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개별적 차별 사유와 영역에 따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더라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모든 차별 금지 사유와 영역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특별히 필요성이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체 체계를 짜는 것이 효율적인 규율을 위해 바람직하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법학과)가 7월 20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말했다. 이미 다양한 사유·영역을 커버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으니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답한 것이다.

정의당차별금지법추진운동본부(배복주 본부장)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홍성수 교수는, 이미 제정된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특정 사유 또는 영역과 관련해 특별히 차별을 금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제정되거나 발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별적 차별 금지 항목과 영역은 앞으로도 사회 변화와 함께 바뀔 수 있지만, 그렇다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했다.

홍성수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는 기본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홍성수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는 기본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일각에서는 이미 헌법 11조 1항에 평등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불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홍성수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 "헌법에서 평등의 이념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법률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의 헌정 질서가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쉽게 설명하면, 헌법에 명시된 개념을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이행할 근거를 제시하는 개별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홍 교수는 "특정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방향을 정하고, 추진 체계를 수립하고, 재원 조달 방법 등을 규정하는 우산 역할로서의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제 후 토론 시간에도 비슷한 발언이 이어졌다. 신경대 유승익 교수(경찰행정학과) 역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한국 평등법 체계의 마지막 퍼즐"이라며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미처 담지 못한 영역의 차별까지 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승익 교수는 "아직 알지 못하는 차별 사유나 영역, 차별의 범위나 개념이 존재할 수 있다. 새로운 차별 사유가 등장해 문제가 될 때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는 노동 현장에서 성차별을 막기 위해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남녀고용평등법)이나 양성평등기본법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다. 하지만 이 법을 고용 외 교육, 행정 서비스, 재화·용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신아 활동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여성을 단일한 집단으로 여기면서 특정한 여성은 배제해 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청소녀, 성매매 여성, 성소수자 여성, 이주 여성, 장애 여성 등 소수자들은 차별·낙인·혐오·불이익을 당해도 말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김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에서 포괄적 사유를 명시한다는 것은 다양한 여성을 평등의 권리 주체로 호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피해 구제에 있어서도 하나의 사유만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복합적으로 경험한 차별을 그대로 인정받고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진희 공동집행위원장은 소수자 집단만 겪는 전형적 차별이 있다며, 장애인·여성·성소수자 같은 정체성과 연령, 노동조건,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조건이 결합할 때 드러나는 '복합적 차별'을 조명해야 소수자 삶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는 "그래야 특정한 소수자를 집단화하지 않고, 얼굴을 가진 존재로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과의 만남을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왼쪽)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차별금지법이 발의를 넘어 제정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토론회를 주최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왼쪽)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차별금지법이 발의를 넘어 제정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에 함께 토론회를 주최하자고 제안했지만, 두 당이 응하지 않아 홀로 진행하게 됐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단독으로 토론회를 개최하게 된 점은 아쉽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어려웠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심대로 반드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장혜영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문장 뒤로 숨을 수 없다. 우리의 인권은 결코 나중으로 미뤄질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할 때까지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평등 원칙을 마음에 새기며 토론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공동 발의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에 참여했다는 일만으로 이렇게 주목받고 칭찬받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발의 후 계속해서 항의 전화·문자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권 의원은 "혐오·차별의 논리가 주도면밀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세뇌하듯 퍼져 있는 현실을 보며 놀랐다. 하루빨리 이를 시정해 나가는 차원에서라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은 "성폭력특별법 제정,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혼 금지를 폐지할 때도 모두가 '안 된다'고 말했는데, 결국 옳다고 생각한 일은 이뤄졌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 소속 나라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있다며 "차별금지법은 국제사회의 일반적 규범이다. 올해 안에 반드시 이 법을 통과시킨다는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도 소수 참석해 왜 반대 의견은 듣지 않느냐고 항의했다(오른쪽 뒷편). 이들이 항의를 시작하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회원들은 손 피켓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날 토론회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도 소수 참석해 왜 반대 의견은 듣지 않냐고 항의했다(오른쪽 뒷편). 항의가 시작되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회원들은 손 피켓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