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진흥 정책 중단하고 안전한 사회로!"
"핵 오염수 투기 중단하고 생명의 바다로!"
"석탄 발전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으로!"
"공공·시민 주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력·가스 민영화 말고 공공성 확보로!"
"바꾸자 에너지 정책! 만들자 기후 총선!"

3·16 에너지 전환 대회 참가자들은 "바꿔, 정치! 잘해, 기후 대응! 안돼, 핵 발전! 멈춰, 에너지 민영화!"라는 구호를 외쳤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13주기를 맞아, 전국 기후·환경·에너지·노동 관련 12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6대 에너지 체제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3·16 에너지 전환 대회'를 열었다. 

봄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토요일 오후, 대회에는 청년들과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아 활기가 넘쳤다. 에너지 체제 전환 방향을 주제로 한 행사장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참가자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구호를 외쳤다.

13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강진이 발생해 핵 발전소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16만 400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2019년 기준 후쿠시마 내 갑상샘암으로 의심되거나 진단받은 어린이가 231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후쿠시마 사고는 핵 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국제사회에 불러일으켰다.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이 출범돼, 매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 발전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탈핵 정책을 촉구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이날 대회에서는 '기후 정치, 핵 오염수, 탈핵, 탈석탄, 재생에너지, 에너지 공공성' 등 6대 에너지 전환 방향을 제시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날 대회에서는 '기후 정치, 핵 오염수, 탈핵, 탈석탄, 재생에너지, 에너지 공공성' 등 6대 에너지 전환 방향을 제시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번 13주기 대회에서는 특별히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요구하는 '6대 의제'가 발표됐다. 6대 의제는 '기후 정치, 핵 오염수, 탈핵, 탈석탄, 재생에너지, 에너지 공공성'으로, 이 주제를 가지고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이현숙 공동대표,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최경숙 상황실장, 독일 분트 환경보전연맹 바이에른 지부 리차드 메르그너 회장, 전지구의벗 독일 후버트 바이거 회장, 녹색정의당 허승규 후보, 청년노동당 김건수 대표 등이 발언했다.

최근 정부는 원자력·연료 전지 등의 무탄소 에너지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충당하는 'CF 100' 캠페인을 발표했다. 'CF 100'은 기업의 사용 전력 전부를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고 선언한 'RE 100'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재생에너지는 아니지만 탄소 배출도 없는 에너지를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핵 진흥 정책이다. 

3·16에너지전환대회준비위원회 이영경 집행위원장은 "남들은 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핵 발전 영업 사원 1호 대통령을 두고 있다. 핵 진흥 정책 뒤에는 10만 년을 짊어질 핵 폐기물과 더 많은 송전탑 건설로 고통받을 주민이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위기, 기업들의 이윤만 챙기는 정부의 민영화, 줄어든 연구비로 기후 재난을 연구할 수 없는 연구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오늘은 핵 발전의 위험만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닌, 윤석열 정부의 핵 폭주를 막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해 나가겠다고 말하는 자리이다. 핵 발전소 지역 주민들과 석탄·가스 노동자들, 태양과 바람 에너지를 원하는 시민들, 먹거리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날"이라며 시민들을 독려했다.

이영경 집행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핵 폭주를 막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해 나가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이승용 지부장(사진 왼쪽)과 기후위기비상행동 권우현 공동운영위원장. 뉴스앤조이 엄태빈

