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는 여성 인권이 부각되던 지난 몇 년 사이 오히려 성폭력 대응 기관의 역할과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를 상담·인권센터와 통합하고도 관련 규정을 정비하지 않은 채 사건 처리를 소극적으로 해 온 태도가 있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총신대는 여성 인권이 부각되던 지난 몇 년 사이 오히려 성폭력 대응 기관의 역할과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를 상담·인권센터와 통합하고도 관련 규정을 정비하지 않은 채 사건 처리를 소극적으로 해 온 태도가 있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총신대학교(박성규 총장)가 '아내 폭력·스토킹'을 저지른 신학대학원생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총신대가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다루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게 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 외 대리인 신고는 받지 않고, 신고한다고 해도 조사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취재 결과, 총신대는 그간 여러 차례 직제와 규정을 개편하면서 성폭력 전담 기관을 통폐합하고 역할과 기능을 축소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이 존재하는데도 이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어떤 절차로 사건이 처리되는지조차 제대로 안내하고 있지 않았다.

공지와는 다른 절차
대리인 신고, 징계 조치 안 돼

총신대 홈페이지에는 상담·인권센터 산하에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가 있다고 나온다. 이 코너에는 "성폭력은 강간뿐만 아니라 성적 희롱, 성추행, 음란 전화, 음란 통신, 성기 노출, 아내 구타 등이 포함된다"며 피해자 A의 사건이 신고 접수 대상임을 밝히고 있다. "총신대 내 구성원인 교원, 직원, 연구원 및 학생이면 누구나 (신고)할 수 있으며, 피해자, 대리인 혹은 제3자가 신고할 수 있다"는 조건도 안내하고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사건 조사 → 심의·의결 → 징계·조치' 순으로 절차가 진행된다고도 안내한다. 

대리인 신고 접수가 가능하다는 홈페이지 안내를 보고,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는 A를 대리해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나 인권센터는 "피해자가 직접 사건을 신고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이는 홈페이지나 관련 규정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A는 황당했지만 하는 수 없이 직접 사건을 다시 신고했다. 

상담·인권센터는 약 두 달 후 "신청인이 요청하는 피신청인의 신대원 징계는 신대원 학생처와 교수회의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홈페이지만 보면 '아내 구타'는 신고 대상이고, 상담·인권센터가 사건 조사와 심의·의결을 거쳐 징계·조치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학교 측은 신대원 학생지도위원회가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피해자 측에 알렸다.

총신대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 안내 페이지에는 "제3자가 신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지만, 총신대는 피해자가 직접 사건을 재신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총신대 홈페이지 갈무리
총신대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 안내 페이지에는 "제3자가 신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지만, 총신대는 피해자가 직접 사건을 재신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총신대 홈페이지 갈무리
조사위원회 업무, 규정에서 '삭제'
소송하면 조사도 못 한다?

총신대는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개정 고등교육법에 따라, 2022년 9월 대학 인권센터를 신설하면서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를 대학 인권센터와 통합했다. 교육부는 2022년 2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전담 기구 운영 가이드'에서 인권센터와 성폭력 고충 창구를 일원화하더라도 그 기능을 약화하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총신대는 성폭력 전담 기구의 역할과 권한을 지속적으로 축소했다.

총신대학교 상담·인권센터 규정을 보면 "성희롱·성폭력을 포함한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사건 조사를 위한 절차 등은 상세히 명시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총신대는 이 사건을 접수한 이후인 지난해 11월 24일 규정을 개정해 "조사위원회는 인권침해 사안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센터 운영위원회에 보고한다"는 규정만 남겨 두고, 그 아래 조사위원회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① 성희롱·성폭력을 포함한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 ② 센터 운영위원회에 조사 결과 보고 ③ 피신고인의 징계 요청 등 의견 제시 ④ 기타 사건의 적절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절차와 조치" 문구를 모두 삭제했다.

또한 "사법기관에서 수사 또는 재판 중인 사건으로서 센터의 조사만으로는 사건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센터장은 사법기관의 수사 결과 또는 재판 결과가 있을 때까지 그 조사를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제10조 제10항)을 신설했다. 그 결과, A는 가해자가 법원에서 접근 금지 명령과 스토킹에 대한 벌금 약식명령을 받았다며 증거자료를 제출했지만, 인권센터는 "이미 이 사건에 대해서 신청인이 사법 당국에 고소 및 고발을 실행했고 그에 대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조사할 수 없다고 했다. 

총신대는 이번 사건이 접수된 이후 인권센터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정했다. 인권센터 조사위원회의 업무와 징계 요청 권한 등(사진 오른쪽)을 삭제(사진 왼쪽)했다. 총신대 규정집 갈무리
총신대는 이번 사건이 접수된 이후 인권센터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정했다. 인권센터 조사위원회의 업무와 징계 요청 권한 등(사진 오른쪽)을 삭제(사진 왼쪽)했다. 총신대 규정집 갈무리

인권센터는 사건 조사와 관련해 "운영위워(원)회는 총장의 승인을 얻어 인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제10조 제1항)는 규정을 두고 있다. 실제 인권센터는 이 규정을 운영위원회가 신고인·피신고인 의견을 청취해 사안을 조사할지 '심의'한 뒤 조사위원회를 꾸릴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를 형사 사건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성폭력 사건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이 수사를 개시할지 말지 '심의' 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총신대는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를 상담·인권센터와 통합하면서도 전문성·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현재 인권센터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책임연구원 1명뿐이다. 직원 1명에게 상담·인권센터와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 업무를 모두 떠맡긴 셈이다.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에서는 '고충상담원'을 안내하고 있음에도, A의 경우 상담을 요청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다고 했다. 

