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톱10'이라는 음악 방송을 아시나요? 아마 1985년생인 제 또래들은 이 프로그램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이 지독히 그리울 겁니다. '언제 우리가 마흔을 바라보게 됐나' 하고 말이죠. 저는 종종 유튜브를 통해 그 시절 노래를 찾아 듣는데요. 한번은 "요즘 아이돌 노래는 멜로디도 엉망이고 가사도 이상해. 역시 90년대가 가요계의 황금기였어"라는 베스트 댓글에 슬며시 '좋아요'를 누른 적이 있다는 비밀을 누설해 봅니다. 아저씨 냄새가 풀풀 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저는 전라북도 익산 출신입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지금도 '이리'로 알고 계실 겁니다. 신학교 입학 후 지금까지 서울·인천 등지에서 살아왔는데요. 어린 시절에는 그야말로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인천에 있는 친척 집 가는 길이 어찌 그렇게 설레던지. 어쩌다 서울까지 넘어갔다 오는 날에는 그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울', '인천'이라는 단어는 제게 여전히 설렘을 주는 단어입니다. 익산을 떠난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 말이죠.

<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 해방 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 정창조 외 지음 / 비마이너 기획 / 오월의봄 펴냄 / 344쪽 / 1만 8000원
<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 해방 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 정창조 외 지음 / 비마이너 기획 / 오월의봄 펴냄 / 344쪽 / 1만 8000원

이런 정서를 보유한 1985년생 지방 출신인 제게 <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 해방 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오월의봄)라는 책이 찾아왔습니다. 온몸이 성한 저로서는 왠지 낯선 주제를 담고 있을 것만 같았던 이 책은, 놀랍게도 제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회상하는 데 줄곧 동원하던 키워드를 강력하게 조정해 줬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제게 1990년대는 더 이상 서태지, 김원준, H.O.T., 핑클만의 시대가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만 기억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위와 같은 추억들도 물론 소중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화려한 그 시대의 이면에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열사가 투쟁해 온 역사가 있었음을. 피눈물로 얼룩진 '장애 해방 투쟁'의 시간을 지나며 숱한 장애인들이 목숨을 잃어 갔음을. 그리고 제가 정녕 기독교인이라면, 이제는 그런 역사를 더 중요한 기억으로 새겨야 함을.

"시신을 탈취해 갔어. (중략) 내장도 다 꺼냈어. 껍데기만 던져 놓은 거야. 그 새끼들 정말 인간 아니었어. 그게 무슨 문민정부야, 그게." (103쪽)

이 책은 서울과 인천이라는 개발 도시를 은근 동경하던 제 촌스러운 습관에도 경종을 울렸습니다. 특별히 제가 결혼 이후 수년 째 살아가고 있는 인천 땅이 "영종, 청라, 송도"(113쪽)로 대표되는 화려한 도시로 발돋움하기까지, 수많은 장애인들이 생존 투쟁에 내몰려야 했던 곳임을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제가 예비군 훈련 때 소총이 무겁다고 투덜거리며 걸어갔던 집 근처 '아암도' 해안 도로가, 차별과 멸시가 만연한 세상에서 장애인들이 노점을 열어 먹고살려고 발버둥 쳤던 현장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98쪽). 제가 그동안 자랑스레 출근길을 지켜봤던 아내의 직장이, 아암도 노점상 '이덕인 열사'가 강제 철거와 맞서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경찰이 그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영안실 콘크리트 벽을 "오함마"(202쪽)로 뚫고 들어왔다는 바로 그 "길병원"(101쪽)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빼앗긴 열사의 시신이 몇 시간 뒤 "내장이 꺼내지고 살갗이 꿰매진 텅 빈 몸뚱이"(110쪽)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주리를 틀던 조선 시대가 아니라 이른바 '문민정부' 시절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정말이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제가 사는 연수동에서 '송도'의 높은 건물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솔직히 '저기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군요. 앞으로는 그런 마음보다 '이덕인 열사'가 많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2022년 1월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시위 현장. 뉴스앤조이 최승현
2022년 1월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시위 현장.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 책을 쓴 일곱 명의 저자들은, 장애 해방 열사 여덟 분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지녀 온 예전의 추억과 서울·인천에 대한 시공간적 관점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눈물이 없기로 소문난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수도 없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서요. 저는 지금 감정을 배설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제 신앙적 세계관에 일어난 균열을 고백하는 중입니다. 돌아보니, 그동안 제게 장애인이란 '불쌍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마주치는 그들에게 "호기심 섞인 연민"(11쪽)을 느끼는 스스로를 '마음이 따뜻한 기독교인'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들을 "이상한 동물 보듯"(228쪽) 했는지도 모르지요. '사후 지옥'을 신학적으로 고민하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이미 지옥을 맛보는 이들이 장애인들일 수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그들은 장애인의 삶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불쌍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박기연의 죽음은 세상의 수많은 불운들 중 하나에 불과했고, 사유하지 않아도 되는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안타까워했지만 분노하지 않았다." (259쪽)

