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서울 퀴어 문화 축제의 하이라이트이자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퀴어 퍼레이드가 2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재개됐다. 6월 27일 열린 제22회 서울 퀴어 퍼레이드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50여 명이 현장 참여하고 이를 온라인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퍼레이드 마지막 순서를 맡은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형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성소수자 인권에 힘을 보탰다.

이번 서울 퀴어 퍼레이드는 방역 수칙을 준수해 소규모로 개최했다. 지난해 퀴어 퍼레이드는 조직위원 6명이 각각 역대 퍼레이드 장소를 행진하고 이를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올해에는 성소수자 인권 단체 등에서 사전 신청한 참석자 36명이 거리에 모였다. 6개 팀을 구성한 이들은 조직위 안전 요원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5분 간격을 두고 차도를 가로질러 행진했다. 숭례문광장에서부터 을지로입구역을 지나 청계천 한빛광장에 도착하는 2.2km 거리 행진이었다.

30도가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숭례문광장에 모여들었다. 오후 5시 30분이 되자 무지개 깃발을 내건 전동 카트가 음악을 틀고 선두에서 출발했고, 참석자들은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파트너와 손을 맞잡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은 '내년에는 차별금지법과 함께 퍼레이드를', 'LOVE WINS'와 같은 현수막·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6월 27일 서울 숭례문광장 일대에서 제22회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6월 27일 서울 숭례문광장 일대에서 제22회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예년처럼 많은 성소수자·지지자와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2년 만에 재개한 도심 퍼레이드에 감회가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7·2018년 퀴어 퍼레이드에서 선발 트럭으로 행진을 이끌었던 '페미당당'의 우지안 활동가는 "코로나19로 규모가 줄어들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참여할 수 있어서 희망적이다. 다 같이 모여 소리 지르고 춤추면서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대로변을 당당하게 걸었던 경험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꼭 다시 대로 위에서 함께 만나 춤췄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2020년 퀴어 문화 축제에서 온라인 부스를 열었던 청년 성소수자 인권 단체 '다움'의 한성진 활동가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지난 1년은 코로나19로 공동체와 연결이 끊어지고 고립되면서, 극심한 차별을 겪은 시기였다. 모든 연결이 단절된 코로나 시대에 적은 인원이라도 모여 성소수자를 가시화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목소리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앞으로 변화할 시대를 위해 다 같이 힘내자"고 말했다. 퍼레이드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된 온라인 영상에도 220여 명이 참여했다. "얼른 코로나가 끝나 같이 거리를 걷고 싶다", "내년에는 꼭 광장에서 만나자"는 등 댓글이 달렸다.

이날 퍼레이드에는 개신교인도 참석했다. 무지개 연꽃 배지와 묵주를 착용한 민김종훈(자캐오) 사제는 사회적소수자와함께하는성공회교회들 소속 길찾는교회 깃발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퍼레이드에 나온 한 참가자는 "나는 50대 게이 크리스천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셨다. 하나님 뜻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가장 크게 알릴 수 있는 날이다. 작은 규모로나마 참석할 수 있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이들을 지지하는 개신교 교회들도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이날 퍼레이드는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방해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이들을 지지하는 개신교 교회들도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이날 퍼레이드는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방해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번 퍼레이드는 반동성애 진영의 방해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맞불 집회도 열리지 않았고, 길에 드러눕거나 퍼레이드 행렬에 난입해 훼방을 놓는 사람도 없었다. 반동성애 세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퀴어 퍼레이드는 충돌·대치 상황 없이 시종일관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이뤄졌다. 퍼레이드 행렬을 마주한 시민들은 퍼레이드 참가자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손뼉을 치기도 했다.

행진을 마치고 청계천 한빛광장으로 들어온 퍼레이드 참석자들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한채윤 이사와 대담을 나눴다. 한 이사는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게 참 오랜만이다. 퍼레이드를 시작할 때 울컥했다. 2년 반 만에 도심에서 퍼레이드가 열리는 동안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슬펐고, 그럼에도 기운을 받아서 열심히 했다. 이 울컥한 기분을 다른 분들과 더 많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인권 센터 '조각보' 리나 활동가는 "단촐한 규모이지만 같이 행진하는 다른 사람들과도 계속해서 응원과 연대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여느 퍼레이드 못지않은 감동이 있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떠나보냈는데, 떠나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하고 그들의 세상을 우리 안에 잘 간직하면서 다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단 재판 속개를 요구하며 광화문 감리회본부에서 천막 농성 중인 이동환 목사도 마지막 순서에 함께했다. 이 목사와 홀릭 조직위원장은 갑작스런 폭우 속에서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5분간 대형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홀릭 조직위원장은 "이동환 목사는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했다. 개신교 목사 중에서도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또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닌 지지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 목사를 알리는 것도 우리 사회에 일상적으로 만연한 차별을 드러내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며 퍼포먼스 취지를 설명했다.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퀴어 퍼레이드 마지막 순서로 서울광장에서 대형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퀴어 퍼레이드 마지막 순서로 서울광장에서 대형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동환 목사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고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계속해서 축복할 것"이라고 한 발언이 생각났다고 했다. 이 목사는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인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와서 깃발을 들고 흔드는 것은, 그들의 인권을 지지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이자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라며 참석 이유를 전했다.

이어 "퀴어 문화 축제에 보수 개신교인들이 와서 방해하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퀴어 당사자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개신교 목사로서 이렇게 퍼레이드의 마지막 순서로 나서게 된 것은 상처받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사과하고 화해하는 의미이자, 앞으로 기독교가 혐오를 벗어나 평등하고 안전한 교회와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매년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해 온 개신교 단체들은 온라인에서 행사를 이어 간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교회와 개신교 단체들의 모임인 무지개예수는 '퀴어한 그리스도인을 축복하는 기도'를 7월 3일과 10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목회자·상담가가 신청자에게 사연을 듣고 일대일 축복기도를 나누는 형식이다. 참여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온라인 부스 프로그램 '퀴어 부스 ON' 또는 무지개예수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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