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올 것이 왔다' 싶었다. 김지만 전도사(32)는 목사 고시 면접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면접관 두 명과 면접자 여섯 명이 마주 본 상태였다. 첫 번째 면접자는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았다. 어쩌면 '그 질문'을 안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는 바로 깨졌다. 면접관들은 두 번째 면접자부터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묻기 시작했다. 면접자들은 정확하고도 확신 있게 '반대한다'고 답했고, 면접관들은 흡족해하는 듯했다. 다섯 번째 순서였던 김지만 전도사는 차례가 다가올수록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돼지가 된 느낌이었다. 사형 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가 된 것도 같았다.

'뭐라고 말할까….' 목사 고시를 보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한 고민인데, 면접장 안에 있는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냥 눈 딱 감고 반대한다고 말할까, 좀 우회할 수 있는 답변은 없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뛰쳐나갈까…. 고민하는 사이 그의 차례가 왔다. 면접관들은 처음에는 '어떤 목회를 하고 싶으냐' 같은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 김지만 전도사는 교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되어 주고 싶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게 된다고 답했다. 정말 목사가 된다면 그런 목회를 하고 싶었다. 목사가 될 수 있다면.

김지만 전도사는 목사 고시 면접 자리에서 '그 질문'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지만 전도사는 목사 고시 면접 자리에서 '그 질문'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지만 전도사는 6월 29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 교단 목사 고시를 치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에게, 목사 고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김지만 전도사에게는 목사 고시를 보기로 결정하는 것부터가 큰 산이었다. 그는 5년 전 장신대 채플에서 벌어진 '무지개 행동'으로 징계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겨 징계는 무효가 되고 학교로부터 손해배상금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회의는 깊게 남아 있다.

목사 고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응시한 것이다. 징계 후 겪은 일들로 교수·학생·동문들에게 크게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반동성애에 미쳐 버린 한국교회에 제정신을 가진 목사가 하나라도 더 있기를 바란 것이다. 목사는커녕 복학도 하기 싫었던 김지만 전도사였지만, 힘들었던 시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어떻게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징계를 받은 사람 중 가장 먼저 복학해 나머지 신대원 과정 다섯 학기를 마쳤다. 지난해 졸업 후 올해 목사 고시까지 치르게 됐다.

김지만 전도사를 7월 7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목사 고시 면접에서 '그 질문'을 받기까지 어떤 고민의 터널을 지나 왔는지 들어 봤다. 이번 목사 고시 합격자는 다음 달 발표될 예정이다. 그전에 언론과 인터뷰하고 기사가 나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지만 전도사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꼭 면접 때문만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어디서든 떨어질 거예요." 그런데 혹시나 이렇게 인터뷰까지 나갔는데 합격한다면?! "엇 그러면 기사 내려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하."

공부한다고 결과가 바뀔까

- 지난번 인터뷰 때, 목사 고시를 보는 건 징계 이후 도움을 준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셨는데요. 전도사님 스스로는 목사가 되는 것에 별로 기대가 없었나 보네요.

무지개 행동 때문에 징계를 받고 실망을 많이 했어요. 징계 과정에서 교수님들이랑 되게 얽히고설켰잖아요. 내가 이런 사람들한테 뭘 배웠던 건지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분들도 교수이자 목사잖아요.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저렇게 해야 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 이런 고민이 많았어요. '저럴 바에는 목사를 하지 않는 게 낫겠다', '저런 목사가 되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목회 쪽은 단념했죠.

징계를 받은 2018년에 전도사로 있던 교회에서 나온 후로 아예 사역을 접으려고 했어요. 학교도 그만둘 생각이었고. 그런데 지금 사역하는 교회 목사님께서 저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직접 찾아오셔서 사역 자리를 주셨어요. 변호사님들도 학교와 소송하면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요. 선배 목회자분들이나 같이 학교 다녔던 동기들도 응원을 많이 해 줬어요. 그래서 첫 번째 목표가 복학이 됐고, 복학 후에는 졸업, 졸업 후에는 목사 고시가 된 거죠.

사실 목사 고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같이 징계받은 세찬이가 목사 고시 면접까지 다 통과한 후에도 결국 목사가 되지 못했잖아요. 그런 선례도 있으니까 '어차피 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이라는 이유밖에 남지 않더라고요.

- 목회자가 되는 것에 큰 기대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목사 고시까지 치른다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을 것 같습니다. 목사 고시를 준비하면서 어떠셨나요.

목사 고시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그래도 친구들한테 자료집도 받아 보고 책도 펼쳐 보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도저히 머릿속에 들어오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이걸 한 자 더 본다고 해서 결과가 바뀔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요. 결국 교단은 동성애 질문을 통해 합격·불합격을 결정할 텐데, 제가 성경 한 구절 더 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어요.

