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크리스챤아카데미가 5월 25일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게 되었는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크리스챤아카데미가 5월 25일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게 되었는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개신교 내에는 다양한 정치·신앙 성향을 지닌 집단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유독 '극우 성향'을 지닌 이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중도 우파에 가까운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빨갱이'로 몰아붙이고, 배타적인 신앙을 앞세워 반동성애·반이슬람을 외친다. 뿐만 아니라 여성·성소수자·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에도 사사건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극우 개신교인은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방역 지침이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교회를 연결 고리로 한 집단감염이 계속 확산하는데도, 이들은 '교회발 감염'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모여서 예배하는 '종교의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이는 개신교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최근 한국갤럽이 진행한 '한국인의 종교' 설문 조사에서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는 불교(20%)·가톨릭(13%)보다 한참 낮은 6%를 기록했다.

극우 성향을 지닌 개신교인이 과잉 대표되고 있는 현 상황은, '개신교인이라면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대사회적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정병오·정현구·조성돈·조주희)과 크리스챤아카데미(채수일 이사장)는 이런 현상을 짚어 보기 위해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게 되었는가'를 주제로 5월 25일 온라인 포럼을 열었다.

교회와사회연구소 박성철 소장은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보수 개신교인이 왜 극우주의 개신교에 침묵하는지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와사회연구소 박성철 소장은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보수 개신교인이 왜 극우주의 개신교에 침묵하는지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발제를 맡은 박성철 소장(교회와사회연구소)은 극우 성향을 띄는 한국 개신교인은 미국의 보수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종교적 게토화를 촉진하는 분리주의적 강박관념 △자신들의 이념에 반하는 자들을 향한 폭력성 △가부장적 권위주의 △신성화한 자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강경한 근본주의' 혹은 '엄격한 근본주의'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에 들어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박성철 소장은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젠더 차별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고도 했다. 박 소장은 "근본주의자들의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는 한국교회 내 성평등 의식과 성 인지 감수성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비판했다.

박 소장은 한국교회에서 극우 개신교인들이 과잉 대표성을 띄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질문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광훈 목사 같은 극우 개신교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치 세력화하면서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보수 개신교인이 왜 이 사안에 침묵하는지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창조과학·반동성애 등 일부 극우 개신교인들이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 그동안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 왔던 복음주의 진영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박성철 소장은 "이제라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연대해 기독교 근본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탁하는 문제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는 '복음주의 진영'이 계속 침묵하는 한 한국교회에서 극우주의는 계속 자라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는 '복음주의 진영'이 계속 침묵하는 한 한국교회에서 극우주의는 계속 자라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논찬자로 나선 김혜령 교수(이화여대) 역시 '복음주의 진영'이 극우 개신교의 반지성주의적 활동에 '침묵'한 게 문제라고 했다. 한국의 극우 개신교인들은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근현대 성서비평학을 부인하고 성서무오설을 철저하게 고수한다고 했다. 현대 과학의 성과를 부인하며 반동성애, 창조과학, 낙태죄 폐지 반대 등 비합리적인 주장을 '지성 운동'인 것처럼 꾸미고 있으나, 실상은 '반지성주의'라고 일갈했다.

이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은 반지성주의자들의 일방적 몰이를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했다. 김혜령 교수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건전한 신학·신앙 담론을 책임 있게 제공하지 못했고, 현대에 맞는 종교성을 구현하는 언어를 만들지도 못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복음주의를 표방한 극우 '반지성적 집단'에 의해,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목사의 입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더 정확히는 겁에 질리거나 귀찮은 것이 싫어 스스로 입에 자물쇠를 달았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의 이웃 사랑을 가슴에 담고 실천한다고 해도, 이 자물쇠를 풀지 못하면 극우적 병폐라는 싹은 한국교회에 계속 돋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하상응 교수는 '지위 위협'이라는 개념으로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의 트럼프 지지 현상을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강대 하상응 교수는 '지위 위협'이라는 개념으로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의 트럼프 지지 현상을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날 포럼에서는 미국 백인 복음주의 진영의 극우화 현상도 짚었다. '미국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는 왜 트럼프를 지지하였나'라는 주제로 발제한 하상응 교수(서강대)는 이 현상이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느낀 '지위 위협'에 근거해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지위 위협'은 한때 미국의 주류였던 백인, 개신교인, 고졸, 시골 지역 거주자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면서 주류에서 밀려날 때 나타난 심리적 반응을 뜻한다. 하 교수는 최근 미국의 젠더·인종차별 등 사회 변화를 바라보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더 이상 선조들의 미국과 같은 미국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빠져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건 종교적인 이유일지라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트럼프·공화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종교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 중이고, 백인 복음주의자의 수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 하상응 교수는 "올해 초 미국 의회를 점거한 이들 역시 극우 성향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포함돼 있다. 미국 개신교 신자 비율은 계속 줄고 있는데, (교회에) 남아 있는 이들이 점차 극우적 성향을 보인다면, 극우 개신교가 개신교 전체를 과잉 대표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하홍규 교수(숙명여대)도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건 종교보다 정치적 이유와 관련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인종차별, 여성 문제, 사기 등 트럼프가 지닌 수많은 윤리적 문제는 미국의 복음주의자에게 그다지 비윤리적 이슈가 아니라고 했다. 복음주의자들에게 이 같은 이슈는 "언제든 용서할 준비가 돼 있는 주제"라고 진단했다.

하홍규 교수는 복음주의자들이 남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윤리적 기준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이슈는 동성애·낙태·총기 같은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보여 준 것과 비슷한 윤리적 문제를 지닌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섬겨 온 경험이 있다. 따라서 복음주의자들이 윤리적인 이슈에도 어떻게 트럼프를 지지하는 현상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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