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산업선교회의 오랜 전통이었던 '신학생 노동 훈련’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1983년부터 2004년까지 신학생이 직접 노동 현장에 찾아가 일정 기간 일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고, 노동 선교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사정 때문에 2004년을 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영등포산업선교회는 2021년 1월 다시 '신학생 노동 훈련'을 재개했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생 두 명을 선발해 △노동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 파악 △함께 일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 △교회의 역할 등을 들여다봤습니다.

노동 훈련은 6개월간 이어졌고, 7월 16일 훈련 종료를 알리는 보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두 신학생은 그동안 느낀 점을 정리해 글로 발표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영등포산업선교회와 두 학생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차례로 게재합니다. 아래 글은 김주역 학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주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새번역, 창세기 4장 9절)

1987년 5월 18일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한 박종철 열사 추모 미사에서 나온 위 성경 구절은 40여 년 전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변함없이 던지는 말씀이다. 이것이 과거에는 군부에 희생당한 학생을 위한 음성이었다면 오늘날은 코로나19와 저성장 등으로 고통받는 20~30대 청년들을 위한 음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박종철의 죽음에 침묵하는 대중, 지시대로 했을 뿐인 군경이 아벨을 모른다 했다면, 지금은 복지 담당자, 정치인, 종교인, 특히 교회와 지도자들이 우리는 소외된 청년을 모른다고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주님께서 과거와 지금의 카인들에게 죄에서 돌이킬 시간과 기회를 주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청년들에게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살펴보게 됐다.

아무래도 선거철은 정책이 언론·여론의 바람을 가장 활발하게 타는 시기다. 선거철 주요 뉴스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를 알 수 있다. 그 정점에는 '기본 소득'이 있다. 일정량의 소득을 모두에게 일괄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기본 소득의 가장 큰 장점은 복지 사각지대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코로나 1차 국가 재난 지원금(보편 지급) 때 최종 수령률은 98.6%로, 국민 1.4%는 재난 지원금을 수령하지 못했다. 고위 공무원의 자발적 반납 운동도 감안해야겠지만, 가정별로 묶어 지급하는 지원금의 특성상 실제로 수령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1~2% 수준의 미수령률은 여타 선별적 복지 정책과 달리 기본 소득의 보편적인 효과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이처럼 과거와는 다르게 복지 정책이 선별에서 보편으로 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복지 사각지대를 걷어 내기 위해서다. 나는 노동 훈련을 통해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노동 선교 훈련을 마치고 소회를 발표하고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주역 학생. 사진 제공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 선교 훈련을 마치고 소회를 발표하고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주역 학생. 사진 제공 영등포산업선교회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도시빈민선교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알게 됐다. '현장 심방 -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금씩 배우게 됐다. 노동 선교 훈련 4개월간 유리 진열장을 만드는 가구 공장에 취업해 일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세상과 약간 떨어진 신학대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은혜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무디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노동 훈련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2021년 2월 1일부터 시작해 6월 말일로 끝낸 노동 선교 훈련을 하는 동안 중소기업에 단기 취업을 한 20대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중소기업은 20대, 군필 청년들만 단기 고용하는 곳이었다. 이 회사에 오는 청년들은 방학 기간에는 대학생·휴학생들이 주를 이뤘고, 3~6월에는 고졸생·자퇴생들이 많았다. 하루 6시간, 3~6개월이라는 애매한 조건으로 일하고자 하는 20대는 거의 없었다. 사장이 이런 배짱 있는 조건을 내걸 수 있었던 이유는 코로나19로 20대 청년들이 구할 수 있는 임시 일자리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이 편의점·식당·카페 등 자영업장에 취업하지 못하게 되자, 내가 일하는 근무지의 고용인은 고용 과정에서 나름의 면접과 선별을 거칠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내가 일한 곳은 창고형 공장으로 된 가구 회사였다. 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은 가구 부품의 파손 방지를 위해 유리와 프레임을 발포 스티로폼 등으로 포장한 후 박스에 담아 택배 트럭에 실었다. 부품들은 무겁고 날카로웠다. 덕분에 손과 팔에 생채기가 자주 났고, 장갑은 일주일이면 해어졌다. 2월에는 추위로, 5월 말에는 더위로 고생했다. 창고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중이었기에 특별한 냉난방은 불가능했다. 유리 진열장을 다뤘기 때문에 곳곳에 깨진 유리 조각이 많아 토시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토시 역시 거의 2주 간격으로 새로 사야 했기 때문에 그 비용도 적잖이 부담됐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해야 했지만, 나중에는 더워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는 방역보다는, 박스를 뜯거나 차량이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들이치는 먼지를 막기 위해 썼다. 집에 가면 목이 심하게 칼칼하고 답답해 물을 많이 마셨다.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20대였고, 20대 후반은 한 명도 없었다. 정규직과 사장들은 모두 30대로 전체적인 연령은 일반 회사에 비해 많이 낮았다. 사회 초년생인 20대의 어수룩함을 노린 것인지 근로계약서부터 노동환경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많았다. 우선 시급에 주휴 수당과 기타 수당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명목상 시급이 9300원이어도 계산을 해 보면 사실상 최저 시급과 다를 바 없었다. 쉬는 시간의 경우 취업 공지에 올라온 '1시간 휴식'을 제대로 보장받은 날이 4개월간 단 하루도 없었다. 그래도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나이대가 비슷한 청년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친해진 후에는 금요일마다 퇴근 후 같이 밥을 먹으며 공장 이야기와 삶을 나눴다.