있는 성폭력 대응 기관도 폐지
상세한 규정 있는데도 적용 안 해

사실 총신대에는 상담·인권센터 규정 외에도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존재한다. 2001년 만들어져 2020년까지 세 차례 개정을 거친 '총신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은 △성희롱·성폭력 관련 용어 정의 △적용 범위 △피해자 보호 및 비밀 유지의 의무 △성희롱·성폭력 상담 및 처리 기구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처리 절차 등을 상세히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가 성폭력 사건을 접수했을 시에는 "1주일 내에 조사에 착수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해자의 행위가 성희롱·성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의·의결"한 후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는 인권센터와 통합됐지만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 총신대도 이 규정을 폐지하지 않고 살려 두고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가 상담·인권센터에 통합됐기 때문에 센터 운영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총신대는 현재 성희롱·성폭력 처리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학교 규정집에서도 '현행' 규정으로 검색된다. 총신대 규정집 갈무리
총신대는 성희롱·성폭력 처리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학교 규정집에서도 '현행' 규정으로 검색된다. 총신대 규정집 갈무리

한편, 총신대는 '직제 규정'으로도 성폭력 대응 기관을 두고 있었다. 2016년 3월 학교 부설 기관으로 '학교폭력·성폭력센터'를 둔다고 직제 규정에 명시했으나, 이는 이후 수차례 삭제·부활을 거듭해 왔다. '학교폭력·성폭력센터'는 2016년 8월 '학교폭력·성폭력예방센터'로 이름이 바뀌었고, 2019년 7월에는 규정에서 삭제됐다. 

총신대는 2019년 10월 교수들의 '수업 중 성희롱 발언'이 불거지며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 교수가 헤어롤을 한 학생에게 "외국에서 길거리 화장하면 매춘 행위"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수업 중 반복되는 교수들의 성희롱 발언을 참다못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고, 성희롱 발언을 한 교수 5명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학교는 성폭력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재발 방지 마련에 힘을 쏟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2020년 2월 '성폭력예방센터'가 직제 규정에 다시 생겼지만, 성폭력예방센터는 2020년 6월 '성희롱·성폭력·기독교윤리상담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기관은 이름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다가, 2023년 9월 규정에서 또다시 삭제됐다. 

이처럼 총신대는 오래전부터 교내 성폭력에 대응하는 규정과 기관을 마련해 놓고 있었지만, 여성 인권이 부각되던 지난 몇 년 사이 오히려 퇴행의 길을 밟았다. 2019년 교수들의 성희롱 사건이 대대적으로 불거졌는데도, 결국에는 성폭력 대응 기관의 역할과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일관했다. 

센터장 "올해 초 통폐합돼서 규정 미비"
피해자 "절차·규정 미비해 더 큰 고통 겪어"

인권센터장 허 아무개 교수는 1월 11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 관련 규정은 '옛날 규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는 올해 초 인권센터와 통폐합됐다. 새로 인권센터가 생기면서 기존 규정은 없어져야 했는데, 관련 부서에서 잘 몰라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거다. 올해 초 통폐합돼서 인권센터의 규정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미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는 인권센터와 '통합'한 것이지 '폐합'된 것은 아니다. <뉴스앤조이>는 18일, 허 교수에게 문자메시지로 △성희롱·성폭력 고충 창구가 인권센터에 귀속된 뒤 이제까지 관련 규정을 정비하지 않은 이유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으나,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피해자 A는 학교의 미비한 사건 처리 규정과 절차로 더 큰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1월 18일 기자와 만나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에 근거해 질의를 해도, 인권센터는 무시하거나 '우리는 상담·인권센터 규정을 따른다'고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규정이 바뀌었다면 미리 안내해 줬어야 하지 않나. 내가 직접 교육부나 타 대학 매뉴얼을 찾아 보니, 피해자에게 규정도 보내 주고 절차를 안내해 주게끔 돼 있더라. 하지만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나는 총신대 직원이었으니까 직접 규정이라도 찾아 이야기해 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냥 문제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대리한 기반센은 총신대 인권센터가 성폭력 대책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반센 이은재 간사는 1월 17일 통화에서 "우리는 규정에 근거해 사건을 신고했는데, 학교는 사사건건 '이건 우리 절차가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규정도, 절차도 통일된 게 없었다. 인권센터가 피해자를 지지하고 상담하는 등 보호 조치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방어적으로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은재 간사는 "무엇보다 제일 문제적인 건 대리인 신고가 불가능하고, 사건 접수 자체를 심의하는 것이다. 총신대 인권센터는 피해를 신고하는 피해자들을 도우려기보다, '이게 온전한 피해인지 아닌지'를 여러 단계에 걸쳐 판단하겠다고만 하고 있다. 이는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신고의 문턱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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