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매년 1월 컨퍼런스를 열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해 온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가 1월 20일 여섯 번째 컨퍼런스를 열었다. 20~21일 양일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컨퍼런스 첫날은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 백석대 석좌)가 '기독교 전통의 3가지 평화론'을 주제로 발제했다. 40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컨퍼런스에서는, 3가지 평화론에 대한 이론 및 한계점과 함께 현실적인 고민이 오갔다.

이상규 교수는 작년 11월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 기독교 평화론의 역사>(SFC)를 펴냈다. 이 책은 구약·신약에서 찾을 수 있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초기 기독교의 평화주의, 정당한 전쟁론의 대두, 중세시대의 성전론聖戰論, 계몽주의 시대와 근대에서 이어진 평화 담론에 더해, 아나뱁티스트의 평화주의와 한국에서의 전쟁과 평화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컨퍼런스에서는 △기독교 평화주의(Christian Pacifism) △정당 전쟁론(Just War) △거룩한 전쟁론(The Crusade)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이상규 교수가 자신의 책 내용을 중심으로 발제했다.
이상규 교수가 자신의 책 내용을 중심으로 발제했다.

이상규 교수는 한국전쟁 때 가족을 잃어버린 경험을 이야기하며 전쟁의 참상을 전했다. 독일의 위험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 재난의 특징을 3가지로 이야기했는데, 재난의 원인 규명이 어렵고, 재난 범위가 대규모적이며, 재난의 고통이 무한정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를 언급하며, 원칙적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기독교인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평화주의'는 전쟁과 폭력은 어떤 경우라도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무저항 비폭력 비전(Vision) 혹은 반전을 주장하는 것이다. '절대평화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이상규 교수는 초기 기독교는 300여 년간 이러한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폭력이나 전쟁을 비도덕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으로 이해했으며, 전쟁 수행을 위한 조직인 군에서의 복무도 배척했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히폴리투스 등이 이런 입장을 취했으며, 종교개혁 시기 아나뱁티스트 운동 중 하나인 메노나이트가 이를 따랐다.

이 교수는 기독교 평화주의가 성경 교훈의 가장 근접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면서도 한계점을 지적했다. 그는 "전쟁의 피해가 나 자신에게만 국한한다면 기꺼이 평화주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나의 평화주의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경감하지 못하고 도리어 가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며 "'타인의 고통에도 나의 신념을 지킬 것인가'는 난제다. 수없이 반복된 질문이지만 여전히 숙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정당 전쟁론'은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전쟁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로마 철학자 키케로(Cicero, BC 106~43)다. 그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에 부합하면 정당한 전쟁이라고 판단했다. 그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교부 암브로시우스, 어거스틴으로부터 아퀴나스, 루터, 칼빈 등이 정당 전쟁론 입장을 취했다. 그에 따라 주류의 기독교회가 정당 전쟁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정당 전쟁론의 문제점은 많다. 이상규 교수는 "본래 정당 전쟁론은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을 제정해 무력 사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을 허용하는 논리로 악용되거나 폭력 사용의 합리화를 추구하는 근거로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전쟁 후 상태가 전쟁의 원인이 되는 악을 충분히 보상할 때만 정당하다는 것도 이론적일 뿐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에 참여하는 정당성으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방어적'이라는 구실도 거의 모든 전쟁에서 이용됐다고 했다.

"역사상 정당한 전쟁이 있었다고 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 교수는 본인 또한 정당 전쟁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역사상 정당한 전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를 댈 뿐이지, 결국 전쟁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다"며 "전쟁 당사자는 정당하다고 말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한, 보편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만한 전쟁은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거룩한 전쟁론'의 대표적인 사례는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의 부끄러운 역사로 인식되며, 성전론은 성경이 말하는 가치와 인간 보편 정서에도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이상규 교수는 성전론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인간의 뜻을 신의 뜻으로 동일시할 위험이 있고, 신의 이름을 빙자한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 행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파괴, 인명 살상을 정당화하며, 이에 따라 전쟁이 극단적이고 잔인하게 수행된다는 것이다.

이상규 교수는 이 세 가지 이론 모두 전쟁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했다. 전쟁은 너무 악하고 그 결과가 영속적인 고통이라는 점에서 그대로 둘 수도 없지만, 동시에 복잡한 이해관계 및 국제 질서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전쟁을 억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적 현실을 제시하며,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을 방지하고 전쟁 억지력을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김복기 목사는 논찬에서 한국교회 평화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복기 목사는 논찬에서 한국교회 평화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교회 파송 선교사 김복기 목사가 논찬을 맡았다. 그는 한계점도 있지만 이상규 교수가 펴낸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가 시의적절하며 기독교 평화론의 교과서처럼 사용할 수 있는 책이라고 평했다. 김 목사는 "이상하리만큼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은혜와 사랑의 언어는 넘쳐났지만 평화의 언어는 갈 길을 몰랐다. 평화를 설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한 후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그럼에도 현실은 다릅니다'였고, 결어는 항상 '우리나라는 방어해야 하는 전쟁의 시기가 온다면 보다 현실적이 되어야만 합니다'였다"고 말했다.

논찬 후 참가자들은 여러 의견을 피력했다. 배용하 대표(도서출판 대장간)는 "역사적으로 정당한 전쟁이 없었다는 건 정당 전쟁론이 실패한 이론이라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불가능하고 기독교인을 칼의 전사로 내몰았던 국가의 이념을 여전히 주류 기독교가 따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당 전쟁론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없어진 과거 이론가들의 말에서 맴도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전기호 목사(씨알사상연구원)는 이상규 교수가 지적한 초기 기독교 평화주의의 한계점과는 다른 입장을 내놨다. 그는 "메노나이트나 퀘이커 교도들은 어느 나라에 살든지 국가주의에 매몰돼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의 평화가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에 속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속해 있다는 신앙을 가진 초기 기독교 평화주의 정신을 지키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성한 대표(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동북아시아지부)는 "이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성전론은 당연히 난센스라는 인식이 있지만, 한국 그리스도교 안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반공주의, 혹은 최근 '멸공'과 같은 표현이야말로 오늘날의 성전론 아닌가. 한국에서는 이런 부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호 목사도 "야당 대통령 후보가 '선제 타격' 이야기를 했을 때 기독교계가 발칵 뒤집혀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마 기독교인 중 절반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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