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8월 25일 '차별금지법, 노동자에게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복합적 형태의 차별에 놓인 이들을 위해 개별법이 아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노총 유튜브 갈무리
민주노총이 8월 25일 '차별금지법, 노동자에게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복합적 형태의 차별에 놓인 이들을 위해 개별법이 아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노총 유튜브 갈무리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직장에서 발생한 차별 사례를 집중 조명하며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살펴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차별금지법, 노동자에게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8월 25일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토론회를 진행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유튜브로 중계됐다.

보수 교계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에만 초점을 맞춰 반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동성애가 만연해질 것이라며 '동성애 조장법' 등의 이름을 붙여 왜곡한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동자들 권익을 보호하고 평등한 노동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개인 노동 현장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주영 부원장(민주노총 법률원)은 '체계적 규율'로서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재 노동문제에 대한 차별 관련법은 다양하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남녀고용평등법·비정규직보호법·고령자보호법·장애인차별금지법·고용정책기본법·노동조합법·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이다. 이 법들은 근로조건, 고용 형태, 성별, 장애 등 차별 금지 사유와 영역을 각각 법 제정 취지에 따라 개별적으로 규정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라 볼 수 있다.

보수 개신교계는 성차별, 연령 차별, 장애 차별 등을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얼마든지 규율할 수 있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박주영 부원장은 다양한 차별 요소가 함께 존재하는 '복합 차별'의 경우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다루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합 차별의 본래 의미는 2개 이상의 차별 사유가 병렬되는 게 아니라, 복합 사유 자체가 고유한 차별 사유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원장은 "차별이라는 유령은 역사적으로 노예에서 인종으로, 여성으로, 또 비정규직으로 외피만 계속 바꿔 가면서 새로운 이름의 차별을 만들어 왔다. 그렇기에 차별은 고여 있는 개념이 아니고, 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기생한다. 차별 집단이나 차별 금지 사유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차별을 규율하려는 접근 방법은, 변화되는 사회구조에서 공백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일반적 차별의 속성에 주목하고 규율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은 임금·승진 차별
이주 노동자는 마스크도 못 받아
성소수자는 '타의적 커밍아웃' 걱정
보수 교계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조장법'이라며 제정을 반대한다. 성소수자들에게 특권을 주는 역차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토론회 현장에 나선 여성, 이주 노동자 등 차별 당사자들은 직장 내 불합리한 사례를 개선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보수 교계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조장법'이라며 제정을 반대한다. 성소수자들에게 특권을 주는 역차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토론회 현장에 나선 여성, 이주 노동자 등 차별 당사자들은 직장 내 불합리한 사례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토론회에서는 여성,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공무직 노동자들이 겪은 차별 사례가 구체적으로 나왔다. 황미진 지회장(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은 직장에서 겪은 성차별, 노조 간 차별 사례를 소개했다. 황 지회장은 KEC가 임금체계를 J1, J2, J3, S4, S5로 분류하고, 남성은 J2 등급부터, 여성은 한 단계 낮은 J1 등급부터 적용해 남녀 간 임금을 차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근로자는 이례적인 경우가 아닌 한 J3 등급까지만 승격되고 그 이상으로는 승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8년 입사자 11명 중 남성 9명은 모두 S4 이상 등급으로 승격한 반면, 여성 입사자 2명은 모두 J3 등급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1992년 입사자 38명 중에서도 남성 32명은 전원 S4 이상으로 승급한 반면, 여성은 6명 모두 J3에 머물러 있다. 등급 차이 때문에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까지 임금 차이가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황 지회장은 회사 내에서 노조 간 차별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복수 노조 제도가 시행된 이후 KEC가 전국 최초로 복수 노조 사업장이 되었다고 밝힌 황 지회장은, 한국노총 소속 KEC노조에 비해 민주노총 KEC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인사상 차별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이주 노동자 차별 실태를 알리기 위해 발표자로 나선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은, 100만 명을 넘어선 이주 노동자와 39만 명으로 추정되는 미등록 노동자가 한국에서 여러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에서는 이주 노동자들 이름 대신 '저 새끼', '야 네팔', '야 방글라' 등으로 부르고, 조금이라도 항의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너네 나라로 돌려보내 버린다", "불법체류자 만들어 버린다"고 협박하기 일쑤라고 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현재 이주 노동자 차별의 가장 큰 원인은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주 노동자 스스로 사업장을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할 수도 없으며, 가족을 동반해 한국에 머물 수도 없다고 했다. 