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민회는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을 위해 일하려는 뜻을 가진 여성들이 모인 초교파 단체로서 1986년에 창립되었습니다. 예수를 따라 민중과 더불어 살기 원하는 기독 여성들의 연대체로서, 교회와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과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여성주의 기독 문화 창출을 위하여 일합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기독여민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단체 소개문이다. 기독여민회는 목회자·평신도가 한데 모여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간다. 기독여민회 회원들은 5월 25일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5주기 여성주의 연합 예배에 성찬 집례, 찬양, 대화 진행 등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기독여민회가 해마다 개최하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종교개혁제'의 2018·2019년 주제는 성소수자·차별금지법이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국면에서 기독여민회의 활동은 더 도드라졌다. 기독여민회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라는 시민사회 연대체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반동성애 일색인 한국 개신교에서 '기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많은 시민단체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도 하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기독여민회, 이렇게 활동해도 괜찮을까…?

<뉴스앤조이>는 기독여민회가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어떻게 성소수자 이슈에 앞장서게 됐는지 등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1994년부터 기독여민회에서 활동한 조보성 회장과 2017년 가입한 이영분 총무를 5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 기독여민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기독여민회 사람들을 5월 27일 기독여민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회계 담당 김경선 간사, 조보성 회장, 이영분 총무.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독여민회 사람들을 5월 27일 기독여민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회계 담당 김경선 간사, 조보성 회장, 이영분 총무.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독여민회가 설립되던 1986년은 시민사회에도 여성 단체가 전무할 때였다. 기독여민회보다 먼저 결성된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내 사회 연구회 모임이 기독여민회로 분립했다.

조보성 / 1980년대만 해도 운동권 문화가 남성 중심이었어요. 여성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 했죠. 내부에서 성폭력이 발생해도 여성들은 감히 저항하거나 따지지 못하는 문화였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 자각이 일어났고, 여성들이 모여서 활동하기 시작하게 된 거죠. 소위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개척자 마인드로 단체를 만들었어요. 남성 중심 풍토에서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 보자' 하고 시작하게 됐죠.

이영분 / 기독여민회는 처음부터 여성 민중의 삶에 주목했어요. '민중'의 의미는 시대마다 조금씩 변했는데요. 초창기에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하다 보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탁아소라는 의견이 모아져 탁아소를 시작했고 이것이 나중에 어린이집이 됐어요. 이후에는 군비 감축 운동, 이주 여성 인권 운동, 한부모 여성 지원 운동, 장학회 운영 등 다양한 활동에 앞장섰지요.

조보성 회장은 한 해 한 해 버티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보성 회장은 한 해 한 해 버티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설립 35년을 맞은 기독여민회 출신 활동가들은 지금도 시민단체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기독여민회 소속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을 하던 이들이 전문성 강화를 위해 분리·독립해 나갔거나 다른 단체로 이동하기도 했다. 기독여민회가 큰 우산처럼 개인 활동가를 품고 이들이 실무적 전문성을 갖출 때까지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보성 / 본인이 하던 운동이 더 선명해지니까 여기서 가지고 나가게 된 거죠. 우리는 '파송했다'고 표현했는데, 장려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그렇게 되면 기독여민회 중심은 약해지는 게 사실이에요. 조직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힘들어지긴 했어요. 어려워질 때마다 회원들 사이에서도 단체를 정리하느냐 마느냐 논쟁이 있었죠. 하지만 '나서서 활동하지 말고 근근이 유지해 보자. 올해 못 없애면 내년에 없애자'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버티다 보니까 그 줄기에서 또 새싹이 나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영분 / 저는 지금이 기독여민회 제2의 도약기라고 생각해요. 기독여민회가 2018년 정도부터 젠더 이슈, 교회 내 성폭력, 성차별, 성소수자 이슈들을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교회에서 제대로 숨을 못 쉬던 분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한동안은 신입 회원을 모집하지 못했거든요. 모집이 안 되니까. 그런데 2018년부터는 봄·가을 두 차례 회원을 모집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회원 수가 막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고, 저희도 막 사람을 끌어올 생각은 아니지만 새로 사람이 온다는 데 큰 의미가 있고요. 지금 있는 회원들과 함께 단체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기독여민회는 2019년,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종교개혁제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독여민회는 2019년,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종교개혁제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독여민회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 100여 명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성소수자 이슈에서 조금만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공격하는 요즘 한국 개신교 상황에서, 2018·2019년 종교개혁제 주제로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을 다뤘다. 내·외부에서 반발은 없었을까.

