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퀴어 난동 쇼', '음란·변태 축제'.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퀴어 문화 축제'를 의도적으로 비하해 부른다. 축제의 기원이나 의도, 내용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극히 일부 장면만 편집해 확대·재생산하며 퀴어 문화 축제 전부가 음란하고 선정적이라고 주장한다.

2000년에 시작한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늘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반대에 부딪힌 건 아니다. 올해로 22회를 맞는 꽤 유서 깊은 행사지만, 개신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14년 신촌에서 열린 서울 퀴어 퍼레이드 때 난데없이 개신교인들이 나타나 행진을 막기 시작했다. 인근에 '세월호 추모 집회'를 열겠다고 집회 신고를 낸 사람들이 나중에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길에 드러눕는 방식으로 행진을 방해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반대 집회는 해마다 계속됐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리기 시작했는데, 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규모 반대 집회가 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대 집회가 거세질수록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해마다 최다 방문 인원 및 참가 부스 개수를 갱신하며 규모를 더해 갔다.

지난해 21회 퀴어 문화 축제는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다.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을 직접 마주할 일이 없었다는 점. 행사 생중계 영상에 가끔 혐오 댓글이 달리기도 했지만, 눈앞에서 혐오 세력과 맞닥뜨리는 것보다야 나았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양선우 위원장이 22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안내 책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양선우 위원장이 22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안내 책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 양선우 위원장(활동명 홀릭)을 6월 22일 서울 신촌에 있는 조직위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고립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를 온라인으로 준비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오해가 큰 서울 퀴어 문화 축제를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가 개신교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만나고 싶었다.

차별의 시대를 불태워라

올해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슬로건은 '차별의 시대를 불태워라'다. 그동안 '움직여_우리, 손과 손을 맞잡고 함께 움직이자!', 'Outing : 지금 나가는 중입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 등 성소수자 존재를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슬로건에 사용된 단어는 더 구체적이고 강렬하다.

양선우 위원장은 슬로건을 선정하는 작업 당시 유독 '차별'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상반기엔 유독 반복된 일상의 차별에 견디다 못해 스러진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졌다. 특히 변희수 하사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조직위는 차별의 언어를 없애기 위해서는 아예 시대를 바꾸는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 이처럼 강력한 문구를 선정하게 됐다.

"'성소수자가 왜 계속 죽어야 하는가'는 우리 사회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주변에 친하게 지냈던 혹은 함께 일했던 이들의 죽음이 저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왜 나는 결혼식은 못 가고 계속 장례식에만 가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히 변희수 하사 건은 성소수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준 것 같아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차별'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 슬로건을 정했어요. 이런 일이 잘 없었는데, 소셜미디어에서도 많이 회자되더라고요. 그만큼 사람들이 어떤 한계에 다다라 있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퀴어 문화 축제는 성소수자가 그날 하루만큼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며 자긍심을 느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어떤 현상이나 존재가 실제로 드러나게 하는 '가시화可視化'가 퀴어 문화 축제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6월 26일 시작하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크게 '서울 퀴어 퍼레이드'와 '한국 퀴어 영화제'로 구성된다. 사진 제공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6월 26일 시작하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크게 '서울 퀴어 퍼레이드'와 '한국 퀴어 영화제'로 구성된다. 사진 제공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참가자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오프라인처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진행했던 부스·공연·행진을 최대한 그대로 구현하는 걸 목표로 21회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으로 한 온라인 행사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십수 만 명이 참가하는 행사를 스태프 50여 명이 준비해 왔어요. 상근 인력은 세 명에 불과하죠. 세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원봉사로 활동해 주시는 건데요. 지난해에도 다들 자원봉사로 참여했는데 온라인은 처음이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또 1년 지나니까 달인 수준으로들 하고 있어요.(웃음) 온라인으로 진행해 보니 오프라인과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오프라인으로 진행했을 때는 행사 당일 그 시간에 현장에 와야만 했다면 온라인은 있는 곳에 상관없이 전 세계 각지에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잖아요. 이번에도 많이들 참여해 주시면 좋겠어요."

