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 소양강 앞이 떠들썩 했다. 이날은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소양강 퀴어'가 열린 날이었다.

춘천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기뻤다. 춘천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는데도 그 소식이 기뻤던 이유는, 춘천이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작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는 일상의 자리에 더욱 가깝기 마련이고, 일상의 자리에서 퀴어가 가시화하는 일은 '퀴어는 당신과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메시지를 보다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을에서 열리는 장과 학교에서 때마다 하는 운동회가 그 동네의 잔치가 되듯, 나는 퀴어 문화 축제가 동네마다의 잔치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러 길을 나선 어린이가 우연히, 동네 마실을 나선 어르신이 우연히 무지개 행렬과 마주치고, 그 행렬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춘천의 랜드마크인 소양강 처녀상이 무지개 빛으로 물들어 있는 춘천 퀴어 문화 축제 행사 포스터를 보니, 그 바람이 이뤄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포스터. 사진 제공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포스터. 사진 제공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부푼 마음으로 춘천역에 내려 축제가 열리는 소양강 처녀상 쪽으로 걸었다. 저 멀리서부터 색색의 깃발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풍선들이 보였다. 하늘색·분홍색 풍선들이었다. '트렌스젠더 추모의 날(TDoR·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이기도 했던 이날, 풍선을 보며 자연스레 트렌스젠더 상징색(하늘색·분홍색·하얀색)을 떠올렸다.

되돌아보면, 2021년은 유독 트렌스젠더 당사자들에게 가혹한 한 해였다. 공부하고 싶은 곳에서 공부하지 못하고, 원하는 일을 끝까지 할 수 없었던 이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하루가 다르게 들려왔다. '배울 권리, 일할 권리, 원하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권리, 민원 처리를 할 권리, 카드를 발급할 권리, 불안해하지 않고 비행기를 탈 권리, 원하는 곳에서 살 권리, 원하는 곳에서 식사할 권리, 원하는 치료를 받을 권리' 등,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새삼스레 외치며 세상을 먼저 떠난 벗들을 기억하는 날이 11월 20일이었다.

한데, 축제 현장인 소양강 처녀상 쪽으로 다가설수록 헛웃음이 났다. 하늘색·분홍색 풍선들은 퀴어 문화 축제의 것이 아니라, 그 건너편 퀴어 혐오 단체에서 주최한 '제1회 춘천 생명·가정·효 대행진' 대오의 것이었다. "동성애 조장 퀴어 축제 결사반대"라고 적힌 피켓, 우렁찬 찬송가와 함께 나부끼는 트렌스젠더 상징색 풍선들. 그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풍선 색깔을 고른 것일까. 하기야 그들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췄을 때도 뭘 알고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테다.

퀴어 문화 축제의 무대에서는 한창 춤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지개 깃발을 손에 쥐고 음악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저들이 혐오를 할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박수를 쳤다. 저들이 혐오를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매일이 오늘 같기를 바랐고, 저들이 혐오를 할 때 우리는 먼저 떠난 벗을 떠올리며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했다.

오늘 같은 날이 매일이었다면, 우리가 거리에 나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혐오 섞인 목소리를 듣고 나서도 아랑곳없이 함께 비웃을 수 있었다면, 그 벗은 하루 더 살아 보자는 생각을 했을까. 건너편에 선 혐오 세력들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 몰랐을 테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더 이상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아마 저들은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대 공연이 끝나고 행진을 시작했다. 3km를 걷는 행진 속에서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쳐 가며 시내를 누볐다. 지나는 곳곳마다 손을 흔들어 주는 이가 있었고,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는 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 피켓을 들고 쫓아온 한 기독교인도 있었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꿋꿋하게 행진을 쫓아오며 "하나님께 돌아오라", "늦지 않았으니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걷다가 엎어져 땅을 치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울며 기도하는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에게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언젠가 그가 나에 대해, 내가 서있는 자리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날이 온다면, 이 말이 그에게 닿기를 바란다. "나는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가 했던 행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는 사실을 그도 알았으면 좋겠다.

소양강 처녀상 앞에서 시작한 행진은 의암공원에서 마쳤다. 다가오는 2022년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나, 또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나, 우리는 서로의 무사를 기원하고 "내년에 또 보자"고 약속하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수고하신 분들께 지면을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부디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잘 자리 잡아서 춘천의 동네잔치가 되기를 바란다.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소양강 처녀상 앞에 선 큐앤에이 활동가들. 사진 제공 큐앤에이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소양강 처녀상 앞에 선 큐앤에이 활동가들. 사진 제공 큐앤에이

김유미 /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A)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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