주변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냐고 물어봐 주시는 분들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좀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바뀌는 상황이 아니니까. 전체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인데, 저한테만 책임을 지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스트레스가 컸죠.

예장통합에 반동성애 광풍이 닥친 후 장신대 내 사상 검증은 도를 넘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예장통합에 반동성애 광풍이 닥친 후 장신대 내 사상 검증은 도를 넘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목사 고시 당일 면접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쓰셨는데요. 당시 분위기가 어땠나요?

처음에 앉았을 때는 속으로 많이 바랐죠. '그 질문'만은 하지 않기를. 첫 번째 사람한테 그 질문이 없길래, 잘하면 넘어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근데 두 번째 사람부터 그 질문이 나왔죠. 그때 저는 눈빛을 느꼈어요. 면접관들이 두 번째 사람한테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저를 한 번 딱 보고 하시더라고요. '준비하고 있어라'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제가 다섯 번째였는데 앞에 분들은 모두 "동성애는 절대로 반대한다", "성경에 죄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 성경을 따르겠다", "총회 결의에 반대하지 않는다.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더라고요. 목회 비전 같은 것을 물었을 때는 뭐 문서 선교 한다는 분도 있었고 장애인 선교 한다는 분도 있었는데, 결국 마지막 질문은 동성애였고 다들 반대한다고 한 거죠. 이런 분들이 목사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참 희망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제 차례가 됐을 때도 처음부터 바로 동성애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어떤 목회의 꿈을 갖고 있냐고 물어봐서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얘기했어요. 교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되어 주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정말 교회가 필요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데, 교회가 그런 사람들에게 공동체가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게 된다고. 근데 면접관들은 이런 게 궁금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요.

- 예상은 하셨겠지만 실제로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그런 표현 있잖아요. 도축장에 끌려간 돼지, 사형선고받은 죄인마냥…. 제 차례가 오기까지 그 면접장 안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원하는 답을 해 줘야 하는 게 맞나. 그냥 내 생각을 말해야 할까' 계속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요. 막상 딱 질문을 받았을 때도 한 3초 정도 정적이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도저히 저를 속이는 말은 못 하겠더라고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그 말이 도저히 나오지가 않았어요. 최대한 돌려 말했어요. 마음에도 없는 얘기도 몇 개 했죠. "동성애가 죄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 줄 안다", "앞으로 좀 더 공부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아직 답을 내리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요. 근데 면접관들이 듣고 싶었던 답은 그냥 '반대한다'였어요. 성소수자를 교회 안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는 그런 답을 원하더라고요.

무지개 행동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말을 제가 먼저 꺼냈어요. 면접관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전날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고민했다는 것 치고는 질문이나 이런 것들이 그냥 그대로더라고요. 저한테 일장 설교를 하기도 했고요.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했는지 아느냐"고 물으셔서 "탐욕과 폭력적인 상황 때문 아닐까요"라고 답하니까, "아니다. 동성애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원래 면접 시간이 한 사람당 3~4분 정도인데, 저는 10분도 넘게 본 것 같아요. 결국 "총회 결의를 따르지 않으면 여기서는 절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말로 끝났죠.

-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얘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명확하게 전도사님의 생각을 말하지도 못하셨는데요. 그랬던 이유가 있을까요?

어쨌든 그 자리까지 갔다는 건 합격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무지개 행동으로 징계받은 사람 중에 저 말고도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 있어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어요. '이 정도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도 있었어요. 제가 거기서 세게 말하면 싸우는 자리밖에 안 되고,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설득될 분들도 아니고…. 좀 온건하게 말하면 부드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은 어떠신가요?

사실 면접 때문에 떨어진다고 생각은 안 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서, 떨어지려면 어디서든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이제 와서는. 이제는 확실히 안 된다는 걸 확인받은 느낌이어서 홀가분하기도 하고요. 다만,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죠.

면접은 6명이 20분씩 봤다. 김지만 전도사 혼자 10분 이상을 면접관과 대화해야 했다. 사진 제공 김지만 
면접은 6명이 20분씩 봤다. 김지만 전도사 혼자 10분 이상을 면접관과 대화해야 했다. 사진 제공 김지만 
잃어버린 10년

- 장신대에 진학할 때는 어떠셨나요? 어떤 꿈을 가지고 신대원까지 가셨는지.

재수를 했는데 당시 기도를 열심히 해서….(웃음) 모교회 전도사님이 멋있어 보였던 것도 있고요.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들어와 보니 내가 모르는 하나님이 있었던 거죠. 교회에서는 그냥 나에게 복 주시기 위해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알게 된 하나님은 이 시대에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 고난받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었어요. 그때부터 진지해졌죠. 그러다 보니 좋은 목회자가 돼야겠다는 꿈도 생긴 거고요.

