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기독교계 말고 맘카페에도 이런 카드 뉴스를 퍼 나르고 있어요.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뜨악합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약자 편이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하는 엄마들이 내 아이들의 미래라며 여기에 연대하는 모습이 좀 당황스럽네요. 차별금지법 관련 팩트 체크가 필요해요."

제보자는 <뉴스앤조이>에 보낸 메시지에 '포차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폐해와 문제점'이라는 전단을 첨부했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 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돼 결성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 제작한 것이다.

전단의 큰 글자만 대충 훑어봐도 충격적이다. △가정 파괴 △교육(자녀) 파괴 △종교(신앙) 파괴 △직업 파괴 △성별 파괴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제목은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인데, 나열한 사례가 차별금지법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반동성애 진영의 이런 운동 방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여론을 선동한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도록 해외의 극단적 사례를 소개하고, 이것이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일인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지난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자료 분석' 시리즈처럼,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제시한 사례들을 팩트 체크해 봤다. 해당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됐는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이 사건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누군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오염된 내용이 아닌 정확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 - 편집자 주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전도에도 문제가 생긴다.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나도 감옥에 갈지 모른다. 나 감옥 가게 하면 안 된다" -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 7월 10일 설교 中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런 종류 발언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대표적 오해 중 하나다. 목사가 설교한 내용을 제한하거나, 전도를 막거나, 이단을 이단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는 등의 주장은 모두 '종교의자유'와 연관된다. 이 같은 주장에 따르면, 차별금지법은 종교의자유를 침해하는 법, 교회를 파괴하는 법이 된다.

진평연은 차별금지법 때문에 '종교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하며 해외 사례 5개를 가져왔다. 이들이 제시한 해외 사례들 역시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하지만 5개 모두 지금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는 별 관계가 없다.

해외 사례의 진위 여부를 짚기 전 한 가지 언급할 부분이 있다.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이 제정된 미국·영국·프랑스 등 여러 서구 국가에도, 여전히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교단이 있고 이들은 여전히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한다. 그럼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 스웨덴 법원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설교를 한 목사에게 징역 1개월 선고 <The Local> 2005. 11. 29.

이 사건은 이미 <뉴스앤조이>가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분석' 기사에서 팩트 체크한 바 있다. 스웨덴의 오케 그린 목사는 단순히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해 제재를 받은 게 아니다. 문제가 된 발언은 "성적 비정상인들은 사회 전체에 깊게 박힌 종양과 같다. 주님은 성적으로 왜곡된 사람들이 동물을 강간할 것을 아신다"였다.

그린 목사가 위반한 법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형법 16조 2항이다. 1심 재판부는 그린 목사가 "공공장소에서 의도적으로 성명서나 발언을 통해, 특정 집단에 위협을 가하면 안 된다"는 부분을 위반했다며 징역 1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무죄로 뒤집혔고 대법원 역시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오히려 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종교의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현실을 보여 주는 사례로 소개하는 게 맞다. 대법원 선고도 2005년 나왔고, <뉴스앤조이>가 재작년 팩트 체크했으며,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원문으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진평연은 여전히 이 사례를 '목사 탄압'의 예로 사용한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2. 캐나다 대법원, 동성애 비판하는 유인물 배포는 증오 범죄라고 손해배상 판결 <월드뷰> 2018. 1. 8.

사례 주인공은 윌리엄 왓콧이라는 남성으로, 캐나다에서 유명한 반동성애 운동가다. 왓콧은 2000년 초반부터 공공장소에서 반동성애 유인물을 배포해 왔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캐나다 현행법을 위반하며 대중의 반발을 살 것을 예상하면서도 '표현의자유'를 이유로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해 보수 교계에서 명성을 쌓았다.

왓콧은 2013년 사스카츄완주에서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이런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16년 토론토 게이 퍼레이드에 참석해 '게이 좀비들'이라고 적힌 팸플릿을 참가자들에게 배포했다. 참석자 일부가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왓콧이 유인물 배포를 멈추지 않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를 체포했다. 법원은 왓콧의 이 같은 행위가 표현의자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특정 집단을 겨냥한 '증오 범죄'라고 판단했다.

