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제6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를 앞두고 지역 보수 교계의 방해와 지자체의 차별 행정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는 부평구기독교연합회(부기연)가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막기 위해 수도권 지하철 1호선 부평역 북광장(쉼터공원)을 선점했고, 부평구청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이를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조직위는 9월 9일 부평역 북광장에서 축제를 열기로 하고, 한 달 전 관할 구청인 부평구청에 장소 사용 신청을 냈다. 그러나 부평구청은 이미 다른 단체가 사용 승인을 받았다며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조직위는 부평구청에 9월 부평역 북광장 사용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 결과, '부평 풍물 대축제'가 열리는 9월 셋째·넷째 주를 제외한 모든 주말(토·일)마다 부기연이 '인천 성시화 운동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퀴어 문화 축제를 막기 위해 장소를 미리 선점한 것이다.

이런 행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2015년부터 매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는데, 올해에는 CTS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지 못했다. 서울시는 심의 끝에 같은 날 장소 사용을 신청한 CTS문화재단에 광장 사용을 허가했다.

부평구기독교연합회를 비롯한 인천 지역 보수 교계는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반대해 왔다. 2019년 부평역 북광장에서 열린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장에 걸린 부평구기독교연합회의 반대 현수막.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부평구기독교연합회를 비롯한 인천 지역 보수 교계는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반대해 왔다. 2019년 부평역 북광장에서 열린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장에 걸린 부평구기독교연합회의 반대 현수막.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부기연 측은 퀴어 문화 축제를 막기 위해 무더기 광장 사용 신청을 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총무 임일수 목사(신광교회)는 "이번 행사(인천 성시화 운동 캠페인)는 퀴어 문화 축제를 막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광장 사용 신청을 해 놓으면 퀴어 축제가 부평으로 오지 않고, 동인천역이나 다른 공원에서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퀴어 문화 축제가 부평역 일대에서 열린다고 해) 뒤통수를 맞았다"면서 "퀴어 문화 축제가 다른 곳에서 열리든 말든 상관없다. 다만 부평역 북광장은 우리가 먼저 신청했으니 우리가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부기연은 9월 한 달간 광장에서 '문화 행사'를 열겠다고 예고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기연 회장 구본흥 목사(성산교회)는 8월 17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연합회는 나름대로 가을에 문화 축제를 열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해 왔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의미도 있지만 자체적인 행사다. 아직 실무진이나 행사 순서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다. 우리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인천기독교총연합회의 행사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퀴어 문화 축제는 예민한 청소년들이 보기에 건전하지 않고 부정적인 부분이 많다. 그들 나름대로 조용히 (축제를) 하면 상관없는데,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축제를 열고 거리 행진을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동성애를 알리고 홍보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거리 행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청 기간 시작도 전에 사용 승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광장을
배타적 공간으로 만들어"

부평구청이 부기연에 장소 사용을 승인해 주는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났다. 부평역광장 사용 관련 규칙에 따르면, '광장 사용 신고서'는 광장 사용일의 60일 전부터 7일 전까지 구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부기연은 65일 전인 7월 6일 부평구청에 사용 신청을 냈고, 부평구청은 61일 전인 7월 10일 이를 승인했다. 신청 기간이 되기도 전에, 지자체가 지역 보수 교계에 먼저 장소 사용을 승인해 준 셈이다.

이를 두고 조직위는 부평구청이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부기연에 편파적으로 특혜를 줬다고 비판했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 조서울 조직위원장은 8월 17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런 식이면 우리도 한 달 내내 광장 사용을 신청해도 상관없다는 것 아닌가. 부평구청이 어떻게든 퀴어 문화 축제를 부평구에서 열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실제 그런 제보도 받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러한 차별 행정 때문에라도 더더욱 부평에서 축제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부평역 북광장은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개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접근성이 높은 곳이다. 인근에서 혐오 세력의 집회가 열리더라도 경찰과 협의를 통해 안전하게 축제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8월 23일 부평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평구기독교연합회의 장소 사용 승인 취소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8월 23일 부평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평구기독교연합회의 장소 사용 승인 취소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조직위는 8월 23일 부평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기연의 광장 사용 승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랑희 집행위원은 "이는 단순한 절차 위반의 문제가 아니다. 부기연과 부평구청은 모두의 광장이어야 할 공간,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광장을 배타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부평구청은 성소수자를 광장과 지역에서 내쫓으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부평구청은 부평역 북광장에서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이듬해 2020년 5월, 광장 사용을 '허가제'로 운영하는 규칙을 제정한 바 있다. 이 규칙은 당초 '구민의 건전한 문화 활동을 위해 쓰인다',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 등을 해할 우려가 있거나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 제한할 수 있다'는 문구를 포함했지만,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의 반발로 해당 내용을 제외한 채 제정됐다.

랑희 집행위원은 "이 규칙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본질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집회 신고는 30일 전부터 할 수 있는데, 광장 사용 신청은 60일 전부터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서로 어긋난다. 퀴어 문화 축제를 열기 위해서는 집회 신고를 해야 하는데, 누군가 고의적으로 장소를 선점하는 이런 상황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부평구청 관계자는 8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부기연이) 60일 이전에 서류를 가져왔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 가져오세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검토해 보니 특별히 반려할 사유가 없으니 승인한 것이다.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할 의도가 있는 행사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물어볼 수도 없다. 신고가 들어온 대로 기계적으로 처리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평구청이 퀴어 문화 축제를 막으려 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그는 "9월에 부평구에서 열리는 행사가 많다 보니 소통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행사 당일 주최 측(부기연)이 안전 대책을 준수하는지 점검하고,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과 유기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는 2018년부터 열리고 있다. 그동안 지자체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장소 사용을 불허하기도 했다. 2018년 인천시 동구청은 주최 측이 안전요원 300명과 주차장 100면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인천 퀴어 문화 축제의 동인천역 북광장 사용을 반려했다. 작년에는 인천광역시대공원관리사업소가 '심한 소음'을 이유로 축제 장소인 중앙공원 사용을 불허했다.

2019년 부평역 북광장에서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이듬해 부평구청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역전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고 광장 사용을 '허가제'로 바꿨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19년 부평역 북광장에서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이듬해 부평구청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역전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고 광장 사용을 '허가제'로 바꿨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올해 인천 퀴어 문화 축제는 9월 9일 '차별을 넘어 퀴어해'를 주제로 부평역 인근에 위치한 부평시장로터리 일대에서 열린다. 이날 40여 개 단체 부스와 무대 행사, 퍼레이드가 열릴 예정이다. 9월 8일에는 인천 인권 영화제와 인천 여성 영화제가 공동으로 '퀴어 영화 상영회'를 진행한다. 지난 6월 인천시로부터 퀴어 영화를 배제하라는 사전 검열을 겪은 인천 여성 영화제와 연대하는 의미다. 조직위는 "부평구청은 혐오 세력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보장하라. 넓은 바다를 품고 있는 해양 도시 인천의 모습처럼, 우리는 차별을 넘어 퀴어해라는 바다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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