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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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의 퍼레이드를 보수 개신교인들이 막고 있다. 사진 제공 김민수
2014년 제6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 퍼레이드 차량을 막아서는 보수 개신교인들. 사진 제공 김민수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퍼레이드 행렬이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인도 옆에 서 있던 흰옷을 입은 청년 수십 명이 순식간에 선두에 있는 트럭을 향해 뛰어들었다. "순국하는 마음으로 이 사람들을 막아라!"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들은 차량에 더욱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

2014년 6월 28일 제6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대구 2·28기념공원. 흥겹게 출발해야 할 퍼레이드는 시작부터 방해에 가로막혔다. 이날 개신교인 1000여 명은 정오부터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 등 축제장 주변 곳곳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주된 행사 이름은 '한 가족 음악회'였지만 실상은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였다. 오후 5시 무렵, 퍼레이드 시간이 다가오자 이들은 행진 차량이 정차해 있는 길목으로 이동해 행진 경로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차량 바퀴 앞에는 압정과 송곳을 깔아 두기도 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배진교 위원장은 청년들이 에워싼 선두 트럭에 올라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회 방해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므로 경찰을 통해 이들을 끌어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경찰에게 우선 기다리겠다고 이야기한 뒤 한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해산하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트럭을 막아선 청년들은 미동도 없었다. 결국 경찰이 이들을 끌어내면서 행진은 시작됐지만, 얼마 못 가 다시 개신교인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로에 주저앉아 울부짖으며 방언 기도를 하고 있었다. 30분 넘게 대치가 이어졌다.

2014년 축제에서 개신교인들은 도로에 앉아 기도를 하며 퍼레이드 행렬을 가로막았다. 사진 제공 김민수
2014년 축제에서 개신교인들은 도로에 앉아 기도를 하며 퍼레이드 행렬을 가로막았다. 사진 제공 김민수

배진교 위원장은 트럭에서 뛰어 내려 행렬 끝으로 향했다. 참가자들과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계획한 경로로는 가지 못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퍼레이드를 이어 갔다. 극렬히 기도하던 개신교인들은 축제 참가자들이 현장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해산했다.

"광기를 느꼈죠.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게 맞는지,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건지 의심스러웠어요. 축제 참가자들의 휴대폰을 빼앗고, 피켓을 부수고, 진행되고 있는 집회에 뛰어들어서 방해하고… 이건 반대를 넘어서서 완전히 폭력적인 행위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취급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혐오를 내뱉고,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비난하는 개신교인들에게 화가 나고 답답해요.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계속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보고 있으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 정확한 정보나 자기 소신을 바탕으로 나오기보다는 교회에서 가자고 하니까, 목사님이 잘못됐다고 하니까 저렇게 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제는 혐오 세력을 만나면 '이분들이 무슨 죄야. 선동한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라고 생각해요."

존재를 반대할 수는 없다

대구 퀴어 문화 축제는 2009년 처음 시작했다.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퀴어 문화 축제로, 매년 동성로 일대에서 열렸다. 처음에는 축제를 방해하는 이들도 없었다.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이 축제장에 잠시 앉아 쉬기도 하고, 함께 손뼉 치며 풍물패 공연을 즐기던 평화로운 축제였다.

보수 개신교인들이 축제를 본격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한 건 2014년 제6회 축제부터였다.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된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대구시청 등에 항의 전화를 걸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민원을 넣는 등 퀴어 문화 축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축제가 예정대로 개최되자, 대구기독교총연합회와 예수재단,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등에서 동원된 개신교인 약 1000명이 축제장 인근 곳곳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퍼레이드에도 난입해 행진을 극렬하게 방해했다.

배진교 위원장은 15년째 퀴어 문화 축제를 이어 오며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이때를 잊을 수 없다. 그동안 안전하고 평화롭게 열리던 축제에 온갖 폭력과 혐오 발언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퍼레이드를 한다는 게 이렇게까지 반대할 일인가', '모든 창조물을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라면 우리도 그중 하나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인정받지 못할까'.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한다는 말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반대할 수는 있죠. 사실 저는 '퀴어 문화 축제를 좀 더 조용한 데 가서 해', 아니면 '안 보이는 곳으로 가' 이런 이야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성소수자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든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하고, '너희들은 죄악이야'라고 말하는 건 개신교답지 않죠.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신다면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반대하라고 했을까요?"