두 번의 유죄판결 후에도 그는 같은 행동을 계속했다. 왓콧은 2017년 지방 선거에서 밴쿠버 지역구에 출마한 트랜스젠더 여성 후보 모건 오제를 비방하는 유인물 1500장을 배포했다. 오제는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법적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했지만, 왓콧은 "미디어와 정당은 로넌(오제가 남성일 때 이름)이 남성의 몸으로 태어난 여성이라고 거짓 홍보한다. 수술을 받았어도 오제는 여전히 남성"이라며 나이 든 남성 사진을 첨부해 공공장소에서 배포했다.

오제는 왓콧을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인권위는 왓콧이 오제에게 5만 5000캐나다달러(한화 약 4900만 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왓콧은 언론이 오제에게만 유리한 보도를 한다는 내용으로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등 전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처럼 캐나다는 공공장소에서 충돌을 유발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왓콧에게 제재를 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차별 행위를 하지 않았고 종교의자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민주 사회에서 타인의 존엄을 반복적으로 해치면서까지 보장되는 자유는 없다고 판결했다.

반동성애 진영 몇몇 강사들은 이런 극단적 사례를 들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에는 교회 설교나 종교 집회에서 나오는 발언을 처벌하는 내용이 없다. 반대로 차별금지법이 없는 지금도 집회 현장에서 충돌을 일으킬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돼 처벌받을 수 있다. 2018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때 참가자를 폭행하고 집회를 방해한 30대 남성은 얼마 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상해죄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빌 왓콧(왼쪽)은 항상 학교, 거리, 퀴어 퍼레이드 장소 등 공공장소에서 활동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학생들의 반대에도 계속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자 학교 경비원이 그를 찾아왔다. 빗 왓콧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빌 왓콧(왼쪽)은 항상 학교, 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활동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학생들 반대에도 계속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자 학교 경비원이 그를 찾아왔다. 빌 왓콧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3. 캐나다 토론토에서 동성애 반대 설교한 목사, LGBT 군중에게 폭행당한 뒤 체포되고 교회 시설은 사용 중지 <Lifesite> 2019.11.21.

이 사건은 2번과 유사한 경우다. 데이비드 린은 초교파 복음주의 사역 단체 '예수의용서'(Christ's Forgiveness Ministries·CFM)를 설립한 목사다. 토론토에서 나고 자란 그는 주로 토론토에서 활동한다. 린 목사 역시 주로 거리에서 동성애·낙태·이슬람 반대 운동을 한다.

린 목사는 CFM 소속 10여 명과 함께 지난해 6월, 토론토시의 '처치-웰즐리' 구역을 방문했다. 이 동네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토론토 프라이드'가 지나는 길목이기도 하다. 린 목사는 이곳에서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확성기를 이용해 "나는 크리스천으로 이 자리에 섰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다. 여러분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무지개 깃발, '사랑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피켓을 든 시민들은 린 목사가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알고 "떠나라"고 요구했다. 린 목사는 "나는 세금을 내는데 왜 이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가"라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CFM 교인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린 목사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됐다. 이후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토론토시 당국은 린 목사와 그의 사역팀 CFM이 의도적으로 성소수자를 적대하고 혐오를 선동하고 있다며 교회 시설 사용을 중지했다. 교회 시설이 시 소유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토론토시는 CFM이 시의 다른 시설물도 사용하지 못하게 조치했다.

이 사건 역시 극단적인 인물이 일부러 충돌을 유발하는 행동을 반복했을 때 제재를 받은 것이다. 단순히 목회자가 교회에서 설교했다고 잡혀가거나 교회 시설 사용이 중지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는 이런 내용 자체가 없다.

