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6장 29절~21장 16절

성경에서 이사벨은 어떻게 등장하는가? 그녀의 소개에 앞서 그녀의 남편 될 사람, 아합이  먼저 소개된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 그는 이스라엘 왕이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왕상 16:30)

이스라엘 왕, 아합 그는 도대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기에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했다고 기록됐는지 궁금해진다.

이렇게 악을 일삼기 좋아하는 사람, 아합. 그가 과연 착하고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아합은 오히려 자기보다 더 사악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바로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어떤 여자였는가.  성경은 먼저 그녀의 출신성분을 밝혀준다.

“시돈사람의 왕 엘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왕상 16:31)

아합은 분명,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그 많은 여자들을 제쳐두고, 하나님이 금한 이방 민족 시돈의 왕 엘바알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세벨이 왕비로 들어오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왕상 16:31~33)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왕비로 들어오자마자, 아합은 그녀와 함께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세라 목상까지 만드는 등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공공연하게 자행한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왕상 16:33)

아합은 아내 이세벨을 왕비로 들이면서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도 부족해 이제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고 만다. 이세벨은 도대체 어떤 여인이기에 이토록 남편을 부추겨,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등 각종 우상신을 받들게 몰아갈 수 있었을까?

아합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정신이 빠져 있을 때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들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이세벨 역시 분명 이 경고의 메시지를 남편을 통해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온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가뭄에 갈하여 얼마나 허덕이고 힘들게 살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도 한 나라의 어미 된 왕비는 이런 백성들의 고통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멸하는 일에 온통 혈기를 부리고 있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할 때에”(왕상 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일 때에”(왕상 18:13)

이세벨 그녀는 마치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보낸 여인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려고  안달하는 그런 사악한 마녀 같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하나님 소리만 들어도 악에 바칠 만큼 하나님을 경멸하고 대적한 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하나님께 대적한 악을 일삼았을까? 바알과 아세라 신 등이 하나님보다 뛰어나 자신을 지켜준다 굳게 믿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세벨 왕비가 이렇게 잔인하게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있을 때 아합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전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자기 조상 대대로 믿어왔던 하나님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아합은 아내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저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단 말인가. 아합이 얼마나 무능하고 나약한지, 아내 이세벨에게 휘둘려 살았는지는 다음 사건에서 역력하게 보여준다.

아합 왕이 어느 날  침대에 엎드려 밥을 먹지 않고 삐쳐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갖지 못해 삐친 모습이다. 이때 아내인 이세벨이 들어와 왕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그러자 아합은 궁궐 옆에 있는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 땅을 취하고 싶은데, 나봇이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땅이어서 팔지 않겠다고 해서 너무도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 이때 이세벨이 어떻게 나오는가. 마치 아이를 달래듯 남편을 이렇게 달래고 있지 않은가.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왕상 21:7절)

이렇게 남편에게 말한 뒤 이세벨은 어떤 행동에 들어갔는가. 조서를 꾸며 나봇을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역적으로 몰아 곧바로 돌로 쳐 죽게 만들어버린다.

이세벨은 이처럼 정말 대단히 무서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싶은 것, 남편이 원하는 것이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고 무엇이든지 손에 넣고야 마는 아주 파렴치한 그런 여인이었다. 이처럼 그녀가 왕비로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며 악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은 아합의 나약함과 무능함도 한몫 거들었다.

이세벨 그녀는 왕비라는 자리, 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졌기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돈의 땅에서 왕의 딸, 공주로 자란 이세벨. 그녀의 이런 악한 성품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다 가지고 또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쉽게 죽이고야 만다는 그런 잘못된 생각이 그녀를 이처럼 행악자의 모습으로 몰고 왔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녀는 이처럼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르고 그 마음이 평안했을까? 통쾌했을까? 정말 그녀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이세벨과 같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버지 덕택에 많은 부와 권력을 손에 거머쥐고 연약한 사람을 짓밟고 남몰래 살인까지 저지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그런 악한 사람들이 도처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악한 사람들로 인해 선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또 나봇과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 아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런 사악한 사람이 계속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그분을 대적하도록 그냥 보고만  계실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세벨 그녀 앞에는 지금 너무도 비참하게 끝날 인생의 말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기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 할 것임이로다.”(시 37:1~2)

정현숙/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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