기후위기비상행동 권우현 공동운영위원장도 기후 정치가 실종되고 있는 정치권을 비판했다. 그는 "어느 때보다 많은 정당이 만들어지고 합쳐지고 갈라지는 이 혼란한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기후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욕망과 혐오를 부추겨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 위기 대응력을 상실케 하는 각종 대규모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우리의 위기감은 기후 정치를 만드는 씨앗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 퇴행할수록 우리는 강하게 연대하고, 연대를 바탕으로 기후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이승용 지부장은 전기·가스 산업을 민영화하려는 정부를 비판하고 에너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과 값이 참 많이 올랐다. 정부의 주장처럼 사과는 비싸면 안 먹고 망고 사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전기·가스 요금이 오르면 참고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공재라고 불린다. 가스 요금이 폭등할 때 대기업들은 가스 직도입 제도로 영업이익이 3배 증가했다.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일부 대기업에 편중되고 있다. 정부는 가스 산업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가스 에너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개신교인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행사를 함께 준비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임준형 사무국장도 그리스도인들이 '기후 총선'을 위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기후 정책은 단순하다. '핵 발전이면 다 된다'는 식인데, 그걸로 기후 위기 대응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의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국만 역진하는 에너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핵 발전은 발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세대에게 핵 쓰레기를 안겨 주는 등 우리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에너지 전환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봄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토요일 오후, 대회에는 청년들과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아 활기가 넘쳤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봄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토요일 오후, 대회에는 청년들과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아 활기가 넘쳤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아래는 후쿠시마 핵 사고 13주년 에너지 전환 대회 공동 선언문.

이제 우리 여기서, 전환의 정치를 시작하자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 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죽고 병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을 잃어버렸고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어떤 동물들은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폐허가 된 후쿠시마 핵 발전소 부지의 깊은 지하에는 녹아 버린, 뜨거운 핵연료가 그대로 있다. 그것을 식히느라 쏟아부은 오염수가 작년 8월부터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후쿠시마의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있고,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이 재난은 13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다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역시 핵 발전의 위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핵 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에서 지진이 계속될 때마다, 분별 없는 누군가가 새로운 핵 발전소를 짓겠다고 엄포를 놓을 때마다 우리는 몸서리를 치며 그 위험을 느낀다. 10년 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 내던 밀양 주민들에게 행해진 극악한 국가 폭력은 핵 발전이 안전의 문제를 넘어 얼마나 부정의하고 반평화적인 에너지인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 거대한 핵 발전소로부터 생산된 전기가 대도시의 밤을 밝힐 때, 핵 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의 주민들은 방사능 피폭과 공동체 파괴로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또한, 폭염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폭우로 도로와 집이 잠기는 것을 보며, 거대한 산불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동물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세계가 이대로 지속할 수 없음을 느낀다. 기후 위기가 재난과 참사로 나타나고 있다는 참담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참혹한 현실조차 이제 막 시작된 기후 위기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2도 상승한 지난해를 살아 낸 우리가 보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도대체 어떠한가.

신공항, 케이블카, 그린벨트 해제, 신도시 개발과 같은 온갖 파괴적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화석 연료 퇴출과 플라스틱 규제에 대해 강력한 전망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자는 없다. 핵 발전소를 폐쇄하기는커녕 핵 산업을 진흥시키자는 황당하고 무책임한 말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한편 시장을 활성화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자는 다디단 말 뒤에는, 국가의 전력 공급을 차츰 민간 기업에 위탁하려는 민영화의 불순한 의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주요 정당들은 고작 환경 운동가 출신 후보 한두 명을 장식품처럼 앉혀 놓고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고 허언을 일삼고 있다. 우리 정치는, 유례없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핵 위험을 끝내고 기후 위기를 최소화할 진짜 기후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 후쿠시마 13주년과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정당에 요구한다. 첫째, 빠른 시일 내에 모든 핵 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퇴출할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라. 핵 진흥으로 폭주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기후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고사하고 기후 위기 대응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공공과 시민이 함께 만들고 통제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이로써 에너지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지역이나 계층 간의 격차가 없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는 자본의 이윤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모든 이들의 삶을 지키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셋째, 그 과정에서 어떤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거나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시작하라. 일부 지역의 주민이나 특정 당사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이것이 결국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며 기후 정치의 실천이다.

우리는 또 이번 총선을 넘어, 기후 정치를 위한 연대를 지속하고 확장할 것임을 선언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핵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해양 생물들의 바다, 그리고 나무와 동물들의 숲이 오염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핵폐기물 더미와 처리 비용으로 고통받는 미래를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전환의 대상인 발전소와 공장과 건설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우리 자신이며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정치를 바꿀 것이다. 핵 발전과 에너지 민영화를 멈추고 정의로운 전환을 해낼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 낼 것이다.

2024년 3월 16일
후쿠시마 핵 사고 13년: 에너지전환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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