진평연 및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의한 평등법에 '괴롭힘' 개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발언을 처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평등법에는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사법 절차 및 서비스의 제공·이용에 한해 차별 금지 사유를 이유로 한 괴롭힘은 차별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진평연이 선동하는 것처럼 목사가 "동성애는 죄"라고 말한다고 해서 처벌하는 법안이 아니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대부분 축제 진영(왼쪽 아래)과 반대 집회 진영(오른쪽 위)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열게 되면 시에서는 대부분 축제 진영(왼쪽 아래)과 반대 집회 진영(오른쪽 위)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4. 미국 필라델피아 공원에서 두 할머니가 전도하다가 '혐오 범죄'로 체포 <미주크리스챤투데이> 2007. 2.15.

이 사례는 '가짜 뉴스'다. 진평연이 써 놓은 내용만 보면 두 할머니가 평화로운 공원에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했다고 경찰에 체포된 것처럼 읽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실제 일어난 일은 다음과 같다.

알린 엘시노이는 2004년 10월, '리펜트아메리카'라는 기독교 단체 소속으로 동료 10명과 함께 '아웃페스트'를 찾았다. 아웃페스트는 필라델피아 지역 성소수자 단체 '필리프라이드'가 주최하는 '커밍아웃 데이' 행사다. 이 행사는 필라델피아 내 성소수자 친화 지역에서 열렸다. 여기에 찾아가서 동성애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이다.

리펜트아메리카는 아웃페스트보다 네 달 앞서 열린 '필리 프라이드 퍼레이드'에도 참석해 반동성애 구호를 외치고 시위했다. 대표 마이크 마커비지는 지역 성소수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웃페스트가 끝나는 게 우리 바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뿐이다. 그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라도 우리는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웃페스트 주최 측은 리펜트아메리카와 충돌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양쪽 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가 있다며 리펜트아메리카가 아웃페스트 현장을 방문할 수 있게 했다.

커밍아웃 데이 당일, 주최 측은 리펜트아메리카와 참가자들 사이 충돌을 우려해 핑크색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범퍼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것 또한 하지 못하게 했다. 모두에게 열린 행사인 만큼 리펜트아메리카 역시 자유롭게 현장을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찰 허가를 받고 행사 한가운데로 들어간 리펜트아메리카는 예상했던 것처럼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가지고 동성애에서 돌이키라고 하거나 동성애는 가증한 죄라고 외쳤다. 찬양을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게다가 트랜스젠더 여성을 공개적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경찰이 멈출 것을 요청했으나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만하지 않으면 업무방해죄로 체포하겠다는 경찰의 경고도 무시한 채 계속했고, 결국 경찰은 이들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후 21시간 동안 유치장에 구류됐고 모두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

리펜트아메리카는 필라델피아시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했다며 수정헌법 1조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방법원은 시가 집회 내용에 근거해 회원들의 수정헌법 1조의 권리를 금지한 건 아니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항소심은 리펜트아메리카가 길거리에서 찬양하고 "동성애는 죄"라고 외치는 것은 종교 활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여성을 조롱한 것은 문제라고 봤다. 특정인을 지칭해 공개적으로 모욕을 준 행위는 경찰이 개입할 근거를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이 대대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알린 엘시노이가 나와 "나는 75살 된 할머니다. 나는 2004년 10월 필라델피아의 동성애 행사에 참가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갔다. 대신 나는 체포돼 감옥에 갔고 혐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신도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가고 싶지 않으면 '혐오 범죄 법안'을 막아 달라"고 말하는 영상이 남아 있다.

헌법에 종교의자유가 명시돼 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전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진평연이 예를 든 건 대부분 거리에서 시민과 마찰을 일으켜 체포된 경우다.
헌법에 종교의자유가 명시돼 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전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진평연이 예를 든 건 대부분 거리에서 시민과 마찰을 일으켜 체포된 경우다.

5. 영국, "성공회가 동성애자를 교회의 청소년 사역자로 채용하지 않은 것은 차별" 2019. 11. 28.

