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피해자가 의존하게 한 상태에서 저지르는 성폭력을 말한다. 범행 시 폭행 등 물리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루밍 성폭력은 형법상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합의하에 성적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망을 피해 갔다.
 
인천새소망교회 김 아무개 목사도 이와 같은 이유로 사건이 공론화한 후 지금까지 줄곧 범행을 부인했다.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이며 성폭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피해자들이 관계 후에도 애정과 존경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와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거나 인터넷에 게시한 사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인천지방법원 형사13부(호성호 재판장)는 7월 9일 선고 공판에서,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11개 중 2개를 뺀 나머지 전부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목사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도록 한 후, 이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어도 범죄가 성립된다는 판결이다. 재판부가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를 인정한 셈이다. 호성호 재판장은 이날 선고 요지를 약 20분간 읽었다.

"피해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교회 신도로서 피고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취지의 가르침을 받아 왔고, 피고인을 의존하며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피고인 역시 피해자들과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를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은 담임목사 아들인 동시에 교회 전도사로서 학생부 큰 존경과 신뢰를 받아 왔다. 피해자들에게 상당한 신앙적·정신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은 종교 지도자로서 종교적 교리를 설파하는 한편, 일상생활에서도 피해자들에게 다양한 정서적·물질적 도움을 제공했고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더욱 피고인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됐다. 이에 더해 각 피해자에게 다른 신도들보다 특별히 더 아낀다고 인식하게 함으로써 일반적인 목회자와 신도의 관계를 넘어 특별하게 생각하게 한 측면이 있다.
 
각 행위 당시 피해자 연령과 상황, 피고인의 영향력, 피해자들이 인식한 피고인들의 개인적인 특별한 관계 등에 의해, 피해자들은 행위나 피해 내용에 대해 즉시 인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이런 경위로 피해자들의 자유의사, 자기 결정권이 제압되었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도 확인된다. 피해자들이 추행 등 성적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것으로써, 상당한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재판부가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를 인정한 셈이다. 사진은 2020년 공판 당시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는 인천새소망교회 김 목사. 뉴스앤조이 최승현
재판부가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를 인정한 셈이다. 사진은 2020년 공판 당시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는 인천새소망교회 김 목사. 뉴스앤조이 여운송

공소장에 적시된 범행 기간은 2010~2013년이다.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법원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공소사실과 관련해 당시 전후의 상황, 피해 내용, 범행 당시 대화 내용, 당시 느꼈던 감정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바 있다. 진술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모순되거나 불합리적이라고 보이는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다. 진술 중 일부 엇갈리는 부분이 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이는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일부 사실이 아니더라도 공소사실과 관련한 핵심 부분에 있어서는 일관과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김 목사 측은 재판 과정에서, 정혜민 목사(성교육상담센터 숨)가 피해자를 꼬드겨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그루밍 성폭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자신을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2018년 5월 피해자 A가 정 목사와 함께 <뉴스앤조이>와 인터뷰한 것을 기점으로 사건을 공론화하고, 기자회견을 연 후 김 목사를 고소했다.
 
법원은 이것을 무고의 정황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애정과 신뢰감을 갖고 있던 김 목사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로 고소하거나 무고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고소하기 전에 이루어진 언론 인터뷰 등 공론화 과정에서 피고인의 행위를 '그루밍 성범죄'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범행 후 제3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후적인 평가이고, 이러한 평가 내용이 피해자들이 진술하는 범죄 행위의 성격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후의 어떤 평가가 피해자들이 진술의 신빙성 등에 어떠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루밍 성폭력' 명명 여부를 떠나, 김 목사의 행동은 '범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교회 담임목사의 아들이자 행위 당시 피해자 학생들에 대한 사역을 감당한 전도사로서, 나이 어린 피해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돕는 책무를 수행하는 대신에 범행에 사용했고,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함으로써 피해자들이 위력에 의한 간음에 추행에 해당한다는 것을 당시에 인지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피고인은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라고 주장했고, 지금까지 이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범행과 이후 보이는 태도에 의해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고, 피해 배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검찰 구형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차미경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 사건이 공론화할 당시만 해도 그루밍 성폭력에 관한 유죄판결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검찰 구형과 똑같은 양형이 선고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재판부가 공소사실 범행 이외에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다른 범행이 더 많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범행은 (이번 판결처럼) 무관용 원칙이 맞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