 이렇게 네 단계에 걸쳐서 책이 집필되고, 모음으로 묶이고, 경전으로 읽히고, 정경이 되는 과정을 되짚는 존 바턴의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적은 분량이지만 알찬 내용들로 꽉 차 있습니다. 존 바턴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 각 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음으로 묶여져서 회람되는 과정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왜 어떤 책은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고 다른 어떤 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모두 모호합니다. 콕 집어 '이유'라고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온 교회가 경전으로 읽어 오던 성경 목록을 확정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모든 소개를 마친 이후에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갈음합니다.

"성서는 어떤 규정의 산물이 아닙니다. 식물이 자라듯, 성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나 성서가 되었습니다." (170쪽)

지금 우리에겐 성경이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성경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처의 위대한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40일 동안 머리를 싸매고 성경 66권을 기록한 후 반포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많은 사람이 이 위대한 업적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뒤돌아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10년 후에 다시 한번 모여서 싹 다시 써야겠네."라고요. 4세기 '정경화'가 이뤄지던 순간에만 몰두한다면 우리의 결론은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주도권을 쥔 어떤 세력이 특정 책은 제외하고 특정 책은 포함시킨 전횡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특별한 은총으로 가득한 신적 개입에 의해 마법처럼 정경 목록이 확정됐다고 생각하거나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나긴 시간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역사 속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자료가, 글로 기록되고, 편집되고 융합돼 책이 됐습니다. 책과 책이 모여 모음집으로 묶여 회람되고 읽혔습니다. 또한 후일에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정경화가 되기 전에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살아냈습니다. 정경화가 된 이후에도 이전처럼 읽고 기도하고 살아냈습니다. 정경 목록에서 제외된 중요한 책들도 여전히 두루 읽혔으며 예배 시에 '헤르마스의 목자'의 내용을 인용한 흔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경화'는 단순히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던 토대를 다시 확인하는 매우 지엽적인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 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가 밤낮 자고 깨면서 씨가 어떻게 되는지 도저히 알지 못하지만, 땅은 스스로 열매를 맺습니다. 싹이 나고, 이삭이 나며, 곡식이 돼 추수에 이르게 됩니다. 이에 비유하자면 '정경화'사건은 단순히 곡식이 돼 추수에 이르는 순간에 불과합니다. 존 바턴은 '정경화'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기나긴 역사 속에 펼쳐져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역사를 보여 줍니다. 인간들은 농부와 같습니다. 예언자의 말을 받아 적던 제자들도, 오경으로 묶어서 회람하고 읽기 시작한 이들도 그 행동이 훗날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존 바턴의 말처럼 "하느님의 계시는 특정 순간, 공간, 사람으로 한정될 수 없습니다."(106쪽)

기나긴 시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의 흔적을 통해, 오늘날의 성경이 형성됐습니다. "자, 이제 성경을 완성해 보자" 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눈을 떠보니 어느새 성경이 완성돼 있었습니다. 이제 앞에서 했던 질문의 답을 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무엇 때문에 66권이 된 것일까요? 모릅니다. 알 수 없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이 모여서, 기나긴 세월을 거쳐서, 땅에 뿌려진 씨가 곡식이 돼 추수를 맞이하는 것처럼, 성경은 성경이 됐습니다. 어쩌면 성경이 성경 된 과정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지극히 신적인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홍동우/ 설교도 잘하고 싶고 책도 잘 읽고 싶은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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