또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제한돼 있어 40세 이상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임금 차별은 물론이고 장시간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등 여러 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이주 노동자들은 한동안 공적 마스크도 구매할 수 없었다. 공장에서도 사장들이 마스크를 나눠 줄 때 차별했고, 1주일에 1개만 주는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많은 이주 노동자가 해고됐는데도, 고용보험을 사업주가 임의 가입하는 실정이어서 실업 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별 문제가 잘못됐다고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해 더 이상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웅 활동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소수자 직장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차별과 위협에 시달려 왔다고 말했다. 5월 초 코로나19 유행 원인으로 지목받은 이태원 클럽 사례에서, 지자체와 언론이 '게이 업소'를 명시하고 강조하면서 직장과 학교 등 사회 전반에서 성소수자 혐오 정서가 만연해졌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자가 격리나 진단 검사를 하는 일은 '타의적 커밍아웃'과 다름없었다고 했다. 나아가 '이 시국에 클럽 가서 유흥을 즐긴다'는 비난과 '역시 성소수자가 유흥 시설에서 놀았다'는 편견이 더해져, 퇴사까지 각오해야 하는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남웅 활동가는 인권 단체와 법조인 등이 코로나19성소수자긴급대책본부 등을 조직해 성소수자를 도왔지만, 이런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애당초 사회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있고,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는 인권 교육과 제도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낙인 효과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차별의 무게를 개인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현실은 국가가 무책임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에서 코로나19가 확산했다. 검사를 거부하고, 자신들을 향한 테러라고 음모론을 만들고, 예방을 위한 지침을 무시하고 예배를 강행한 자들이 성소수자나 다른 인권은 반대해 왔다. 한편으로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라는 집단이 권력을 만들어 오기까지 여성과 노인 등 교인들을 사역이라는 명목으로 착취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욱 분회장(서울일반노조 공무직분회)은 공무원과 공무직 간 차별 사례를 언급했다. 토론회 현장에 참여하지 못해 영상으로 사례를 설명한 김 분회장은, 서울시 내 청원경찰 500명 등 공무직 노동자 2300명과 기간제·공공 근로자 등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5700명이 공무원에 비해 연수원 대관, 해외 연수, 출장 및 공가 수당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남웅 활동가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유행 시기, 많은 성소수자가 직장에서 타의에 의해 커밍아웃당할까 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퇴사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낙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7월 훼손된 후 재게시된 신촌역 성소수자 혐오 반대 광고판. 뉴스앤조이 최승현
남웅 활동가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유행 시기, 많은 성소수자가 직장에서 타의에 의해 커밍아웃당할까 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퇴사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낙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7월 훼손된 후 재게시된 신촌역 성소수자 혐오 반대 광고판. 뉴스앤조이 최승현

사례 발표 후 토론자로 나선 조혜인 공동집행위원장(차별금지법제정연대)은 "일의 세계에서 소수자가 겪는 문제는 '노동'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장애인 노동자의 권리 주장은 노동의 문제보다 장애의 문제로 이해되고 이주 노동자의 투쟁은 이주 관련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로만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성별, 인종, 장애, 가족 상황,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다양한 사유로 다양한 차별을 이미 겪고 있는데도 이 경험들은 충분히 '차별'로 이야기되지 못하고 각자가 알아서 극복해야 할 조건이자 개인의 무능력으로 취급되고 있다"면서 "차별금지법은 차별 금지 사유들이 각각 그리고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떤 차별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의당 최용 노동본부 집행위원장과 김화숙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도 발표자로 나섰다. 이들은 각각 정의당이 내놓은 차별금지법안(장혜영 의원 대표 발의)과 평등법 시안의 주요 내용과 추진 배경을 소개하고, 복합적 차별 사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을 구제해 평등한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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