저는 며칠 뒤 '담임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제 옆에 개척교회 운영에 관한 책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그 책보다 <유언을 만난 세계>를 더 먼저 읽게 하고 계시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너는 도대체 어떤 교회를 꿈꾸고 있느냐", "너에게 신앙은, 목회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그러면서 따지기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궁지에 몰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네가 과연 '구원'을 논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제 짧은 식견입니다만, 그동안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시혜와 동정을 베푸는 일에 만족해 왔습니다. 그게 '예수적 삶'이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시혜와 동정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는 일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설정해 왔습니다. 부와 권력을 얻고 난 이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언뜻 별문제 없어 보이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이 '나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약한 사람을 돕고 있으니 '내가 정말 섬기는 건 결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제가 너무 과한 생각을 하는 걸까요? 부디 제 판단이 틀렸길 바랍니다.

"정태수는 장애인과 관련해 제기되는 교육, 의료, 직업 재활 등의 모든 문제는 결국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정리했던 사람이다." (204쪽)

동업자 여러분, 목회자 여러분. 이 책을 함께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가 교인들에게 말하는 '구원'과 '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교인을 많이 모아서 재정을 넉넉히 불리고, 그 능력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가령 성탄절 선물 상자를 전달하는 일도 물론 아름답습니만, "장애인을 생산성이 낮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6쪽)에 균열을 내자고 모인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내자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 같은 목사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게 정말 우리의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장애인들은 우리가 단순히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생산성의 잣대"(120쪽)를 들이밀며 장애인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도록 종용하는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베푸는 시혜와 동정은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착시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결국에는 '돈'이라는 진실을 은폐한다는 말입니다.

너나없이 힘들다는 시대입니다. 저도 힘이 듭니다. 우울합니다. 개척교회 목사로 '취임'하는 게 솔직히 찝찝합니다. 이렇게 출셋길에서 멀어지나 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본에 착취당할 자격조차 없는"(159쪽)이라는 말입니다. 이보다 장애인의 삶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말은 없을 겁니다. 힘든 사람보다 더 힘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우리 시야에서 지우는 한, 우리의 문제 역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 간에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힘들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가장 극단에 내몰린 이들을 외면하는 한, 이 어둠의 터널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남대문시장까정 도착하기만 하믄 되는 줄 알았더만, 인도가 이래 사람 다니기 힘든 길인지는 여태 몰랐다. '인도'란 말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내는 사람이 아이가?" (38쪽)

동업자 여러분, 목회자 여러분. "지금 내 현실을 사랑할 수가 없다. 좌절밖에는 없다"(249쪽)고 낙담하는 이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말을 그만 동원합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이들에게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판정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우리의 철학적 빈곤함과 무정함을 부끄럽게 여깁시다. 지구에서 탈출해 천당으로 이사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이곳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선포합시다. 교인들이 싫어해도 그렇게 합시다. 그러다가 다 함께 패배를 맛보십시다. 그 패배만이, 그 죽음만이 우리를 부활로 이끌 것입니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이 귀한 책을 많은 분이 보실까 고민하던 차에 핸드폰 벨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제 친구의 자식이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말이지요. 이 갑작스런 통화는 <유언을 만난 세계>가 어떤 책인지 확실히 알려 줬습니다. 장애인은 낯설고도 먼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다고. 그들을 빼놓고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특별히 목회를 할 거라면, 기독교인으로 살 거라면,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고.

이현우/ 새하늘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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