이영분 / 과거 선배님들이 민중운동 하실 때도 '빨갱이', '반기독교 집단'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죠. 하도 욕을 먹어서 그런지 실제로 이분들이 맷집도 있어요.(웃음) 여성이 예전에는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었고, 저희는 그걸 타파하기 위해 생긴 조직이잖아요. 이전에 여성에게 가했던 것보다 더 집약된 차별과 억압이 성소수자를 향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우리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여성운동에서 조금 더 확장한 같은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조보성 / 지금은 성소수자 이야기를 해도 두렵지 않은 세상 아닌가요. 교회만 별세계를 사는 것 같아요. 게다가 성소수자든 뭐든 사람을 '받아들인다'고 표현하는 것도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혜적이잖아요. 자기들이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는 게 엄청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진보적인 양 얘기하는 사고가 저는 더 웃겨요. 성소수자를 대상화하는 운동 자체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나요. 예전에는 장애인이 강단에 올라와서 설교하는 건 말도 안 됐어요. 이혼한 여성이 당당하게 나와서 떠드는 것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시대였어요. 지금은 전혀 아니잖아요. 시대는 아주 많이 변했는데 (교회만)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고,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따라가지도 못하는 수준이예요.

이영분 / 저희는 교회·교단으로부터 받는 지원이 전무해요. 돈이 움직이는 쪽에 힘이 실리기 마련인데요.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회비로만 운영하기 때문에 외부 압력을 신경 쓸 이유도 없고, 설사 (압력이) 있다 하더라도 굴복할 수 없는 구조인 것도 있고요. 내부에서도 선배님들이 '일단 마음껏 놀아 봐라' 하고 판을 깔아 주세요. 후배들이 상상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대한 길을 열어 주시죠.

이영분 총무는 기독여민회는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예수를 따르는 길에 만나는 다양한 민중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영분 총무는 기독여민회는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예수를 따르는 길에 만나는 다양한 민중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독여민회는 올해 종교개혁제 주제를 '교회 내 성폭력'으로 정하고 관련한 소모임을 이어 오고 있다. '교회 성폭력을 없애자'는 큰 담론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는 기독여민회가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 진행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금요 기도회 - 공명'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영분 / <성폭력과 힘의 악용>(한울)이라는 책으로 5주간 독서 모임을 했어요. 얼마 전에는 김지은(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씨 변호를 맡았던 정혜선 변호사와 함께 실제 성폭력 사건의 판례 등을 배우는 시간도 가졌고요. 그동안 성폭력 대처 매뉴얼은 많이 읽어 봤지만, 원론적인 이야기가 많아 실제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성폭력 피해자를 많이 만난 변호사님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올해는 종교개혁제까지 이 주제로 계속 끌고 갈 예정이예요.

조보성 / 말이 교회 내 성폭력이지 사실 '목회자 성폭력'이 대부분이죠.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가 존재하는 한 교회 내 성폭력은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어요. 기독여민회가 사실 이 문제는 별로 다루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교회 내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아요.

이영분 / 교단에 속한 분들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지점이 여전히 있더라고요.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개인을 공격하거나, 사람을 힘들게 하니까요. 우리는 조직으로 움직일 수 있고 또 외압에서 자유로우니까 우리가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기독여민회는 '여성'으로서, '예수'를 따르는 길에서 만나는 '민중'들과 연대하겠죠.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 성폭력 등 각종 폭력의 피해자들, 여성 노동자들과 묵묵히 함께하는 게 기독여민회가 걸어갈 방향입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이 바뀌는 것일 뿐, 기독여민회는 늘 그들과 함께하는 길 위에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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