혐오 세력은 2014년 이후 매년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동성로 일대에 나타나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김민수
혐오 세력은 2014년 이후 매년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동성로 일대에 나타나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김민수

그는 개신교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공동체 역할을 하던 교회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받는 경험을 하고 나서는 교회와 개신교인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누군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성소수자를 부정하고 혐오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주변에 누가 교회 다닌다 그러면 일단 '성수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안 좋겠구나', 그리고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을 아무 죄의식 없이 하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어요. 저는 인간이 가장 힘들 때, 세상 끝에 있다고 느낄 때 찾게 되는 게 종교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을 보면 '종교라는 게 대체 뭔가', '종교에 빠지면 사람들이 저렇게 무섭게 바뀌나' 하는 공포를 느끼게 돼요. 물론 개신교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퀴어 문화 축제에서 보여 주는 행동들을 보면 그렇거든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일부 교회는… 우리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은 '빌런' 정도로 생각해요. 이런 교회들이 없어져야 사회가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하고, 누군가 아프거나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개신교가 좀 더 따뜻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종교였으면 좋겠는데, 많이 안타까워요."

온 몸에 인분을 묻힌 사람이 퍼레이드를 하는 참가자들 사이로 뛰어 드는 일도 있었다. 그는 교회 장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 김민수
온몸에 인분을 묻힌 사람이 퍼레이드를 하는 참가자들 사이로 뛰어드는 일도 있었다. 그는 교회 장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 김민수

이듬해 2015년 열린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인분 테러'가 있었다.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한 슬기(활동명)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행진 도중 한 사람이 갑자기 돌진하더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모세의 기적'처럼 양 옆으로 갈라졌다. 그는 온몸에 인분을 바른 채 선두에 있던 대형 현수막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슬기는 당시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예수 천국"이라고 외쳤던 것만은 기억한다.

슬기는 퀴어 문화 축제에서 인분 테러 사건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적이 한 번 더 있다. 교제하던 애인의 교회가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때였다. 애인을 통해 한 청년 교인이 기자를 사칭해 프레스증을 받은 뒤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을 촬영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성소수자를 혐오하기 위해 남을 속이기까지 하는 개신교인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저희를 같은 사람으로 안 본다는 생각이 들어요. 십계명에 분명히 '거짓말하지 말라'고 나와 있잖아요. 자기들이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어기면서까지 혐오하겠다는 건데, 너무 충격이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며칠간 잠도 안 오더라고요. 그나마 남아 있던 인류애가 다 부서지는 느낌?

 

사실 반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피켓에 담긴 문구는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근데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서워요. 저희를 악마처럼 봐요. '저것들 어떻게 해 버리겠다'는 눈빛이 보여요. 저희는 신나서 춤도 추고 퍼레이드를 하는데, 저희를 둘러싼 개신교인들은 '저 악마의 자식들…' 하는 표정이에요."

