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발의된 지 3년이 흘렀다. 국가인권위원회·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4월 28일 한국 사회 혐오 차별 현실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0년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발의된 지 3년이 흘렀다. 국가인권위원회·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4월 28일 한국 사회 혐오 차별 현실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 사회의 혐오·차별 실태를 짚고, 21대 국회 임기 만료 전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한민국 혐오 차별 현실 진단 대토론회'가 4월 28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가인권위원회(송두환 위원장)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진행된 토론회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국회의원·시민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1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윤채완 차별시정총괄과장,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류민희 변호사가 국내외 상황을 주제로 발제했다. 이 공동대표는 지난해 평등길 도보 행진, 단식투쟁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국회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1대 국회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차별금지법이 '평등의 결정체'가 아니라 '평등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 '차별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년은) 정치의 실패다. 그 실패를 메울 수 있도록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길을 넓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단위에서 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달라고 했다.

류민희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발표한 '소수자 권리 보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실용 지침서'를 소개했다. 한국을 비롯해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국가에 법 제정 노력을 지원·촉구하고, 국제 인권 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수 요소를 자세히 설명하는 250쪽 분량의 영문 지침서다. 류 변호사는 이 지침이 권고가 아니라 당사국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제 인권 의무다. 따라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의무를 방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평등을 이뤄야 하는 국가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국회의원·발제자 등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국회의원·발제자 등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부에서는 △학생 인권조례 △기독교 △여성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차별 현실이 소개됐다. 학생인권법과청소년인권을위한청소년·시민전국행동 우돌 활동가는 시·도 교육청이 있는 17개 지자체 중 학생 인권조례가 있는 곳은 6곳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마저도 최근 서울·충남 등에서는 폐지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는 "학생 인권조례가 밀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진보 교육감과 촛불 대통령 시대에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도 사실 차별과 혐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됐을 때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더 많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는 사이,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고 학습한 극우 개신교 세력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혐오를 선동하고 차별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교계와 정치에 독버섯처럼 퍼지는 혐오·증오·선동의 광풍을 제지할 수 있고, 특히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가 제 모습을 찾아 가는 데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회장은 이날 발제를 들으며 자신이 철저하게 차별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차별·혐오라는 것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그게 차별이라는 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주고 동정하는 게 당연하고, 가족이 돌보는 것이 당연하며, 가족이 돌보지 못하면 시설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면서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어 장애인도 함께 일상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정성조 집행위원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조사를 통해 차별이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반복적으로 확인했는데, 이런 것을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 상황이 차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이 지연된 지난 17년 동안 정부는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에 숨어 사실상 차별을 방조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차별금지법 동의 여론이 조성됐다. 시급히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평등에 대한 논의의 첫걸음을 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법 제정이 지연되는 데 아쉬움과 사과를 전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감정이 복받친 듯 울먹이며 "여러 장애물을 딛고 넘어서서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평등법이 아직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저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의 책임이 크고, 더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차별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송구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계속 마음을 합해 싸워 나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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