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퀴어링(Queering)'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실천이자, 다수에 의해 납작한 개념으로 환원된 무언가를 다시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여성·성소수자를 차별·혐오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성서에도 퀴어링이 필요하다. 5월 번역·출간된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은 신학자 17명이 여성·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제해 온 성서 본문을 퀴어신학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6년에 걸쳐 QBC를 번역·감수한 한신대학교 이영미 교수와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가 출간 기념 '밀리와 함께 읽는 모다들엉 퀴어신학'을 열었다. QBC를 함께 강독하며 페미니즘, 퀴어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이론을 통해 고대에 형성된 성서 본문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한다. 7월 7일 화상회의 플랫폼(ZOOM)을 통해 열린 첫 번째 강좌는 QBC 전체 내용을 개괄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이영미 교수는 "번역자로서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를 받아 꼭 출판됐으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졌다. 독자들이 새로운 관점과 깨달음을 얻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 강독 시간을 마련했다. 책을 읽을 때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를 짚어 보고, 참석자들의 기발한 의견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QBC는 성서를 한 구절씩 분석하는 전통적인 주석 방식과는 달리, 성서의 이름으로 혐오·차별을 당하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문제와 연관성이 있는 구절에 초점을 맞춰 해설한다. 이 교수는 주석이란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제시한 제도적 가치를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라는 기준을 가지고 면밀히 살피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는 '무지개 항아리(rainbow pot)'와 같은 성서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줌 화면 갈무리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는 '무지개 항아리(rainbow pot)'와 같은 성서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줌 화면 갈무리

이 교수는 성서를 관통하는 주제가 '다양성'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에 차별금지법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성서에도 특정 주제에 단일하고 단정적인 목소리만 있지 않다고 했다. "성서 안에는 비슷한 의견부터 상반되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이 있다. 다양한 방식이 담긴 '무지개 항아리(rainbow pot)'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받아들일지는 해석 주체인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실질적으로 성서가 어떠하다고 말할 때는 자신의 해석적 관점에 따라 원성서의 내용을 근거로 삼는 것이지, 성서가 그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성서를 근거로 가족·혼인 제도를 지지하고,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영미 교수는 교회가 성서를 기반으로 섹슈얼리티와 인간의 생활 전반을 규정하게 된 이유는, 특정한 논의를 '하나님 말씀'이라는 기반 위에 올려놓기 위해 본문을 취사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위 '선 성서 후 제도'가 아니라, 인간이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권위를 가진 성서 본문을 선택해 근거로 삼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성서적 가치'와 '제도적 가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서적 가치'에는 '어느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 등이 있다. 반면 '제도적 가치'는 시대·장소·공동체에 따라 성서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마련한 다양한 방식을 말한다. 이 교수는 해석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할 때, 다양한 제도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의 경험, 삶의 지향이라고 했다.

이영미 교수와 QBC를 함께 읽는 '모다들엉 퀴어신학'은 전체 8강 일정으로 진행된다. 줌 화면 갈무리
이영미 교수와 QBC를 함께 읽는 '모다들엉 퀴어신학'은 전체 8강 일정으로 진행된다. 줌 화면 갈무리

이영미 교수는 창세기 2장 24절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된다"를 예로 들며, 해당 구절의 성서적 가치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된 사랑의 삶을 이루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성애 중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혼인 제도만이 하나님이 세운 창조질서라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명제가 본문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인지, 교리적 입장을 인증하기 위해 본문에 의미를 부여한 자의적 해석인지 검토해야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으면, 개별 주체로 살아가는 이들이 각각이 아니라 하나 됨을 이루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고대에 특정 소수 그룹이 만든 윤리 규범을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시대 성적 가치관의 유일한 규범으로 삼아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가부장 구조의 지도자라는 특정 그룹이 얘기했던 가치는 성서 안에 있지만 오늘날 비판해야 할 '제도적 가치'다. 성서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단순히 문자주의적 권위에 호소해 현대인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성서조차도 인간 작업의 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치를 위해서는 성서조차도 비판받고 재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다들엉 퀴어신학'은 전체 8강 일정으로 8월 25일까지 진행된다. 창세기·레위기·사사기·룻기·에스더·아가서·예레미아를 함께 읽는 대장정이다. 다음 강좌는 7월 14일 온라인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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