올해 22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역시 온라인으로 열린다. 축제는 크게 '서울 퀴어 퍼레이드'와 '한국 퀴어 영화제'로 구성된다. 6월 26일 토요일 한국 퀴어 영화제 20주년 기념식을 시작으로 27일 일요일에는 온라인으로 퀴어 퍼레이드 및 축하 공연을 중계한다. 그 외에도 7월 18일까지 서울 퀴어 문화 축제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부스를 만날 수 있고, <오마이뉴스> 사이트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기고 '불빛과 노트들' 등 문화 활동이 준비돼 있다.

양선우 위원장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행사가 될 수 있게끔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 '퍼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과 '우리, 자연사하자'라는 노래로 유명한 '미미 시스터즈' 등 다양한 팀의 무대가 준비돼 있다. 양 위원장은 "온라인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이 행사를 통해 연결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많이 참여해 주시고 즐겨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9년 20회 서울 퀴어 퍼레이드 때는 '무지개예수' 트럭이 운행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9년 20회 서울 퀴어 퍼레이드 때는 '무지개예수' 트럭이 운행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제가 너무 예수쟁이라
신앙을 버리진 못해요"

양선우 위원장은 지난해 처음 임기 3년의 위원장을 맡았다. 그 전에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센터에서 활동가로 활동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 운동 현장을 누비며 살아 왔다. 이 '판'에 발을 들인 건 20대 후반 때다. 남자친구를 사귀며 이성애자로 살아 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결국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28살이 되어서야 인정하게 됐다.

양 위원장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받아들인 후, 전도사로 일하던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했다. 평소 '너에게 물려줄 건 믿음 하나밖에 없다'는 말을 하던 어머니와는 비밀 하나 없이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커밍아웃에 처음에는 "지옥에나 가라"고 반응했다.

"친구같은 엄마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처음엔 좀 충격으로 다가오더라요. 나도 울고 엄마도 엄마 방에 가서 우셨죠. 그런데 한참 뒤에 나름 정리가 되셨는지 부르시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과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 너가 이미 여자를 좋아하는 쪽으로 갔다는데 어떡하겠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반동성애 목사나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뿐인 아들이 게이라서 온 가정이 무너졌다"는 드라마틱한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양선우 위원장은 커밍아웃 이후로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때로 중보기도도 부탁하면서 그렇게 지낸다. 얼마 전 오랜 동료가 사경을 헤맬 때도 어머니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요.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랜 동성 파트너와 친구들이 곁을 지켰거든요. 어머니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후에 죽음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나누면서, 어머니가 지금 제가 사는 상황을 이해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더라고요. 성소수자의 가족 구성권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떠난 친구와 남겨진 친구들 곁에 돌봐 주는 많은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위해서 기도하겠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죠. 어머니도 저도 함께 나이가 들면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서울의 유명 대형 교회에 다니지만 양 위원장은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다. 한때는 그도 대형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다. 존경하던 담임목사가 어느 날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설교를 했는데, 그 다음 주에 설교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더 이상 교회에는 나가지 않게 됐다.

양선우 위원장은 스스로를 '예수쟁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제공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양선우 위원장은 스스로를 '예수쟁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제공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그럼에도 스스로는 개신교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신앙을 버릴지 말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양선우 위원장은 "제가 너무 예수쟁이여서 신앙을 버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네요"라고 말했다.

"기도도 참 많이 했는데 갑자기 계시를 주시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원래 말이 없으신 분이잖아요.(웃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나를 들어서 그대로 지옥으로 옮기실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도 구원받은 강도가 있었잖아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고 묻지 않으셨고요.

 

저는 활동가로서 삶을 시작할 때도 제 소명과 연관 지어 생각한 것 같아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혐오 발언 등으로 더 이상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진 신앙의 이름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제 삶에서 신앙을 버릴 수는 없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제가 살아 온 인생을 쭉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나를 지키지 않으셨다면 저는 한 순간도 숨을 쉴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분이 나를 '존재'로 만드신 분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도 그분이라 생각하게 됐어요. 여자를 좋아하게 만드신 이유도 있지 않으셨을까요.(웃음)"

개신교 단체들은 작년에 이어 이번 퀴어 문화 축제에도 온라인 부스로 참여한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이는 로뎀나무그늘교회와 개신교에서 성소수자 인권 옹호를 위해 활동하는 여러 단체 연합인 '무지개예수'가 서울 퀴어 퍼레이드 온라인 부스 프로그램 '퀴어 부스 ON'에서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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