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이 '현대화 사업'에 들어갔지만, 30년간 상가를 일궈 온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내쫓겼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이 '현대화 사업'에 들어갔지만, 30년간 상가를 일궈 온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내쫓겼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서울 동부권 교통의 요지인 동서울터미널의 상가 출입문들이 나무판자로 굳게 봉쇄됐다. 그 앞에는 "현대중공업의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 계획안에 따라 합의 후 퇴거하였음을 안내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지난 2년간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내쫓긴 상인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6월 18일 동서울터미널 앞 광장에는 강제집행 피해 임차 상인들과 함께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기도회에는 상인들과 예수살기·강원생명평화기도회 소속 그리스도인 30명이 모였다.

상인들은 올해 2월 10일 강제집행으로 30년간 일궈 온 터전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겼다. 2009년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일환으로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오던 한진중공업은, 2019년 자금 문제로 터미널 부지를 신세계동서울PFV에 매각하면서 기존 상인들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동서울터미널임차상인비상대책위원회 고희동 위원장은 "우리는 계속해서 상생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신세계그룹은 어떠한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진중공업은 2월 10일 새벽 용역을 동원해 상가를 강제 철거했다. 현재 상가들은 나무판자로 굳게 봉쇄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진중공업은 2월 10일 새벽 용역을 동원해 상가를 강제 철거했다. 현재 상가들은 나무판자로 굳게 봉쇄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진중공업은 2018년 상인들이 재계약 시 작성한 '제소 전 화해조서'를 근거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화해조서에는 현대화 사업이 시작되면 상인들은 조건 없이 퇴거한다는 내용이 있다. 상인들은 이 조서가 불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상인들이 화해조서 작성을 위임한 변호사가 한진중공업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았고, 상인들에게 조서 내용을 알리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측에 유리하게 작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심까지 이어진 명도 소송에서 상인들은 패했다.

고희동 위원장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신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를 되새기며 계속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고 위원장은 상인들이 욕심을 부린다는 오해와 억측을 받았지만, 투쟁을 계속하니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세계가 또다시 부지를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 오는데, 누가 주인이든 누가 공사를 시작하든 동서울터미널과 광진구를 같이 만들어 온 임차 상인들이 이곳에서 장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동서울터미널임차상인비상대책위원회 고희동 위원장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신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에서 계속 투쟁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동서울터미널임차상인비상대책위원회 고희동 위원장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신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에서 계속 투쟁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환경운동가이자 강원도 홍천에서 매주 '강원생명평화기도회'를 여는 박성율 목사(작은촛불교회)는 '하나님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박 목사는 "지난주 홍천 양수 발전소 반대 농성장에 지역 유지가 방문해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일은 안하고 농성만 하면 어쩝니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모르십니까'라고 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열심히 일해야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경쟁·성공 논리를 담고 있다. 가진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은 지배 동맹을 위해 이 이야기를 악용한다"고 말했다.

"성경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도 크기나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겨자씨는 농부의 관점에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농부가 원하지 않는 종자이고, 관리자가 볼 때 성장을 방해하고 미관을 해치는 오늘날 우리들(상인들) 모습이다. 예수가 말하는 겨자씨는 뽑아 없애야 하는, 소외되고 버림받는 당시 민중의 이야기다.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동서울터미널 현장에서도 상인들은 신세계와 한진이라는 거대 기업에 비하면 가난한 사람들일 뿐이다. 어떤 이는 '30년 장사하면서 돈 좀 벌었을 것 아니냐', '협조하고 나가면 되지,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뜨거운 날씨에 이 자리에 앉아서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일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누가 주목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승리의 확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싸워 나가자."

설교를 맡은 박성율 목사(작은촛불교회)는 마가복음 4장 26~34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박 목사는 큰 나무로 자라서 새들이 깃든다는 겨자씨 비유가 성장·성공 논리가 아니라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설교를 맡은 박성율 목사(작은촛불교회)는 마가복음 4장 26~34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박 목사는 큰 나무로 자라서 새들이 깃든다는 겨자씨 비유가 성장·성공 논리가 아니라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남향린교회 김대식 집사는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을 부르며 투쟁에 힘을 실었다. 플라스틱 의자 위에 삼삼오오 앉은 참석자들은 터미널을 바쁘게 오가는 인파 속에서도 함께 기도문을 읽으며 의지를 다졌다.

"주님, 압제자들의 불법에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히 손잡아 일어서게 하소서. 힘에 의해 권리를 빼앗기거나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이웃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연대하여 생명의 길을 열어 내게 하소서. 동서울터미널 임차 상인들의 희생과 씨름이 역사의 길잡이가 되고,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워 가는 이들에게 소망의 손길이 되게 하소서."

동서울터미널임차상인문제해결을위한개신교대책위가 주최하는 기도회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동서울터미널 앞 광장에서 열린다.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강남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동서울터미널뿐만 아니라 여러 재개발 현장에서 강제집행을 당하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 재개발 붐 속에서 개발 회사 대부분은 재벌이고, 회사·지자체·국가가 그 이익을 나누고 있다. 가장 피해받는 이들은 땅에 몸을 붙이고 사는 약자들이다. 우리 사회가 재개발로 내쫓기는 사람들에게 정당하고 올바른 보상을 제공하고, 삶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집행 피해 임차 상인들과 함께하는 기도회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동서울터미널 앞 광장에서 열린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제집행 피해 임차 상인들과 함께하는 기도회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동서울터미널 앞 광장에서 열린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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