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민중신학, 퀴어신학, 페미니즘을 접했습니다. 소수자와 같이 가고, 함께하는 이야기가 와닿았어요. 소수자성을 다루는 학문이 좋았어요."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유진우 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목회자를 꿈꿨다. 사회에 모범이 되고, 예수님을 닮으려 노력하는 목사를 만난 뒤로 목회의 길을 걷고자 했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다양한 신학을 공부해 왔던 유 씨는 지난해 12월 11일 자퇴서를 제출했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유 씨는 신학교와 교회에서 차별이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교회 20여 곳에 전도사 사역 지원서를 넣었지만 '운전을 못 해서', '축구부 지도를 할 수 없어서'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 무지개신학교가 4월 23일 주최한 집담회 '자퇴는 했지만 목사는 되고 싶어'에 참석한 유 씨는 "더 이상 남아 있다가는 내가 다치겠다고 생각해 자퇴를 택했다. 학교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당했다. 십수 년간 꿈꿔 온 '목사'라는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지니까 우울감이 찾아왔다. 한 달간 잠을 못 잤다. 매일 밤만 되면 '좀만 더 버틸 걸 그랬나', '한 학기만 버티면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교회 전도사 지원에서 번번이 떨어진 유진우 씨는 지난해 12월 11일 한신대학교 대학원을 자퇴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교회 전도사 지원에서 번번이 떨어진 유진우 씨는 지난해 12월 11일 한신대학교 대학원을 자퇴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현장 목회 실연', '목회 실습'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 두 과목을 이수하려면 교회 현장 실습 과정이 필수인데,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유 씨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전도사 사역 지원서를 냈지만, 교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학습권 침해를 경험한 유 씨는 "교회는 장애인을 동등한 지위에서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신대 신대원 기숙사에는 장애인의 이동권 등 접근성을 위한 편의가 보장돼 있지 않았다. 기숙사 1층은 경사로가 있어 출입이 가능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그 이상으로는 이동할 수 없었다. 유 씨는 "똑같은 학비를 내고 다니는데 '나는 왜 안 될까' 생각했다. 기숙사는 단순 숙박 시설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배운 내용을 토론하고 학문에 대한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 기회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화상회의 플랫폼(ZOOM)을 통해 집담회 패널로 참석한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배융호 이사도 유진우 씨처럼 신학대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했다. 배 이사는 "장신대에 입학한 1987년 무렵은 '장애인이라서 입시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였지만, 적어도 신학교와 교회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진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입학 전 장애를 밝히고 문제가 없다고 해 지원했지만, 합격 후 등교 첫날 '입학은 자유지만 차후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다. 엘리베이터나 장애인 화장실 자체가 없었다. 유진우 씨처럼 졸업 후에 교회 소개도 받지 못했다. 교회 차별이 사회 차별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그 차별을 없애야겠다는 마음에서 장애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집담회 참석자들은 "한국교회에 장애인을 차별하는 뿌리 깊은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집담회 참석자들은 "한국교회에 장애인을 차별하는 뿌리 깊은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국교회에 장애인을 차별하는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배융호 이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은 장애인을 친절하게 잘 대해 준다. 그런데도 장애인은 항상 이방인이다. 메인 스트림에 들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또 "교회에서 장애인은 항상 돌봄의 대상이지 지도자나 리더, 동등한 일원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목사나 교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지원 체계가 미비한 교단, 소수자를 배제하는 교리 문제가 깊이 연관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김원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미션스쿨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소수자를 대하는 교회의 명암을 봤다고 했다. 그는 과거 한국 기독교가 장애인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국 기독교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하던 시절, 종교인들이 집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집 밖으로 나오게 했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장애인을 동등하게 대우한다기보다 다른 신자들을 강화하는 존재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패널로 참석한 김원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한국교회가 장애인을 동등하게 대우한다기보다 다른 신자들을 강화하는 존재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패널로 참석한 김원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한국교회가 장애인을 동등하게 대우한다기보다 다른 신자들을 강화하는 존재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신대학교 경기캠퍼스 신학부 학부장 이영미 교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이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의 장애 인식을 사회와 구별해야 할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한국교회는 사회의 모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교회에서도 접근성을 위해 시설을 보수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장애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교인들의 고령화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돌아봤을 때 과연 교회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있나 되묻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장애인차별금지연대 박영희 상임대표는 "교회가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하는데, 그 눈이 어떤 눈이었는지 다시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능력 위주, 생산성 위주, 비장애인 위주의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 '예수님 눈'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학교 밖으로 나온 유진우 씨는 노들장애인야학·무지개신학교·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 씨는 "끝까지 투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디든 달려가서 차별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활동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집담회 '자퇴는 했지만 목사는 되고 싶어' 전체 영상은 무지개신학교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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