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강제집행 현장에서는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수칙도 예외가 된다. 최소한의 통보 기준만 지키면 용역 수백 명을 동원한 물리적인 집행 과정도 명목상 '합법'인 탓이다. 국내 코로나 집단감염이 시작된 2020년 2월, 존치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 온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노량진역 1번 출구 앞 노점상에서 또 한 번의 강제집행을 겪었다. 같은 해 3월과 5월, 재개발을 앞둔 강북 미아3구역에서도 이주를 거부하는 세입자들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을지로 노가리골목 '을지OB베어'도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5번의 강제집행을 겪었다. 삶의 터전을 언제든 빼앗길 처지에 놓인 철거민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보다 강제 철거가 훨씬 더 힘겹다.

기독 청년, 신학생들이 폭력적인 철거 시도가 있었던 서울 곳곳의 강제집행 현장을 탐방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8월 31일, '2021 기독 청년 반빈곤 연대 활동(빈활)'을 진행했다. 올해로 3회를 맞은 빈활에는 20명이 참여했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해 소수 인원으로 팀을 나눈 참석자들은 을지OB베어·미아3구역·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이날 서울 전역에는 하루 종일 굵은 비가 쏟아졌다.

'백년 가게'로 지정된 을지OB베어는 다섯 번의 강제집행을 겪었다. 이들은 을지로·청계천 일대 재개발과 건물주의 일방적인 퇴거 통보에 맞서 가게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백년 가게'로 지정된 을지OB베어는 다섯 번의 강제집행을 겪었다. 이들은 을지로·청계천 일대 재개발과 건물주의 일방적인 퇴거 통보에 맞서 가게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백년 가게'로 지정된 곳도 철거 위기

첫 일정은 을지로3가역 뒤편 '노가리골목'에 있는 을지OB베어. '재건축상가대책위원회'라고 적힌 오래된 봉고차가 좁은 가게 입구를 막고 있었다. 오래된 노상 포차의 노란 조명 아래에서 참석자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대한민국 최초의 생맥주집'이라고 적힌 집기들과 40주년을 맞아 손님들이 적어 둔 문구들이 가득했다. 을지OB베어 사장 부부 아들이자 3대 사장 최성혁 씨가 마른안주를 내왔다.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는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와 맥주가 놓였다.

분위기가 뭉근해졌다. 현장 활동가는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생맥주와 구운 노가리를 팔기 시작한 노포다. 입소문을 타고 주변에 비슷한 가게들이 들어섰고, 사람들이 이곳을 노가리골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철거 위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저녁이면 만석이 될 만큼 '핫'하다"고 말했다. 을지OB베어는 중소기업벤처부가 지정한 '백년 가게'임에도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그때마다 시민들이 달려와 철거를 막았다.

최성혁 씨는 참석자들에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배우는 게 참 많다. 40년 동안 할아버지가 욕심 없이 뚝심 있게 일궈 온 가게다. 손님 중 60~70%가 단골이다. 계속해서 장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 더 자주 오겠다", "100년, 200년 있어 달라"고 화답했다.

강북구청 앞에는 강제집행을 겪은 미아3구역 철거민들이 투쟁 중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북구청 앞에는 강제집행을 겪은 미아3구역 철거민들이 투쟁 중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40분 거리의 강북구청으로 향했다. 강북구청 앞에는 미아3구역 철거민들 농성장이 있다. 2017년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미아동 439 일대 세입자들은 이주 대책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미아3구역의 경우 이주 대책을 적용받을 수 있는 '법적 세입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비 구역 지정 공람 공고일 이전, 즉 2007년 1월부터 거주해야 했다. 하지만 임대료 폭등과 재개발로 여기저기 주거지를 옮겨 다녔던 이들이 한 곳에서 10년 이상 살 수 있었을까. 저렴한 주택지를 찾아 다니며 월세 살이를 해 오던 주민들은 '세입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대다수 주민들은 2019년부터 주민 강제집행을 겪고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철거를 마친 미아3구역에는 1037 세대 규모의 유명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전국철거민연합 김수연 국장은 참석자들에게 "(강제 철거)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법이 그런데 어떡하냐'고 생각한 철거민이 많았다. 하지만 개발 지구에 사는 사람은 다 '예비 철거민'이다. 철거되기 전에 나가는 사람, 철거될 것 같아서 떠나는 사람, 이주를 하지 못해 남아 있는 사람도 철거민이라고 볼 수 있다. 철거민은 '떼쓰는 사람'이 아니다. '떼쓰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 방문지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투쟁 현장으로 이동했다. 구 시장 상인 80여 명은 2년 넘게 노량진 육교에서 숙식하며 지내고 있다. 2017년 수협은 현대화 사업 명목으로 구 시장을 철거하고 지금의 신 시장을 건립했다. 신 시장은 기존보다 월세가 두 배 비싸지만 면적은 더 좁다. 입주를 거부한 상인은 구 시장과 신 시장 사이의 자투리땅이라도 달라며 투쟁하고 있다.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80여 명은 가게 존치를 요구하며 2년째 육교 위에서 숙식 중이다. 이들에게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보다 폭력적인 강제집행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80여 명은 가게 존치를 요구하며 2년째 육교 위에서 숙식 중이다. 이들에게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보다 폭력적인 강제집행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육교 안은 고소한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상인들은 "잘 왔다", "밥은 먹었느냐"며 바삭하게 구운 찹쌀떡을 간식으로 내줬다. 참석자들은 상인들의 투쟁기를 담은 영화 <시장으로 가는 길>을 보며 김은석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김 감독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 쉬운 현장이 많다. 노량진수산시장은 한참 이슈가 됐다가 관심이 사라진 상황인데 찾아 줘서 고맙다. 돌아가서도 동료들에게 많이 알려 달라"고 말했다.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는 반주가 곁들여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상인들은 "철거민이라고 해서 불행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렇게 삼겹살과 소주도 먹지 않느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석자들도 "비 오는 날에 먹기에 이만한 운치가 없다. 진짜 맛집이다. 앞으로 자주 들르겠다"고 말했다.

철거민에게 무관심한 사회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한 도시 공간에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가 쫓겨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무자비한 강제집행을 온몸으로 막아서지만 역부족이다.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을질한다', '떼쓴다'는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자가를 소유한 사람들이 절반도 되지 않는 나라인데도 철거민을 향한 시선은 늘상 배타적이다.

빈활 참가자들은 '쫓겨남의 현장'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 참가자는 개발 지역에 사는 자신도 언제든지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신대 이정규 씨는 "현장에 와 보니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절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자는 민중신학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이런 현장에 한 번도 안 와 봤다는 게 창피하고 죄송했다. 약한 사람들 편에 서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감신대 최하은 씨는 "연대 활동을 하기 전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을 경험한 후에는, 미래에 나도 이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연대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직접 이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투쟁하는 이들이 나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을 탐방하며 집이 없으면 국민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보상도 제대로 해 주지 않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교회가 나서서 철거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강제집행 현장과 연대하는 성명서를 낼 계획이다. 이종건 사무국장은 "많은 기독 청년이 사회 선교에 대한 목마름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쫓겨남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빈활을 통해 강제집행 현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빈활 참석자들은 각 현장을 탐방하며 철거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연대 메시지는 각 현장에 걸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빈활 참석자들은 각 현장을 탐방하며 철거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연대 메시지는 각 현장에 걸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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