그런데 그런 길을 가자니 학교와 여러 가지로 부딪히더라고요. 무지개 행동뿐 아니라 그전부터 여러 가지로 그랬어요. 도시 빈민 선교회 암하아레츠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 조금 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니까 학교와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학부 때 '불장난'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열었는데 그때도 갈등이 있었죠. 그래서 신대원 입학할 때도 갈 수 있냐 없냐 말이 좀 있었어요. 제가 서총명을 따라서 암하아레츠에 들어가게 됐는데, 서총명을 만난 게 죄라면 죄겠네요.(웃음)

신대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당연히 목사가 되는 게 목표였죠. 저한테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어요. 신대원 입학하고 총명이랑 했던 말이 "우리 신대원에서는 참자. 사고 치지 말고 3년만 조용히 있자. 3년 조용히 못 하겠냐"였어요. 그런데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무지개 행동이 있었던 거죠. 그게 이렇게 큰 사건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저희가 진짜 마음먹고 여기 판을 뒤집으려고 했다가 당한 일이면 이해하겠는데, 그냥 되게 어설프게 했던 행동으로 징계까지 당하니까 힘들었죠.

- 지난번 인터뷰 때 무지개 행동을 할 때만 해도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몰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셨는데요. 성소수자 문제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본격적으로 관심 갖게 된 건 사실 징계 이후예요. 왜냐하면 저도 모르게 휩쓸린 사건이니까 답을 찾아야겠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 사람들한테도 교회가 있어야지, 죄인이라고 쫓아내는 게 말이 돼?' 수준으로 러프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터닝 포인트는 징계였어요. 그때부터 주변에 본인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려 주면서 다가오시는 분이 많이 생겼고, 또 같이 지내다 보니까 그들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 교단이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신 때는 언제인가요?

무지개 행동 이전부터 많이 느끼고 있었죠. 종북에서 반동성애로 프레임이 전환되는 그 과도기에 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유지하려는 모습을 봤을 때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죠. 옛날에는 종북이었고, 지금은 동성애고, 앞으로는 또 다른 것을 만들어 낼 거잖아요. 이런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교회가 나아질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저는 이런 경험도 했어요. 학교에서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농성을 했는데, 저와 무지개 행동을 했던 친구들도 참여했거든요. 그런데 선배 목사님들이 저희더러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동성애가 '묻는다'고. 저희가 함께하면 명성교회 세습 반대 진영 전체가 '친동성애'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후로는 못 나갔어요. 도마뱀이 꼬리 자르는 것처럼 잘려 나간 거죠.

교단이 동성애자를 거부하는 법을 만들고 장신대가 신학교 최초로 입학 때 반동성애 서약을 받는 상황도 저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너희가 뭣도 모르고 나선 것 때문에 운동이 더 힘들어졌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있었죠. 그러니까 저희 스스로 계속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잘못한 건가, 우리가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게 잘못인 건가, 어느 정도 양보할 거 양보하고 받을 거 받고 그러는 게 맞는 건가….'

근데 저희가 원인을 제공했을 수는 있지만, 그런 법을 만든 건 아니잖아요. 제가 이번에 페이스북 게시 글 말미에도 썼는데,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런 질문으로 목사가 되고 안 되는 게 결정되는 이 상황 자체가 잘못된 거잖아요. 그래서 저 자신을 탓하게 될 때마다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 아니야' 하고 있어요.

지난 5년의 시간은 결코 김지만 전도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지난 5년의 시간은 결코 김지만 전도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모르겠어요. 제가 장신대 학부에 2011년 입학해서 작년 2월에 신대원 졸업했으니, 딱 10년이 걸렸어요. 10년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10년 동안 배운 게 목사 되는 거였잖아요. 집에도 책이 신학 책밖에 없어요. 근데 목사가 될 수 없으니…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좀 지친 것 같아요. 목회 생각은 별로 없는데, 아깝긴 해요. 어쨌든 10년 동안 목사가 되려고 버텨 왔던 건데 이번 한 번의 목사 고시를 통해서 이렇게 결정하는 게 맞나…. 내년에는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일말의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근데 한편으로는 면접에서 당했던 그 손이 떨리는 경험, 그 경험과 또 마주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면접관이랑 대화하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니까 거기까지는 그래도 견뎠거든요. 그런데 제 다음 분이 했던 말에 정신이 휙 나가더라고요. 동성애 질문에 제가 했던 말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식으로 답하는 거예요. 저런 생각은 너무 잘못됐다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느냐고. 이때다 싶었는지 저를 철저하게 짓밟는 대답을 하시더라고요. 또 면접관들은 거기에 되게 만족해하고.

안 그래도 얻어 터져서 그로기 상태에 있는데 마지막 카운터를 날리니까 못 견디더라고요. 그분이 마지막 면접자여서 다행이지, 만약 그 뒤로 몇 명이 더 있었으면 저는 정말 기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무 무섭더라고요. 목사가 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한다는 게. 제가 목사가 되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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