슬기는 2010년대 초부터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해 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슬기는 2010년대 초부터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해 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슬기는 가톨릭 교인이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공유하는 개신교인들이 왜 성소수자를 향해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예수는 당시 죄인, 병든 사람, 약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환대했다. 그런 예수라면 성소수자 또한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내가 배운 거랑 다른 걸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죄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약자들, 성소수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품고 다니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작 지금의 개신교인들은 성소수자를 품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 가르침을 받았으면 똑같이 해야죠. 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안 지키나요. 이웃을 사랑하면 그렇게 나올 수가 없어요. 우리를 이웃으로 안 보는 거잖아요. 성소수자는 어떻게 보면 교회에서 더 환영하고 안아 줘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배척하고만 있으니, '저 사람들은 더럽고 우리는 청결하다'고 하던 바리새인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그는 가톨릭 내부에서 더디지만 성소수자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부의 부패를 가리기 위해 성소수자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천주교에서는 본당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성소수자 사목을 하려는 분이 계세요. 서울대교구장 주교님께서는 성소수자와 대화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고요.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가 있어요. 그런데 개신교는 물론 교단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큰 교단이 혐오에 앞장서고 있으니까…. 저는 도대체 그런 모습을 보고 교인들이 뭘 배우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에 악영향 미치는 건 혐오 선동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 등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를 10일 앞둔 지난 6월 7일, 법원에 대구 퀴어 문화 축제 집회 금지 가처분을 냈다. 작년 축제에서 청소년들에게 '파워풀 퀴어 청소년', '섹스하는 퀴어 청소년'이라고 적힌 콘돔을 나눠 주고,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한 것이 청소년들에게 음란을 조장했다는 이유다.

배진교 위원장은 이 같은 주장은 왜곡·과장됐다고 단호히 말한다. 현행법상 청소년이 콘돔을 구매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고, 콘돔을 배부하는 건 안전한 성생활을 위함이지 성관계를 조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퀴어 문화 축제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낙인찍는 보수 개신교의 혐오 선동이다.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은 '청소년 시기에 성소수자가 되면 다 죽는다'고 이야기해요. 사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학교에서는 다양한 성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용기 내서 이야기를 꺼내면 혐오부터 하니까요. 이야기할 곳이 없는 청소년들은 점점 자기만의 굴을 파게 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는 거예요. 저는 청소년들이 이런 비극적인 선택을 하도록 앞장서는 곳이 일부 개신교회라고 생각해요. 존재를 부정하고, 이들이 용기 내서 축제 현장에 나왔을 때 '회개하라, 너희들은 지옥에 떨어질 거다'라면서 비난하는데 어떻게 온전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배진교 위원장은 대구에서 15년째 퀴어 문화 축제를 조직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배진교 위원장은 대구에서 15년째 퀴어 문화 축제를 조직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이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한다는 것도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이다. 축제가 열리기 한 달 전, 대구에서는 '파워풀 대구 페스티벌'이 열렸다. 전라 상태인 사람들이 보디페인팅을 하고 거리를 행진했지만, 보수 교계는 이들을 음란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슬기는 보수 개신교인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선정적이라고 비판하려면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갖췄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가 축제에 갔을 때 튀는 옷을 입거나 웃통을 벗은 사람도 있긴 있었어요. 근데 그게 뭐 어때서요? 더우면 웃통을 벗을 수도 있고, 좀 튀는 옷을 입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퀴어 문화 축제 말고 일반인들이 코스프레하는 데 가면 그 '음란'한 걸 더 많이 볼 수 있어요. 근데 개신교인들이 그건 음란하다고 안 하잖아요. 꼭 퀴어 축제 참가자들만 짚어서 이야기하는데 완전 선동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와서 봐 놓고도 그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웃겨요."

배진교 위원장은 성소수자들의 노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 옷을 벗는 행위에는 평소 자기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드러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퀴어 문화 축제의 시초가 된 1969년 스톤월 항쟁으로부터 이어진 하나의 퍼포먼스다.

"의복이라는 것은 사회에서의 위치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의사면 의사 가운을 입고, 판사는 판사복을 입는 것처럼요. 역사적으로 성소수자들은 퀴어 문화 축제에서만큼은 차별과 억압을 다 벗어 버리고 오롯이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옷을 벗는 퍼포먼스를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옷을 벗는 행위는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는 퍼포먼스인 거죠.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로 봐 주셨으면 해요.

 

퀴어 문화 축제가 보시기에 많이 불편하실 수도 있어요. 우리가 여태까지 익숙하게 봐 왔던 성별 이분법, 성별 고정관념, 이성애 중심 가부장제 등을 완전히 전복시키니까요.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할 수는 없어요.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에요. 기존의 사고를 기준 삼아서 보기 불편하다고 반대하기보다, 변화하는 흐름을 좀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6월 17일 열린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6월 17일 열린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혐오도 진화한다?