같이 일한 아르바이트생은 군 휴학 1명, 자퇴 1명, 전문대졸 1명, 고졸 2명, 편입 준비 1명이었다.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에게 쉬는 날 어떻게 보내는지 물었는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는 일을 제외하고는 혼자 취미 생활을 즐긴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년간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 대학교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연히 청년 간 정보격차로 이어졌다.

경기도는 만 24세 청년들에게 매 분기 25만 원씩 지역 화폐로 총 1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 기본 소득'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은 경기도 내 버스 광고와 소셜미디어·뉴스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데, 이 정책을 모르고 놓칠 뻔한 동료가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에 소급 적용을 받아 100만 원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었는데, 그는 아무도 자신에게 이런 정책이 있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자퇴생이어서 또래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료는 경기도로부터 청년 취업 장려금을 200만 원을 받았는데, 기존에 받아 오던 청년 기본 소득과 1분기 정도 기간이 겹쳐 중복 수혜를 받았다. 공무원은 200만 원을 반납하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걸겠다고 말했고 그는 결국 200만 원을 반납했다. 원래대로라면 200만 원이 아닌 청년 기본 소득을 반납하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환입하는 경우의 수를 변호사와 상담해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할 수 없었다.

일하는 4개월간 책을 손에서 놓고, 뉴스를 보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게임에만 몰두했다. 한 친구는 나를 보며 공장에서 하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힘겨운 노동 탓에 내 시야가 너무 좁아진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고 했다. 일을 그만둔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내 생각이 얼마나 굳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일을 하며 손목 인대를 비롯해 많은 곳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피해는 노동으로 인해 생각이 단순화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짧게 할 수는 있겠지만,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겠다고 느꼈다. 짧은 기간에도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코로나19와 더불어 20대를 맞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국가·공동체·멘토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자신이 속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 사회생활을 출발하는 선이 다르고 정보와 기회의 격차도 극심하다는 데 있다. 청년 지원 정책이 미비하거나, 정보력이 낮은 청년들은 갈수록 계층화·고착화된다. 이런 환경 속에 있는 청년 노동자에게 '인적 공동체'는 필수 요소가 아닌 '사치'에 가깝다. 코로나로 최소한의 인간관계가 파괴됐고, 정보 공유마저 끊겼기 때문이다.

정책 기관의 부정확한 분석이 정보격차를 늘린다. 이들은 청년들이 주로 활동하는 소셜미디어·공동체·단체 등에서 정책을 홍보한다. 이렇게 하면 분명 적은 노력으로도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와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청년들도 존재하며, 이들이야말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고졸 여행비 1000만 원 지원' 정책의 경우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학교 인프라를 누리지 못한 청년들에게 대학 생활에 준하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렇듯 청년 노동자의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복지, 찾아가는 지원, 비주류 청년인 고졸·자퇴생·지방 청년들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경우 청년 공동체의 지원이 잘돼 있다. 멘토 집사님이 삼성맨 출신이어서 청년들의 자소서 첨삭 등을 도와주고, 시청 공공 근로나 기업 인턴십 기회 등이 있을 때도 이를 공동체 청년들에게 공지했다. 예배 후 광고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등으로 미출석자들에게도 꼼꼼하게 공지해 청년들이 소외되는 경우를 최소화했다.

노동 훈련을 하는 동안 교회에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왔다. 평일 저녁 ZOOM을 활용한 리더 교육에 참여하고 예배 준비를 해야 했는데,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청년들이 분담해 맡아 주기도 했다. 교회에서 이런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8시간씩 일하는 공장 노동자로서 교회에서 봉사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교회가 청년 노동자를 충분히 품고 이해하며 배려한다면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문제에 대한 공감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준비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머리를 맞댄다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교회에서 좋은 정보들을 나눈다면 청년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시민단체와 정책 연구 기관, 국가기관은 청년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나눠 정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워크넷(국가), 잡아바(경기도), 알바몬(사기업)등 청년들이 접근 가능한 복지·정책·취업 단체에서 지원하고 있는 청년 정책은 주거(GH·LH), 취업(취업 장려금, 면접비 지원) 분야 정도인데, 사실상 화이트칼라 직종에 맞춰진 정책이다. 내가 함께 일한 동료들의 경우 단기 취업이어서 취업 장려금은 받기 어렵고 사실상 보편 복지의 혜택만 받을 수 있었다. 보편 정책의 확대 혹은 세분화된 맞춤 정책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목숨과 이 아이의 목숨이 이렇게 얽혀 있습니다." (새번역, 창세기 44장 30절a)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갔지만, 사태가 종식된다면 다시 사람들은 교회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교회에 다니지 않았거나, 다시 나갈 마음이 없는 청년들과는 무관하다. 교회 공동체는 그런 청년들에게 반드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가 같이 일하던 청년들은 모두 한 번도 교회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복지 정책이 한 번도 그들을 찾지 않은 것처럼 그들 역시 교회와 복지 시스템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와 교회는 청년을 찾아야 한다. 요셉을 잃은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만큼은 잃을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교회는 더 이상 청년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회와 국가 역시 위급한 계층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며 청년 문제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김주역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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