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미국 로또'를 준다는 교회 광고를 보고 걸음이 절로 멈췄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출근길 '미국 로또'를 준다는 교회 광고를 보고 걸음이 절로 멈췄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내가 살고 있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는 교회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인구 밀집도가 높고 임대료도 저렴하다 보니 작은 교회가 즐비하다. 한 상가 안에 교회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의도치 않게 생존경쟁에 내몰리게 된 교회들은 전도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동네를 지나다닐 때면 물티슈와 휴지를 주면서 전도하는 이들을 종종 마주한다. 있으면 좋긴 한데 없어도 그만인 물품을 받을 때마다 '요즘에도 이런 전도 방법이 먹힐까' 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교회를 향한 애잔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이틀 전 출근길. 상계역 종합 상가 앞을 지나가다가 인도에 놓인 전도 배너 광고판을 보고 걸음이 절로 멈췄다. 잘못 본 줄 알았다. 이 배너에는 '교회에 처음 출석하시는 분께 미국 로또 3매 2만 원 상당 증정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단에는 예배 시간과 교회 위치가 나와 있었다. '이제는 미국 로또라니…' 어쩌면 전도 마케팅의 '끝판왕'이 등장한 게 아닐까 싶었다. 교회 이름은 긴 편인데, '의로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미국 로또를 준다는 전도 배너를 보고 온갖 생각이 들었다. 어떤 교회인지, 교단은 어디인지, 목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 같은 광고를 내걸었는지 묻고 싶었다. 11월 23일 종합 상가 지하 1층에 있는 ㅇ교회를 찾아갔다. 지하 통로를 사이에 두고 ㅈ교회와 ㅇ교회가 마주하고 있었다. ㅇ교회 입구에는 똑같은 배너 광고판이 설치돼 있었다. 왼쪽 벽면에는 교회를 소개하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집사, 권사, 장로 등 직분이 없고 모두가 성도이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설교할 수 있다 △교역자와 임직원은 소득세 또는 사업자 소득 신고를 한다 △십일조를 소득 대비 헌금으로, 요율은 개인이 정한다. 소개 문구만 놓고 보면 '개혁'을 추구하는 교회처럼 보였다.

교회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뒤 CCM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간주가 흘러나왔다. 찬양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렸다. 10평 정도 되는 예배당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홀로 있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면서 명함을 내밀자, 그는 "<뉴스앤조이>는 되게 진보적인 매체로 알고 있는데 맞지 않느냐"면서 반색했다.

그 역시 기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교회 이름이 들어간 명함에는 '대표 남○○'이라고 나와 있었다. 남 대표는 ㅇ교회를 세운 지 3주 정도 됐고, 현재 담임목사는 없으며, 어느 교단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 목사가 와서 일주일에 세 번 설교해 주고 있고, 5명 정도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기자는 미국 로또를 준다는 배너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고 본론부터 꺼냈다. 왜 하필 미국 로또를 전도 마케팅으로 삼았는지 물었다. 남 대표는 고 김성광 목사가 시무했던 강남순복음교회와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를 다녔고, 신학대 진학을 고민할 정도로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과거와 달리 사회적으로 비호감이 됐고, 사람들도 더는 교회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고 했다. 다시 사람을 불러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자신이 특허를 받아 진행 중인 미국 로또 구매 대행 사업을 전도 마케팅으로 삼았다고 했다.

남 대표는 "물티슈나 휴지를 주는 전도 방식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좀 더 효과적인 전도 방법을 찾던 중 미국 로또를 주기로 결정했다. 로또를 사면 당첨 여부를 떠나서 일주일 동안 행복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이게 (미국 로또가) 당첨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그 짧은 시간이라도 사람들이 기쁨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단계를 거쳐 총 6장(1장당 6600원)을 지급하려 한다고 했다. 약 4만 원 정도가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데, 남 대표는 만일 이 돈으로 한 영혼이 교회에 안착하면 '가성비 좋은' 전도 마케팅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기자가 미국 로또 구매 대행은 불법이라는 뉴스를 본 적 있다고 하자, 남 대표는 "거기는 다른 업체 이야기다. 우리는 특허를 받았다"고 말했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돈을 수단으로 삼은 전도 방법이고, 자칫 다른 교회에도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비판받을 소지도 크다. 이와 관련해 남 대표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 그런데 성경책을 주면서 전도하는 곳도 있다. 우리는 성경책을 구입하는 비용 대신 (미국) 로또를 주는 것이다. 오히려 이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지 않나. 기자도 그거 보고 온 것 아닌가. 어차피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가 뭘 해도 욕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좀 더 세련되게 전도 마케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실험하는 단계이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측정은 안 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광고 배너를 보고 찾아온 사람은 1명뿐이고, 기자가 두 번째라고 했다.

전도 방법과 별개로 남 대표는 자신이 추구하는 교회 방향성을 언급했다. 기성 교회처럼 교인의 직분을 집사·장로 등으로 나누면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서 직분제를 반대한다고 했다. 목회와 교회 행정을 분리해 담임목사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분산하고, 십일조도 개인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남 대표는 "요즘 들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데, 정작 다른 곳에는 많이 찾아가고 있다. 나는 미국 로또를 기회로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교회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특허를 받고 미국 로또 구매 대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복권법 제6조 제4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영리 목적으로 최종 구매자를 위해 온라인 구매를 대행할 수 없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남 대표는 특허를 받고 미국 로또 구매 대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복권법 제6조 제4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영리 목적으로 최종 구매자를 위해 온라인 구매를 대행할 수 없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화를 마친 후 남 대표는 종합 상가 1층으로 안내했다. 구석진 곳에 미국 로또를 판매하는 키오스크가 놓여 있었다. 미국 로또를 구매하려면 가입부터 해야 한다.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 인증 번호를 받고, 4자리 비밀번호를 설정하니 가입 절차가 완료됐다. 남 대표는 교회에 처음 왔으니 자신이 직접 미국 로또 3장을 결제해 주겠다고 했다. 결제가 끝나자 구매가 완료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남 대표는 이번에 구매한 미국 로또 추첨 날짜는 11월 26일이고, 1등 당첨 금액은 3600억 원이라고 말했다. 1등이나 2등에 당첨되면 직접 미국에 가서 수령해야 한다고 했다. 1등에 당첨되면 ㅇ교회에 십일조를 내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남 대표는 웃음을 터뜨렸다.

별의별 교회가 다 있다. 남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순히 비판하기보다는 왜 이런 교회가 나오게 됐는지 생각하게 됐다.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껄껄 웃었다. 조 교수는 "달란트 주는 교회학교에나 통할 전도 방식인데, 결과적으로 교회 이미지 상실로 이어질 것 같다"고 했다. '가성비 좋은' 전도 마케팅을 하고 있는 ㅇ교회는 성공(?)할까. 몇 개월 뒤 한 번 더 들러 봐야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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