2014년 보수 개신교인들의 조직적인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작된 이후, 그 양상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퍼레이드 행렬을 집단으로 막아서거나, 참가자들에게 극렬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은 점차 줄고 있다. 개신교 색채를 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2018년 대구 퀴어 문화 축제를 앞두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산하 기독청장년면려회 대구·경북협의회는 행동 지침을 공유하며,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소리 내어 기도(극우 보수 기독교 언론 프레임, 퀴어 측이 가장 좋아하는 대응 방법), 퀴어 측을 향해 소리 지르며 충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올해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 등 반동성애 단체들은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려 온 동성로에서 장사하는 상인회와 함께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를 고발했다.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도로를 무단으로 점용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상인들도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배 위원장은 이 같은 주장이 '진화한 혐오'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혐오도 점점 진화하고 있어요. 보수 개신교인들이 처음에는 '동성애는 죄악이다', '너희는 지옥에 간다. 그러니까 회개하라'는 일차원적인 내용으로 반대했거든요. 이건 누가 봐도 개신교인들이 반대한다는 걸 명확하게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여론이 개신교를 비난하는 쪽으로 형성되다 보니까, 점점 교회 색을 빼기 시작한 거예요. 자기들이 선량한 시민인 것처럼 하는 거죠. 반대하는 주체는 똑같은데 성경이나 하나님을 지우려고 애를 많이 쓰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정말 상인회에서 고발하신 줄 알고 좀 의아했어요. 왜냐하면 서울의 경우는 오히려 상인회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유치하려고 애를 쓰거든요. 퀴어 문화 축제를 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모이니까요. 퀴어 문화 축제가 지역 상권에도 이익이 되는 거죠. 깜빡 속을 뻔했어요. 알고 보니까 상인회 회장님도 교회를 다니는 분이더라고요.

 

언론을 보면 저희가 상인회에 3조 원 정도 손해를 끼쳤다고 돼 있는데요. 한 달에 월세 400만 원씩 내는데 그날 문을 닫아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요. 3조 원이면 대구시 몇 개월 예산과 맞먹어요. 되게 놀랐죠. '우리가 그 정도구나' 하고요. 저희 집회 장소 반경에 있는 상가들에 다 물어보고 싶어요. 정말 퀴어 문화 축제가 상권에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이런 주장이 결코 상인회 전체의 의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올해 축제를 앞두고 보수 교계는 '동성로상인회'와 함께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를 도로 무단 점용 및 불법 상행위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이는 15년째 동성로 일대에서 문제 없이 열린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시민에게 불편을 주고 주변 상인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프레임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올해 축제를 앞두고 보수 교계는 '동성로상인회'와 함께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를 도로 무단 점용 및 불법 상행위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이는 15년째 동성로 일대에서 문제 없이 열린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시민에게 불편을 주고 주변 상인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왜곡된 프레임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배 위원장은 보수 교계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는 더 거세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는 조금씩 평등하게 변하고 있고, 그럴수록 위협받는 것은 가부장제나 이성애 중심 사고를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누려 온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항이 세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퀴어 문화 축제를 비롯해 평등을 향한 걸음은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 전 세계 34개국에서는 동성혼을 시행하고 있고,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지자체의 권한으로 인정해 주는 곳도 굉장히 많아요. 저는 이런 흐름 안에 지금 우리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반대는 더 거세질 것이고, 더 조직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 평등을 열망하는 시민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죠. 그러니까 보수 개신교인들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어요. '반대를 조직하는 데 더 힘을 쓰셔야 할 겁니다'라고요."

슬기는 한동안 퀴어 문화 축제에 나가지 않고 사진으로만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 왔다. 성소수자이자 가톨릭 신자로서 혐오 세력을 마주하는 게 힘겨워서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용기를 내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고 싶다.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것이 예수가 이야기한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다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고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데, 왜 예수님처럼 실천하지 않는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예수님을 믿는 입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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