이 사건에서 '청소년 사역자'라는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사건에 나오는 잉글랜드성공회 헤리포드교구 청소년 사역자(youth officer)는 목회직이 아닌 단순 사무직에 가깝다. 헤리포드교구는 이 직책을 '보좌사목자'(support minister)로 분류해 놨다. 보좌사목자는 교구마다 하는 역할이 조금씩 다르지만, 헤리포드교구에서는 목회 권한은 없이 기관을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직책이었다.

헤리포드교구가 낸 구직 공고에도 이 일이 목회와 관련한 것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잉글랜드성공회 교인으로 직분이나 성별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필요한 것은 헌신, 경험, 열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사례의 주인공인 동성애자 존 래니는 2006년 청소년 사역자로 지원했다.

래니는 사실 과거에도 타 교구에서 사역자로 일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동성 애인과 파트너 관계에 있다는 점이 문제가 돼 양자택일을 요구받고 결국 떠나야 했다. 래니는 1차 면접관에게 이전 사역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면접관은 혼외 성관계는 금지하는 잉글랜드성공회 성적 규칙을 준수할 것이냐고 물었다. 래니는 앞으로 독신으로 살겠다고 확약했다.

얼마 후 높은 점수로 통과했다는 결과와 함께 주교를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잉글랜드성공회에서 동성애는 한창 논쟁 중인 사안이었기 때문에, 최종 인사권을 가진 주교가 그를 한 번 더 면접하게 된 것이다. 프리디스 주교는 2차 면접에서 래니가 독신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한 번 더 물었다. 래니는 더 이상 동성 파트너와 관계를 갖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했다.

그러나 래니는 면접 후 채용 불가 고지를 받았다. 프리디스 주교는 혼외 성관계를 금지하는 것이 잉글랜드성공회 교리이자 정책이라는 이유를 댔다. 당시 영국은 동성 결혼 합법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래니가 확약을 깨고 동성 성관계를 갖는다고 해도 알 길이 없다며 불합격을 통보한 것이다.

래니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두 번 면접을 진행하면서까지 불필요한 질문을 받으며 괴롭힘을 당했고, 최종적으로 고용되지 않으면서 실제적으로 차별받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채용 과정에서의 괴롭힘은 기각하고 고용 영역에서 차별은 인정했다.

법원은 우선 교회에서 누군가를 채용하는 건 특정 종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잉글랜드성공회는 동성애 논쟁이 한창이었다. 법원은 일부 신도의 종교적 신념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면접에서 성적 지향과 관련해 대화 나누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면접 과정에서 래니가 앞으로 독신으로 살 것인지 물었던 것은 성적 지향에 근거한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래니가 독신으로 살겠다고 확약한 후에도 그를 채용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봤다. 법원은 래니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주교가 그의 확약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고 판단했다. 만약 래니가 이성애자였다면 그의 확약을 받아들였을 것이었다며, 이를 '무의식에 근거한 차별'로 봤다.

무엇보다 래니가 지원한 '청소년 사역자'가 종교적 신념이 필수로 요구되는 성직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법원은 성직자가 아닌 단순 사무직원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은 건 차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후 래니는 헤리포드교구를 상대로 약 8500만 원 손해배상 판결도 받았다.

헤리포드교구와의 소송으로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래니는 이후 지방 소도시 의원직에 당선됐다. 청소년 사역자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임을 내세워 표심을 얻었다. 하지만 래니는 2015년 6월,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14세 소년을 성적으로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임했다. 이듬해 래니는 아동 성폭력 혐의가 인정돼 징역 16월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향후 10년간 신상 공개도 함께 명했다.

현재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는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 성질상 그 핵심적인 부분을 특정 집단의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행할 수 없고, 그러한 요건을 적용하지 않으면 사업의 본질적인 기능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 차별로 보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교회는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동성애자 목회자나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별금지법에 저촉될 가능성은 적다. 애초에 보수 교단들은 동성애자가 목회자나 직원이 될 수 없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이런 상상은 기우에 불과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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